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이야기

by 홍용석


“누에를 키우세요?” 요새도 누에를 키우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자못 의아해한다. 6∽70년대를 지나온 분들은 누에와의 추억을 더듬어 이야기한다. 누에들에게 자리를 빼앗겨 방 귀퉁이에서 쪽잠을 자기도 하고, 누에가 뽕잎을 먹는 소리가 비가 쏟아지는 소리로 들렸단다. 가난하고 어렵던 시절 누에 덕분에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는 등 사연을 쏟아낸다. 누에 이야기로 처음 만난 사람들과 친근해진다. “그런데, 어떻게 누에를 키우게 됐어요?”빠지지 않는 질문이다.

15년 전(2010년) 일이다. 열 살 손위 지인과 점심식사를 위해 식당에서 만났다. 그분이 누에 관련 강의를 들었는데 칼라누에를 개발하여 다양한 색깔의 비단을 생산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귀가 번쩍 띄었다. 염색을 하지 않는 다양한 색깔의 비단은 옷감의 혁명이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으나, 사실이라면 강의 시 요긴하게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문한 식사를 물리치고, 먹지 않은 점심값을 치르고 이내 빠져나왔다.

우리가 향한 곳은 청주 내수에 소재한 잠사시험장이다. 현 충북농산사업소 양잠보급과 이다. 다행히 누에를 사육하는 시기여서 직접 관찰할 수 있었다. 말대로 칼라누에가 있었다. 통상 하얀 빛깔을 띠는 누에와 달리 여러 빛깔의 누에다.

관계자의 말은 칼라누에는 농촌진흥청에서 농가소득을 위해 개발하였고, 체험용이라는 것이다. 색소사료에 따라 누에의 색도 여러 빛깔로 나타나고, 고치색깔도 같은 색으로 만들어진단다. 칼라고치로 실을 뽑으면 색깔은 같으나 이내 탈색된단다. 현재 일본 중국과 경쟁적으로 천연 칼라누에를 개발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황금누에 육종에 성공하였다 한다.

오천 년을 함께 해온 누에의 역사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우리나라 수출산업의 중추를 이루었던 양잠산업이 중국 죽의 장막이 무너지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누에의 기능성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입는 누에에서 먹는 누에로, 바르는 누에로, 의료용 누에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오디 또한 기능성이 아주 좋은 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퇴직한 선배가 직원을 데리고 나오란다. 저녁을 사겠다고 한다. 단호하게 거절을 하지 못하고 엉거주춤 대답했다. 근무시절 선배의 무용담은 몇 번이고 들은 이야기다. 이런 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겁다. 퇴직하면 직장과 관련되는 일을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한다. 퇴직이 얼마 남아있지 않으니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는 인생 2막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도 늘 해왔다. 잠사시험장을 다녀온 후 머리에서 뽕나무 누에 오디가 떠나지 않았다. 살아오는 동안 많은 사람들의 덕을 보았다. 이를 보답하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뽕나무를 심어 놓으면 나와 가족과 사회에 도움을 줄 것으로 확신한 것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격주 토요일은 땅을 보러 가는 날이다. 누에를 사육할 수 있는 환경이 제일 중요하다. 생가인 진천 광혜원은 공장이 많아 후보지에서 1차로 제외되었다. 위치는 좋으나 인근에 과수원으로 포기하여야 하는 매물은 수없이 많았다. 발품을 팔아 찾아 나선 지 일 년여 만에 미원에서 지금의 농장을 만날 수 있었다.

의욕은 넘쳤으나 시행착오는 너무나 많았다. 원주민들의 텃세로 농장조성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뽕잎을 좋아하는 고라니는 자기 뽕밭으로 알기에 울타리도 쳤는데도 어떻게든 들어온다. 농장이 고랭지지역으로 봄과 가을배추의 주산지다. 배추의 작기는 누에사육시기에 맞물린다. 잘 자라던 누에는 어느 날부터 괴로워하다. 인근 배추밭에 친 농약이 영향을 준 것이다. 모두 다 버려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른 아침 뽕나무밭에서 나오는 엘돌핀과 환희가 없었다면 벌써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어느덧 15년 차 농부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했는데 아직도 초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알 것 같으면서도 잘 알지 못하는 것이 농사일이다. 지식ㆍ경험 그리고 날씨가 버물어져 충분히 성숙되어야 하는가 보다. 동네에서 총무 등 봉사활동을 하면서 주민들과 친해져 갈등은 해소되었고, 더 이상의 배추농약 피해는 없다. 고라니와 멧돼지는 친구로 알고 농작물을 나누어 먹는다. 다른 양잠농가에서 벤치마킹도 오는데 갈 길은 아직도 멀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회복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이제 막 시작되는 춘잠을 잘 키워야겠다. 오늘도 누에와 함께하는 건강지킴이의 자부심으로 귀농인의 하루를 시작한다.

2024. 10·11 한국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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