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맞는 자리
운전을 '다시' 해야 되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시'는 아니고, 운전연수부터 도전해 볼 것인지에 대해 고민 중이다.
(면허만 취득했을 뿐 내차를 가져본 적도, 도로를 운전해 본 적도 없다. 그렇지만 최근 두 번의 갱신으로 면허를 취득한 지는 20년이 넘었다-운전면허증의 기능보다는 폼나는 신분증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넓은 운동장이 아닌 도로에서는 운전대를 잡아 본 적이 없으니 차라리 면허를 없애고, 필기시험부터 다시 취득하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해본다.
(기초도 없는 상태로 운전이라는 것을 해도 되나 싶어 양심이라는 것이 찔려서 그렇다.)
지켜보기만은 답답했는지 성격 급한 남편이 나에게 굳이 운전을 할 필요가 있는지를 묻는다.
(자신이 기사가 되어주면 되는데 일부러 운전을 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아쉽게도 로맨틱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고, 보험료 등의 현실적인 문제와 나의 심약함이 걱정되어 그렇다-그것도 한두 번이지, 해주는 사람이나 부탁하는 사람이나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보통 운전을 부탁하는 곳은 장거리가 대부분인데 아무리 부부라도 잦은 부탁은 어렵다.)
지켜보기만은 답답했던 아이도 손으로 X를 만들며 강하게 엄마의 운전을 원치 않는다고 어필한다.
나름 학원픽업이나 놀이공원 소풍 같은 이런저런 감언이설을 쏟아 보아도 절대 안 된다고 한다.
남편이나 아이의 마음에 나는 운전을 하기 어려운 사람인 것이다.
심약해서 잘 놀라는 사람인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으니 그리 생각할 수 있겠다 싶어 떨어진 자존심을 조금 주어 담아본다.
20여 년 전, 면허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한차례 어려움이 있었으나 잘 넘겼었다.
(테크닉의 문제가 아니라 필기시험의 유효기한이 한 달도 남지 않아서 생긴 이슈였으니 학원에서 남은 기간에 맞게 조정해 줘서 장내기능시험까지 해결했다-이래서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한 건가 보다.)
도로주행도 제법 잘 해냈더니 강사님이 한번 시원하게 밟아 보자며 자유롭게 운전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해 주셔서 시속 100km는 거뜬히 넘기기도 했다.
(남편과 아이가 알면 아마 믿지 않을 것이다-운전을 잘한다는 칭찬을 받았던 나의 스무 살을 돌려주겠니?)
면허를 취득하자마자 폐차되기 직전의 차라도 사서 운전하고 다니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하려 노력했는데 실패했다. 그것이 이 사달이 날 줄 알았다면 아빠의 화물차라도 끌고 다녔어야 했는데...
지금은 버젓이 풀옵션의 안전한 차가 있어도 선뜻 운전을 못하겠다. 이유가 뭘까?
가끔은 혼자 자동차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며 꾸며지지 않은 솔직한 감정을 토해내고 싶기도 하고, 스ㅇ벅스의 드라이브스루로 아이스카페라테를 받아 들고 음악을 들으며 그렇게 예쁘다는 동해안의 7번 국도를 달려보고도 싶다.
(키보드로 7번 국도라는 단어를 치는 순간 머릿속에는 해안도로 위를 운전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그려진다-‘망상과 자기애’의 극치라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왔다.)
안되겠다 싶어서 실내 운전연습장을 검색해 보고, 남편에게도 도로주행을 시켜줄 수 있는지를 물어봤지만 일정을 묻는 그에게 대답이 선뜻 나오질 않는다.
매번 주민등록증을 대신해서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용도로만 사용했던 운전면허증에게 미안했던 것인지 마음을 다해 운전을 해보겠다 용기를 내어도 몸이 좀처럼 움직여주질 않는다.
운전을 하겠다는 마음은 뒤로하고, 굳이 운전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부터 생각해 본다.
내가 심약한 것도 잘 알고, 운전을 하지 않아도 크게 불편하지 않다는 것도 안다.
다행히 집 앞에 지하철, 버스정류장도 있고, 창문으로 밖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운전을 하면 놓치는 것이 많을 텐데...
나는 운전석보다 조수석에서 운전자가 불편하지 않게 케어하는 것이 더 편하고, 책을 읽거나 뜨개질을 할 수 있는 그 자리가 좋은데 마음이 앞서다 보니 몸이 따라주질 않는 것일까?
외출하신 엄마의 옷을 몰래 입고, 뾰족한 하이힐을 신은 어울리지 않는 모습에도 마냥 들뜬 아이의 모습이 지금의 내 모습과 오버랩되어 그려진다.
운전대를 잡고 어디든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겠다는 환상만으로 운전을 대하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니 다른 사람들에게라도 확인받고 싶었나?
아직은 하고 싶지 않고, 가능하면 미루고 싶은 게 '운전'이라는 것을 이 글을 쓰면서 알아차린다.
(글로 마음을 정리한다는 것이 이렇게 유익한 일이구나-그렇지만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은 무슨 하소연을 이렇게 장황하게 하나 싶겠다.)
아마도 영원히 나의 기사(Knight가 아닌 Driver)가 되어줄 남편에게 오늘부로 작위를 내려야겠다.
‘너를 나의 온전한 기사로 임명하노라-’
제발 거부하지만 말아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