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의 일이다. 엄마는 내게 메주 두 장을 장터 차부에 갖다 주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장터까지는 오리(2km)가 넘었고, 운송수단 중 유일한 것은 두 발과 지게였다. 마침, 그날 동내에 일 년에 한두 번 오는 화물자동차가 들어왔다. 담배 찌는 건조장에 필요한 무연탄을 싣고 들어온 것이다. 엄청나게 운이 좋은 날이라고 즐거워하며 하역장으로 갔다.
"가실 때, 저 좀 차부에 내려 주시면 안 될까요?" 운전수는 높아 보였고, 내 말은 기어들었다. "안돼, 인마! 쪼끄만 놈이." 당연히 태워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거절을 당한 것이다.
나는 지게를 지고 장터로 향했다. 동네 입구에 다다를 때, 집채만 한 화물자동차가 내 등 뒤로 바싹 따라붙었다. 운전수와 조수가 비키라고 소리쳤다. 빵! 빵! 경적을 울린다. 잠시 멈추다가 치고 나갈 듯 등 뒤에 따라붙기를 몇 번 한다.
내 간은 오그라들고, 굉음 소리에 고막과 가슴이 찢어지는 듯 놀랐다. 온몸은 소름이 끼치고, 이대로 죽는 거 아닌가 하는 겁도 났다. 하마터면 오줌을 쌀 뻔했다. 죽으면 죽었지 절대 비켜주지 않겠다고 오기로 버텼다. 조수가 차에서 내려, 나와 지게 그리고 메주를 차에 올려 주었다. 운전수는 "허! 이놈 봐라. 대단한 놈이네. “라고 말한다. 태어난 후 처음 협상의 문을 두드려 타결한 것이다. 나는 길을 비켜주었고, 운전수는 나를 태워 주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 초반 극심한 노사분규가 활화산처럼 일어났다. 내가 몸담고 있던 직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사갈등이 깊어지는 때, 나는 노무업무를 맡았다. 경영자를 대변하여 노동조합과 실무협상을 하는 일이다. 노사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임금 협약과 단체교섭이다. 공기업은 정부 가이드라인을 따라야 했지만, 노조는 이를 초과한 임금 인상안과 경영권을 침해하는 인사권 등을 단체교섭 의제로 내놓았다. 각자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린다. 몇 날 밤을 새워가며 실무협상을 하였다. 노조는 유리한 협상안을 얻으려고 관계기관에 노동쟁의 신청과 함께, 조합원 시위로 압박을 가한다.
노사관계법은 약자인 노동자를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그러나 노동단체는 이를 무시하고 위법과 폭력행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떼법이다.
노무를 맡은 후 노동교육원 교육을 받았고, 노동사에도 관심이 많아 관련 서적을 많이 읽었다. 노동사는 피의 역사이다. 당초 노동자는 사용자에게 인권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었다. 많은 노동자의 희생이 따르면서 차츰차츰 노동자의 권익이 나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벽돌 한 장 한 장이 오늘날의 노동법이 탄생했다. 노동자를 사용자와 동등한 선상에 끌어올려 대등한 관계에서 협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것이 노동법이다.
노동법을 제대로 알면 불법과 떼법이 자리 잡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우리 회사 신입직원 연수 때 노동법 교육을 추진 했으나, 성공하진 못했다. 그러나 노조집행부와 같이 노동법을 학습하고 연구하는 기틀은 마련했다. 회사의 경영 현황도 함께 공유했다. 그 후 임금협상과 단체교섭 시, 더 이상 분규가 발생하지 않았다. 노사는 경영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양보와 타협으로 노사관계를 이어 나갔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현대사회에서 의사결정은 협상에 의한 타결이 절실하다. 양보가 없는 협상은 협상이 결렬되거나, 타결된다 해도 조직은 퇴보한다. 협상은 제로섬게임이 아니다. 서로가 조금씩 양보할 때 시너지효과가 생기고, 조직은 함께 성장 발전할 수 있다.
자기 또는 자기편 주장만을 고집하며,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현 사회 현상은 우리 사회를 '사막화'로 만들어 가는 지름길이 아닌가 걱정스럽다. 상대방의 입장을 조금만이라도 이해하고, 조금만이라도 양보하는 사회가 된다면, 얼마나 밝고 아름다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