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추억 '까치밥'

by 홍용석

파아란 하늘이 찬기를 품어서 그런지 더욱 푸르고 높아 보인다. 그 사이 앙상한 나신의 몸으로 간신히 붙잡고 있는 빨간 까치밥과 어우러진 풍경은 아련한 나의 감성을 깨운다.

내가 태어난 생가는 충북 진천의 조그마한 남양홍가 집성촌이다.

동내 이름은 원래 실안리였다 일제강점기 때 실안리와 동주원을 합쳐, 실원리로 명칭이 바뀐, 이후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

실은 과실 실을 쓰고 안은 편안한 안을 쓴다. 나는 어떤 근거는 없지만 과일나무가 잘되는 지명으로, 우리 집에 과일나무가 많고 맛이 좋다고 늘 자랑해 왔다.

집 주변엔 아름드리 감나무, 밤나무, 대추나무, 토종 배나무, 산수유나무, 모과나무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중에 으뜸은 감나무다.

우리 집 감은 여러 종류가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은 뾰족 감이다. 생김새는 끝이 뾰족하고, 요즘 대봉시와 모양은 같으나 그 크기는 아주 작다. 대부분 연시로 먹거나, 약간 덜 익은 감은 물러서 먹는다.(손으로 누르거나 조몰락 거려 떫은 맛이 없애는 숙성법) 추석이나 학교 운동회 때 어른이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일이다.

월하감은 둥글고 통통한 모양이며 감이 노랗게 물들면 수확을 한다. 연시가 되면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아랫목 한구석 항아리에 따뜻한 물과 월하감을 넣어 이불로 감싸 숙성시켜 준다. 하룻밤을 지내면 맛있게 삭힌 감이 된다. 가을 소풍을 가는 날이면 감도 따라나선다. 월하감은 귀하고 운송도 용이하여 가격을 두 배나 받고 팔 수 있었다.

대접감은 모양이 둥글고 넓적하다. 연시, 곶감, 장기보관 등 여러 가지로 다양하게 쓰인다. 대접감을 큰 항아리 여러 개에 감과 짚을 한켜씩 쌓아 보관한다. 한 겨울에 꽁꽁 언 감을 찬물에 담가 놓으면 얼음이 통째로 빠져나간다. 얼음을 뺀 감의 맛은 형연하기 어려울 정도로 시원하고 맛있다.. 이 감을 초여름까지 보관하여 제사상에 올릴 수 있는 유일한 감이다.

감과 관련한 추억이 많다. 나는 감나무에 올라가 손으로 따는 것이 편하고 능률도 좋았다. 주변 사람 모두가 감나무 조심하라고 늘 말한다. 나는 감나무 삭정이가 얼마나 약한지 잘 알고 있다.

감이 익기 시작하면, 아침마다 감 한 접(110개)을 장에 가서 팔았다.

도시락 밥은 퇴비장에 몰래 버리고 감을 싸갔다. 점심시간이 되면, 그날 제일 맛있는 도시락은 내 것이 된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부는 날이면 장터 아이들은 감을 주으려고 우리 집 감나무 밑으로 모인다.

그들은 덜 익은 파란 감, 돌에 부딪혀 깨진 감 등을 가리지 않는다.

나는 우월감에 사로잡혀 나무에 매달린 감을 따거나, 밭에 들어가는 것을 통제하곤 했다. 감은 나에게 학비를 마련해 주었고, 자긍심도 키워 주었다.

감나무는 추위에 약해, 지형적으로 서쪽과 북쪽이 가로막힌 곳이 감나무 재배 적지다. 그래서 차령산맥 기슭에 감이 많이 나는 곳이 많다.

생가 주변을 보면 병무간, 소물, 칠장사 등에서 감이 많이 난다. 그러나 모두가 실원리 감보다 맛있는 감은 없다고 한다. 나 또한 그렇다.

지금은 생가 주변 감나무에 달린 감은 모두 까치밥이 된다. 감이 아까워 나라도 따고 싶지만 선뜻 엄두를 못 낸다.

겨우내 까치밥은 새들의 먹이가 되고, 지나는 사람들의 추억을 끄집어낸다.

작가의 이전글자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