얼굴에 부딪히는 찬바람이 감미롭다. 맹위를 떨치던 동장군이 입춘이라는 절기에 밀려 떠날 채비를 하는 모양이다. 눈 이불을 덮고 넘실거리는 산줄기는 수만 폭의 동양화를 펼쳐 놓은 듯 아름답다. 잠시 짬을 내어 충북 음성에 소재한 보덕산에 오르는 중이다.
눈이 내린 지 며칠 지났건만, 등산로는 여전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길이다. 누군가의 흔적도 없는 길에 첫 발자국을 남긴다는 것은 설레는 환희이자 동시에 절제된 긴장감을 준다. 매년 눈 위를 처음 걸을 때면 서산대사의 시 구절이 이정표처럼 떠오른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예쁜 흔적을 남기고 싶어 팔자걸음 대신 일자걸음으로 조심조심 걸어본다. 하지만 이내 뒤돌아보면, 노력에도 불구하고 눈 위에는 영락없는 팔자걸음이 새겨져 있다. 같은 산을 오르면서도 계절과 날씨에 따라 기분과 생각이 달라지는 것은, 비단 나의 변덕스러운 마음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린 시절 눈은 최고의 놀이도구였다. 눈사람을 만들고 미끄럼을 타며 산토끼를 쫓던 기억이 선하다. 하지만 눈은 고된 노동이기도 했다. 마당과 길에 쌓인 눈을 치우는 일은 어린 나이에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앞산에 하얗게 쌓여있던 눈도 계절이 바뀌면 어느새 연초록 치장에 자리를 내어주었다.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것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삶의 이치인 줄로만 알았다.
직장 생활 중 겪었던 금전 사고는 그 믿음을 뒤흔들었다. 강압적인 수사 속에서 신뢰는 무너졌고, 동료들은 서로를 의심하며 경계했다. 용의 선상에 올랐던 나의 결백을 믿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 나는 수사관에게 눈 쌓인 앞산 이야기를 했다. 겨울에 아무리 많은 눈이 내려도 봄이 오면 흔적 없이 녹듯, 죄 없는 사람의 진실도 결국 밝혀질 것이라고 항변했다.
결국 진범이 잡히며 사건은 종결되었다. 나는 범인이 잡히면 산의 눈이 녹듯 모든 상처가 사라질 줄 알았다. 그러나 눈이 녹아 물이 흐를 때 앙금이 남듯이, 마음 한구석에는 찌꺼기가 남았다. 나를 의심했던 시선들,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를 의심하고 경계했던 마음의 잔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문득 박완서의 소설 『도시의 흉년』 속 수연의 독백이 떠오른다. 억지로 꾸며낸 순결보다 자신의 허물까지 정직하게 안고 가겠다는 그 서늘한 고백 말이다.
‘나는 내가 저지른 것이 나쁜 짓이었다면 두고두고 벌 받고 싶고, 과실이었다면 책임지고 싶고, 시행착오였다면 되풀이하지 않고 싶고, 상처였다면 치유되고, 그리고 흠집을 남기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이른 나이에 부모님을 여의고 경제적 고비도 많았지만, 수많은 이의 도움으로 공부를 마쳤고 사랑을 받았으며 일터와 건강을 지켜올 수 있었다. 그러나 받은 은혜에 비해 내가 베푼 것은 턱없이 부족했다. 오히려 나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좀 더 참았더라면, 좀 더 친절했더라면, 좀 더 신중했더라면 하는 후회와 번민이 밀려올 때마다 수연의 독백을 되새긴다.
‘내 삶의 매 순간이 밉든 곱든 정직한 빛깔을 지닌 확실한 고리가 되어 다음 고리로 이어지기를 바랐다.’
생각 끝에 보덕산 정상에 닿았다. 안내판을 보니 여기가 한남금북정맥의 줄기이며, 보덕(普德)이라는 이름처럼 넓은 덕을 품어 ‘큰산’이라 불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곳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생가와 이어지는 ‘비채길’ 테마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팔각정은 나에게 자리를 통째로 내어주며 쉼을 권한다. 산 아래 풍경을 바라보며 잠시 묵상에 잠긴다.
올해는 내가 남기는 발자국들이 작년보다 조금 더 정직하고 아름다운 빛깔로 이어지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