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의 시간

너는 멋이지만 나는 아니야.

by 에이프릴

벌써 수십 년째 머리를 감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데 얇고, 짧고, 힘없는 보잘것없는(이렇게 까지 표현하고 싶지는 않지만-사실) 흰머리가 정수리 근처에서 드라이기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춤을 추다가 나의 눈에 띄었다.

(흰머리의 존재는 그것들과 비교대상이 될 수 없지만 ‘들녘의 꽃들처럼 바람에 춤을 춘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한 모습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숱이 없고, 얇고, 힘이 없는 머리카락의 소유자로서 한가닥, 한가닥이 소중한 사람이니 흰머리를 뽑을 것인가, 그냥 둘 것인가를 여러 차례 고민 한다.

(사실 뽑고 싶다는 생각이 9할이지만 한가닥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염색은 아직 시기상조인 데다가 앞서 말했듯이 보잘것없는 머리카락에 큰 부담이다.

(아무리 염색약이 좋아졌대도 감당하기에 부담스럽다-미용기술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지만 항상 디자이너에게 공손하게 듣는 말은 ‘머리카락이 너무 얇고, 힘이 없으셔서 시술이 어려우세요-’니까)


일단 나의 눈에는 거슬리지만 굳이 찾아보지 않는다면 잘 보이는 것이 아니니-

'출근 시간에 발견한 것이 너에게는 행운이었다. 너를 살려두마.'

그냥 두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나와 8살 차이가 나는 남편이 마흔을 먼저 넘겼고, 흰머리도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을 때 많이 속상해 하기에 내 딴에는 위로를 한다며

‘괜찮아, 자연의 순리대로 생기는 거야’라고 건조하게 대꾸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워낙에 무던한 사람인데 흰머리 한두 가닥에 그러는 것이 의아하기도 했고, 정말 티가 나지 않았다.

(남편은 머리숱이 엄청나다-나의 딸이 그 숱을 닮아서 얼마나 다행인지-매일 감사하다.)


그렇지만 나에게 자리 잡은 흰머리를 대하는 마음가짐은 '자연의 순리'와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남편의 희끗희끗한 흰머리나 매체를 통해 볼 수 있는 유명인사들의 흰머리는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고 온전히 받아들인 대인배적인 면모에 멋이 더해졌다.

그렇지만 나의 몇 가닥 되지 않는 흰머리에서는 성숙함이나 멋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이것이 진정한 ‘내로남불’인 것인가.

(사실 나는 이 ‘신조어’를 싫어한다-사자성어도 아닌 것이 사자성어인 ‘척’하는 것도 그렇고, 로맨스와 불륜을 동일 선상에 둔다는 게 괘씸하다.)


차라리 내 눈에 보이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얄밉게도 정수리에 났으니 평소보다 거울을 자주 보게 되고, 볼 때마다 눈을 치켜뜨고 보게 된다.

덕분에 눈도 퍽퍽한것 같고, 이마에 주름도 늘어나는 것 같은 것이 '일석이조'(이것이 사자성어다-내로남불)의 기분이다.


흰머리가 있건, 머리숱이 없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방법은 알고 있다.


예전에는 정신적 혼란의 시기들을 모르는 척하고 살았지만 요즘은 육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신건강을 다루는 매체들도 많고, 책들도 많다.

(그만큼 멋진 삶을 사는 사람들,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서 좋다-나도 그래서 그런 류의 책을 가까이 두곤 한다.)

내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쯤이야 글로 써보라고 하면 술술 쓸 만큼 이론적인 것은 충분히 알겠지만

'ㅇㅇ을 글로 배웠어요'

처럼 나의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것은 어려우니 배움의 의미가 퇴색된다.


흰머리가 뭐라고(기껏해야 흰색 머리카락일 뿐인데-) ‘받아들인다, 만다.’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마흔’이라는 나이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을 때보다는 아니지만 마음이 어지러우니 한 번은 마음의 정리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한다.

나이 들고, 늙어간다는 것이 나에게는(아니 모두에게) 왜 어려운지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왔지만 막상 시간을 갖으려고 하면 덜컥 겁이 나서 멀리 하였으니 오늘은 대면을 시도 해 볼 참이다.


‘마흔’이 넘었음에도 ‘나이 듦’이라는 것이 어렵다는 것에 새삼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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