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황(地黃) 재배 전문가를 만나기 위해 지인들과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음성에서 만난 이는 지황 농사 13년 경력을 가진 베테랑이었다. 귀농 선배이기도 한 그의 첫인상은 단단했고,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시작부터 범상치 않았다. 그는 귀농 초기 선인장을 비롯해 수많은 작물을 섭렵하며 흙과 씨름했던 세월을 털어놓았다. 특히 과수와 같은 원예작물은 초기 투자비가 많고 수확까지의 공백이 길어 귀농인에게 추천하기 어렵다는 실질적인 조언은 뼈가 있었다. 그는 직접 약초 재배의 길을 개척하며 음성군에 약용작물연구회를 결성하기까지 숱한 고생을 겪었다고 회상했다.
지황과 함께한 그의 13년은 실패와 성공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그 끈질긴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이제는 전국에서 지황 재배를 배우려 찾아오는 이들이 줄을 잇고, 국립한국농수산대학교의 현장실습 교육장 지정은 물론 농촌진흥청 평가위원으로 활동할 만큼 독보적인 경지에 올랐다. 그는 지황 재배의 고충을 토로할 때 더욱 눈을 반짝였다. 옛날 방식은 좋으나 인건비 감당이 안 된다며, 일손을 덜기 위해 직접 두둑기, 피복기, 수확기를 개발해 실용화했다는 대목에서는 장인 정신마저 느껴졌다. 연작 피해가 심하고 물을 극도로 싫어하는 지황의 까다로운 성질 때문에 경작지를 고르는 일이 농사의 절반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가 털어놓는 경작 경험담은 마치 고수로부터 비기(秘技)를 전수받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거름을 주기 전 토양 검사는 필수라고 강조했다. 매년 주는 거름이 토양에 축적되어 유기물이 과다해지면 오히려 지황 성장에 독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랑 넓이 90cm, 고랑 넓이 40cm, 높이 40~50cm라는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며, 이것이 기계화와 배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핵심이라고 일러주었다. 지황은 종자보다 종근을 사용하는데, 엄지손마디 정도의 크기를 사선으로 심어야 발아가 잘 된다는 팁도 놓칠 수 없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종근을 자를 때 쇠칼이나 가위를 쓰면 단면이 썩기 쉬우니 반드시 손이나 대나무 칼을 써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또한 싹이 나올 무렵의 제초 작업은 주인 손으로 직접 해야지 외부 근로자를 쓰면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제초 중에 지황을 조금만 건드려도 뿌리가 상해 죽어버린다는 것이다. 쏟아지는 정보에 머릿속이 어지러울 법도 했지만, 우리 팀은 시범 재배 시 꼭 도와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잊지 않았다. 그는 우리를 배웅하며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며 수시로 현장에 달려와 지도해 주겠노라 약속했다. 그 순간, 나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 가슴이 벅차올랐다.
사실 지황은 그 이름처럼 '땅의 정기(地)'가 뭉쳐 만들어진 '황금(黃)' 같은 약초다. 예부터 허약한 기운을 보하고 피를 맑게 하여 경옥고의 핵심 재료로 쓰일 만큼 귀한 대접을 받았다. 땅의 기운을 남김없이 빨아들여 자라는 탓에 한 번 심은 자리에는 몇 년간 농사를 짓지 못할 정도로 지력이 소모된다니, 그 영험한 효능 뒤에는 땅의 희생과 농부의 지극한 정성이 숨어 있는 셈이다. 이토록 귀한 보물을 내 손으로 직접 키워낼 수 있을까.
이번 시범 재배는 농촌진흥청의 약용작물 보급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뿌리썩음병에 강하고 수확량이 많은 신품종을 보급하여 지황 재배를 기계화하고 농가 소득을 높이려는 중대한 과업이다. 청주시 농업기술센터의 공모를 통해 우리 청주시 약초연구회 회원 4명이 팀으로 선발되었는데, 막상 선정되고 나니 앞이 캄캄했다. 우리 중 지황 재배 경험자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업계획서를 제출한 뒤 나름대로 '농사로' 포털이나 유튜브를 뒤져보았지만 지식은 겉돌기만 했다. 음성까지 달려가 전문가를 찾았던 이유도 그 막막함 때문이었다.
사업 시행자로 선정된 기쁨 뒤로 세 가지 걱정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첫째는 저렴한 수입산에 밀리는 국산 지황의 가격과 판로 문제다. 둘째는 단독이 아닌 공동 사업인 만큼 구성원 간의 의견 대립으로 마음 상할 일이 생길까 하는 우려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풀 농사'에 의존해 온 나의 게으른 농법이 문제다. 수확량이 현격히 줄어들어 결과 보고서조차 쓰지 못하게 될까 봐 얼마나 걱정이 되었는지 꿈에서도 풀을 뽑는다.
하지만 이 걱정들을 넘어서야만 성공의 열매를 맛볼 수 있다. 약초를 오래 다뤄온 지인은 내게 "값이 저렴할수록 기회가 온다. 우리가 가공해 팔면 된다."며 용기를 주었다. '위기는 기회'라고 입버릇처럼 외치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살아오며 겪은 몇 번의 공동 사업 실패를 늘 남의 탓으로 돌리지는 않았던가. 이번만큼은 내가 먼저 마음을 비우고, 더 많이 듣고 양보하리라 다짐한다.
그동안의 '풀 농사'는 어쩌면 내 게으름에 대한 면죄부였을지도 모른다. 백 퍼센트 성공할 자신은 없지만, 이번 지황 농사만큼은 농사꾼답게 지었다는 떳떳한 소리를 듣고 싶다. 음성에서 만난 전문가의 열정이 내 안으로 옮겨 붙은 기분이다. 이제 지황이라는 땅속의 보물을 만나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