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뻥에 장이요!”
“장뻥에 똥! 잘들 내세요, 난 씌웁니다.”
“똥뻥에 달밤입니다!”
시작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고함과 웃음소리가 뒤엉켜 방 안은 금세 유쾌한 소란으로 가득 찬다. 규칙을 지키며 게임에 몰입하다 보면 순서가 뒤바뀌기도 하지만 누구 하나 얼굴 붉히는 법이 없다. 상대에게 ‘바가지’를 씌울 때는 환호성이 터지고, 마이너스 점수를 얻은 이는 도리어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열두 명이 화투 두 목으로 즐기는 ‘나이롱 뽕’. 12판의 점수를 합산해 숫자가 가장 적은 사람이 1등, 가장 높은 사람이 꼴찌다. 등수에 따라 천 원에서 오천 원까지 소액을 내고, 그렇게 모인 돈으로 다 함께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정을 쌓는다.
이 유쾌한 ‘부부 도박단’은 모두 귀농 가족들이다. 귀농 전 살던 곳도, 하던 일도 제각각이지만 도시 생활을 뒤로하고 시골에 뿌리를 내렸다는 공통점 하나로 뭉쳤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 농촌의 시계는 바쁘게 돌아간다. 파종과 수확의 계절, 일손이 절실할 때 부부도박단은 서로의 일손을 도와가며 살아간다. 버섯, 꽃차, 고추, 열대과일, 약초, 누에 등 각자 재배하는 작목과 수확 시기가 다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는 단순한 품앗이를 넘어 현대판 ‘두레’의 재탄생이라 불러도 좋을 법하다.
돌아가며 여는 팜파티(Farm-Party)는 소통과 정보의 장이 된다. 이웃사촌의 소소한 흉을 보다가도 귀농의 고단함을 토해내고, 결국 대화는 농산물 판로에 대한 애로사항으로 흐른다. 직거래, 로컬푸드, 축제 판매 등 실전 마케팅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경청하는 시간은 그 어떤 강의보다 값진 산교육이다. 서로가 판매자이자 구매자가 되기도 한다. 정보를 나누고 정부 지원 사업이나 재배 기술을 공유하다 보면, 어느새 이들은 ‘어울렁더울렁’ 깊은 정이 든 이웃사촌이 된다.
농촌의 실정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귀농귀촌 농가도 줄어드는 추세다. 노령화로 농업을 경영할 사람은 줄어들고, 농산물 판매가격은 인건비 등 생산원가에 미치지 못하고, 생산한 농산물을 적기에 팔지 못하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작목반이나 영농조합 또는 품목별연구회 등을 결성하여 농가 소득증대와 친목도모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단체에서 서로 의견대립과 갈등으로 조직이 와해되는 일이 생기고 있다. 구성원 모두 한 작목에서 경험과 재배기술이 많은 사람들이라 토양관리, 재배관리 그리고 마케팅 과정에서 자기 의견이 옳다고 주장한다. 또한 분배과정에서도 적정한 기준으로 분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몫이 적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그래서 농한기 겨울철에 즐기는 ‘나이롱 뽕’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부부끼리는 절대 옆자리에 앉지 못하게 하는 엄격한(?) 룰 속에서 우리는 ‘버림’을 배운다. 움켜쥐어야 이기는 고스톱과 달리, 나이롱 뽕은 버려야 산다.
이 게임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덕목이 필요하다. 첫째, 비움이다. 더 큰 이득을 위해 패를 움켜쥐고 있으면 결국 패배할 확률만 높아진다. 둘째, 경청이다. 타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으면 버릴 기회를 놓치고 독박을 쓰기 십상이다. 셋째, 봉사다. 원활한 진행을 위해 백 장이 넘는 화투장을 갈무리하고 먼 곳의 패를 전달해 주는 수고가 필요하다.
자기 의견을 조금 줄이고 상대의 말을 경청하며, 내 몫을 조금 덜 챙기겠다는 마음만 있다면 농촌의 갈등은 자연스레 해소될 것이다. 욕심 없이 양보하고, 경청하며 봉사하는 나이롱 뽕의 규칙이 우리네 삶의 문법이 된다면 농촌 공동체는 더욱 단단해질 수밖에 없다. 놀이의 즐거움 끝에 배달된 이 소박한 교훈이야말로 귀농 생활이 내게 준 가장 귀한 수확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