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淸明)이다. 하늘이 맑아지고 봄바람이 대지를 감싸는 이 시기, 농부의 손길은 바빠지지만 설렘보다 걱정이 앞선다. 필자가 사는 고랭지 배추 산지는 뛰어난 품질로 명성이 높으나, 최근 연작(連作) 피해로 신음하고 있다. 지력은 떨어지고 병해충은 기승을 부린다. 이를 막으려 영양제와 농약을 쏟아붓지만, 비용 증가와 경영 악화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뿐이다. 비단 우리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농촌 전체의 논밭이 소리 없이 신음하고 있다.
통계가 보여주는 현실은 더욱 냉혹하다. 2023년 기준 한국의 단위면적당 비료와 농약 사용량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작물이 흡수하지 못하고 토양에 남은 과잉 양분인 ‘질소 수지’ 또한 OECD 평균보다 월등히 높다. 겉으로는 해마다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듯 보이지만, 정작 그 기반인 흙은 화학물질에 중독되어 ‘죽어가는 땅’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오염된 질산염이 지하수로 스며들어 생태계를 위협하는 악순환도 깊어지고 있다. 토양 황폐와 지력 감퇴는 작물 성장의 치명적 장애물이다. 이제 화학의 힘에서 벗어나 자연의 회복력을 활용하는 ‘윤작(돌려짓기)’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 지혜는 우리 역사의 뿌리인 ‘농사직설(1429)’에도 담겨 있다. 조선 초 농부들은 이모작과 녹비를 활용해 지력을 유지하며 높은 생산성을 일구었다. 서구 농업 혁명의 동력이 되기도 했던 이 생태적 지혜를 이제 우리가 다시 되찾아야 할 때다. 윤작은 단일 재배보다 손이 많이 가고 정교한 계획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역별 토양과 기후에 적합한 작물 체계를 구축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콩과 작물의 뿌리혹박테리아는 천연 질소를 공급해 지력을 높이고, 주기적인 작물 교체는 해충의 생애주기를 파괴해 농약 없이도 병해충 관리에 도움을 준다.
실제로 천안의 한 농부는 평생 윤작을 고집하며 흙의 생명력을 지켜오고 있다. 그가 생산한 콩, 고추, 들깨 등은 품질이 월등해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구할 수 없을 정도로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윤작이 단일 재배보다 공력은 더 들지만, 지속 가능한 농업의 명실상부한 해법임을 증명하는 사례다. 지력(地力)은 곧 국가의 체력이다. 흙이 건강해야 그 땅에서 자란 먹거리가 우리 몸을 살리고, 비로소 미래 세대에게 건강한 환경을 물려줄 수 있다.
현재 논의되는 경자유전의 원칙, 직불금 제도, 농어촌기본소득, 유기농 인증제 등 모든 농업 정책은 ‘윤작제도’를 어떻게 치밀하게 설계하고 현장에 안착시킬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고민과 맞닿아 있어야 한다. 땅은 정직하다. 우리가 흙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연의 순리를 따를 때, 농촌은 다시금 생명의 기운 넘치는 삶의 터전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번 청명에는 우리 모두가 죽어가는 흙을 살리는 ‘윤작’의 가치를 깊이 되새겨보길 간절히 소망한다..
주석 : 본 글은 2026년 4월 6일 충청투데이 독자투고로 게시된 글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