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나여." 폰을 귀에 대는 순간 들려오는 소리다. "지금 어디여.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들려, 줄 것이 있어서 그려." 내 얘기는 듣는 체 만 체 일방적으로 끊는다. 천안에 사는 친구 전화였다. 가는 귀가 먹어 통화에 장애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통화를 할 경우에는 전달해야 하는 메시지가 명확할 경우만 연락한다. 밭을 갈아야 할 때, 씨를 파종할 때, 밭을 매야 할 때, 수확할 때 등이 고작이다.
친구를 만난 것은 15년 전 일이다. 오디 뽕나무밭을 조성하기 위해 농지를 마련했다. 뽕나무는 인접 농지의 농작물과 농약 살포 시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또한 인근 주민의 협조를 얻어야 재배할 수 있는 작물이다. 그래서 인근 토지 주인을 찾아 나섰다. 도움을 부탁하기 위해 찾아가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다. 이들 부부는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을 약속하였었다. 이후 농사와 관련된 일은 나의 멘토이면서 친구가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앞장서서 일손이 되어 주었다.
우물가 자배기 속에는 미꾸라지가 헤엄치고 있다. 겨울잠을 준비하기 위해 영양을 비축했는지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윤이 난다. 며칠 전 잡아 온 미꾸라지를 주고 싶어서 연락한 것이다. 논에서 바로 잡은 미꾸라지는 뼈가 매우 부드럽고 기름기가 흐른다. 그러나 오래 가두어 두면 뼈가 억세지고 식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빨리 오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미꾸라지 한 사발과 얼마 전 추수한 검정콩(서리태), 김장철의 감초 같은 쪽파와 갓도 챙겨 주었다.
미꾸라지는 가을철에 제맛이 난다 하여 추어(秋魚)라고도 한다. 미꾸라지는 기력 보충, 혈액순환 개선, 위장 건강에 도움을 준다. 동의보감에서도 미꾸라지는 따뜻한 성질을 갖고 있고, 단맛이 나고 무독하며, 속을 보하고 설사를 그치게 한다고 기록되었다.
나를 위해 잡아 준 미꾸라지를 어떻게 요리해 먹을지 잠시 고민이 되었다. 아내에게 요리를 부탁하면 내 입맛에 맞게 잘해 줄 것인지, 아니면 징그럽다고 짜증을 낼 것인지 걱정했는데, 집에 아내는 없었다. 나는 직접 미꾸라지 매운탕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무, 들기름, 다진 마늘, 파, 고추장, 된장, 고춧가루, 후추 등 매운탕 재료를 찾아내어 미꾸라지 매운탕을 끓였다. 소주와 곁들인 혼밥 만찬은 또 하나의 추억이라 기대가 되었다. 그러나 혼자 먹는 미꾸라지 매운탕은 여럿이 즐겨 먹던 그 맛이 아니었다. 옛 추억이 그리워진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가끔 삽과 얼기미를 이용해 미꾸라지를 잡아 천렵을 즐겼다. 고기 잡는 재미는 어떤 놀이보다 즐겁고 재미있었다. 잡은 고기보다 놓친 고기가 더 크고 좋았고, 고기 몰이를 잘했느니 못했느니 티격태격하면서도 박장대소하였다. 잡은 미꾸라지를 대야에 넣어 소금을 뿌려서 덮어 놓으면, 타다닥 튀면서 기절한다. 호박잎으로 문질러 씻어주면 손질이 끝난다. 송사리나 붕어처럼 배를 따지 않아도 된다. 무를 나박나박 썰어 들기름에 볶은 후 고추장과 된장 고춧가루를 넣어 재차 볶아준다. 물과 손질한 미꾸라지를 넣고 한소끔 끓인다. 수제비를 떠 넣거나 밀가루를 입힌 미꾸라지를 넣을 때도 있었다. 마늘, 파, 풋고추, 미나리, 깻잎 등을 넣어 끓여내면, 그야말로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다. 모두가 맛있게 먹으면서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오늘 고기 잡은 얘기를 시작으로 몇 년 전 일까지 이어 나간다. 붕어, 뱀장어, 가물치, 쏘가리 등 민물고기 전시장이 된다. 단박에 매운탕 한 솥은 바닥이 나고 다음을 기약하곤 하였다.
천안 친구는 내가 미꾸라지 매운탕을 좋아한다는 말을, 언제 들었는지 알 수 없으나 늘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 같다. 미꾸라지를 잡아 오자마자 내게 전화를 한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주지 못하게 하고 나를 기다렸다고 한다.
내가 돌보지 못한 작물을 수시로 관찰하며 때가 되면 알려준 것도 미안한데, 내 기호까지 기억하여 뭔가 해주고 싶었다는 생각 자체가 더 이상 고마울 수 없었다. 친구의 따뜻한 마음이 전달된 이 늦가을 선물은 더없이 크다. 나도 친구를 위해 따듯한 마음을 뭐로 전달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