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잘 가고, 복숭아 이리 와!
여름이 왔다. 복숭아의 계절, 여름이 왔다.
여름이 되면 언제나 수박이 일등이었던 내가 아이를 임신했던 봄에 그토록 먹고 싶었던 복숭아였기에 일등의 자리를 물려주었다.
사실 나에게는 수박이 아직도 제일 맛있는데 아이에게는 뱃속에서부터 먹기 시작한 복숭아가 귤 다음으로 제일 좋다 하니 우리 집 여름과일은 복숭아가 되었다.
처음에는 아이에게 맛있는 복숭아를 찾아주려고 며칠을 발품-아니 인터넷으로 서치 한 것이니 '손품'-을 팔았다.
맛있다고 하는 농장을 찾아도 막상 받아보는 상품은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 많은데(유독 과일이 그런 것 같다.) 처음 찾은 집인데도 다행히 맛있었다.
아이에게는 실한 과육으로, 나는 복숭아 갈비로, 남편은 껍질로 복숭아 맛을 안다.
껍질을 먹는 남편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해도 자기는 딱딱한 복숭아를 좋아하는데 물렁한 복숭아라며 껍질만 몇 번 집어먹는다.
(그래도 아직은 일부러 딱딱한 복숭아를 살 생각이 없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은 물렁한 복숭아니 아이부터 챙기게 된다-대신 두껍게 껍질을 깎아줘야겠다. 아이가 다 자라면 그때 딱딱한 복숭아를 사드릴게.)
아이를 위한 복숭아였지만 그로 인해 새로 생긴 인연이 있는데 농장주인분이셨다.
(물론 직접 뵌 적은 없지만 내적친밀감이 강하게 생겼다.)
이 농장을 알게 된 첫 해에 너무 맛있어서 이 집 저 집 보내고(나의 오지랖이다. 맛있는 건 내 주변사람들도 먹여야 속이 시원하다-'진짜 맛있게 잘 먹었다' 소리 듣는 게 너무 좋다. 오지랖이 분명하다.) 여름 한철 먹는 과일이다 보니 먹을 수 있을 때 먹인다고 아이를 부지런히 먹였다.
배송이 오면 두 개씩 봉지에 담아두고, 다음에 받아볼 복숭아를 곧바로 주문하는 식이었다.
(농장이다 보니 수확을 해야 보내주시기 때문에 이렇게 주문하면 복숭아의 공백이 없이 시기가 얼추 맞는다.)
다행히도 나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셨고, 덕분에 맛있는 복숭아를 여름동안 먹을 수 있었다.
복숭아의 철이 끝나고, 아쉬움을 한창 달래고 있는데 농장에서 연락이 왔다.
한해 감사한 분들께 직접 농사지으신 농작물을 조금씩 보내주고 싶으시다며 괜찮겠는지 물어보는 문자였다.
내가 먹고 싶은걸 마음 놓고 사 먹을 수 있어서 감사했는데 오히려 나에게 감사하시다니.
죄송한 마음 반, 감사한 마음 반 고이 담아 주소와 감사인사를 답문자로 보냈다.
나의 짧은 답 문자에 비해 보내주신 농작물은 깔끔한 포장까지 정성스러워서 몸 둘 바를 모르겠었다.
고춧가루, 쌀, 콩, 미숫가루-
집에서 먹지 않는 것은 없었고, 믿고 먹을 수 있어서 더욱 감사했다.
그리고 몇 해째 나의 단골 복숭아 농장이 되었다.
어떤 해는 전보다 덜 달아도 복숭아의 단정한 생김이 농장주인분의 사랑으로 바르게 자랐을 것을 알기에 믿고 먹는다.
농장주인분도 한해만 그러시려니 했는데 매해 농작물을 보내주신다.
보내주신 농작물을 받을 때면 나는 그저 먹기만 했을 뿐이데 올해도 도움이 되었구나 싶어져 괜히 뿌듯하다.
(내가 아니, 아이가 많이 먹었구나-혹시라도 올해는 등수에 들지 못할까 조바심도 난다. 진짜 등수가 있는 것도 아닌데-내년에도 믿고 먹을 수 있는 농장이 있어서 감사하다.)
올해도 첫 주문을 받으신다는 여름날에 제일 반가운 문자를 받고 난 뒤부터 우리 집 냉장고에는 항상 복숭아가 있다. 그리고 오늘도 제일 좋은 특품으로 주문했고, 기다리는 중이다.
맛있으니 좋은 사람들이 생각나고, 맛이 제대로 들었으니 이 집 저 집 나의 복숭아가 배송될 예정이었는데 비가 많이 내리고 나면 맛이 조금 덜해져서 고민이 된다.(최고의 맛일때 함께 맛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보내는 건데 그러질 못할 까봐 조바심도 난다-올해는 비가 너무 막무가내로 내린다.)
그래도 최근까지 복숭아 알레르기인 줄 알아서 먹고 싶어도 못 먹었다는 아가씨가 알고 보니 천도복숭아 알레르기라고 해서 기쁘다.
(그동안은 조카들 먹으라고 몇 번 보내줬었는데 아가씨가 복숭아 알레르기는 아니라니 함께 먹을 수 있겠구나 싶어서 마음이 좋다.)
여름 한 철을 위한 인연이지만 한철이 더해지고 더해지니 소중한 인연이라고 여겨진다.
아이에게 맛있는 복숭아를 마음껏 입에 넣어 줄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여름을 선물해 줄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인연이다.
우리의 여름이 복숭아 향으로 달콤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수박에게는 미안하지만 여름은 복숭아의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