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미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

아직은 먼 이야기

by 에이프릴

얼마 전에 봤던 영화를 아이는 더빙으로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했다.

더빙과 자막은 느낌이 다르다며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설득하는 아이의 뜻을 거절할 방법은 없었다.

좋아하는 것은 보고, 또 보고 하는 것이 나를 빼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애초부터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이렇게 다시 보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반복적으로 보다 보면 안 보이던 것이 보인다. 그래서 모르고 지나쳤던 것을 알게 되고, 볼 때마다 이마를 치는 순간이 생긴다-그렇지만 다시 본다는 것은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다시 봐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이 순간들이 너무 매력적이라 수고로움은 당연히 받아들이게 된다.)


아이의 아빠는 얼마 전(불과 2주 전)에 본 영화를 다시 보는 게 못마땅한 듯해서 열외 시키고, 아이와 조조영화로 보겠다고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이에게 다시 보게 된 영화는 셋이 함께 봤던 영화에서 '우리만의 영화'가 되었다.

(아빠는 한 번만 봤지만 우리는 두 번을 볼 정도로 의미 있는 영화가 되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조조영화는 저렴했고, 더빙된 영화라고 하기에는 아이들이 없어서 조용했지만 아침부터 서두른 탓에 피곤했다.

그래도 날씨가 꾸물거리지 않았다면 지하철을 타고 돌아왔을 텐데, 우리는 집으로 가는 길은 택시를 타기로 했다.(저렴한 영화를 보겠다고 서두른 게 무슨 의미가 있나-그래서 택시를 타는 게 부담이 되지 않았던 것이라 긍정회로를 돌려본다.)


아이는 뱃속에서부터 멀미를 했는데(멀미가 없는 내가 임신해서는 멀미를 했으니 태아일 적부터 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터) 최근에 '게임을 하면 멀미를 안 하는 것 같다.' 해서 핸드폰으로 각자 눈요기를 했다.

(멀미를 하면 낯빛부터 달라지기 때문에 티가 나는데 평온해 보이는 얼굴이 신기하다. 집중력 때문인지, 마음 놓고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멀미로 고생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문득 아무 말 없이 택시를 타고 목적지까지 가는 초등학생과 엄마의 모습은 기사님께 어떻게 비칠까 생각해 본다.

사이가 안 좋은 모녀이거나 사춘기 온 딸과 갱년기 엄마의 어쩔 수 없는 동행으로 보일까?

이 글을 쓰고 있는데 핸드폰 키보드가 잘못 눌려서 짜증이 났는데 짜증 난다고 인상을 찌푸리는 내 모습은 또 어떻게 보일까 궁금해진다.


괜히 멋쩍어 멀미를 잊고,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는 아이에게 '엄마, 글을 쓸만한 것이 생각나서 글을 쓰고 있어.'라고 다정히 이야기해 본다.

이제 기사님께 나는 어떤 사람으로 보일까?

(글을 쓰는 사람인가?-작가라고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염치없는 생각도 해본다.)


기사님은 별생각 없이 네비가 알려주는 데로 달리시느라 내 말은 들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품하시는 모습을 보니 관심이 없는 건 맞는 것 같다.

'차선을 넓히는 건가? 신도시가 들어서서 진즉 했어야 됐는데'라며 혼잣말을 하시는 걸 보니 관심이 없는 것이 확실했다.


택시를 타고 집까지 가는 짧은 시간 동안 타인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 어떨까 싶어 오버한 나의 액션이 우습기도 하고, 그 우스움에 이어진 부끄러움에 낯빛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아니 그들의 직업 특성상 일부러 관심을 꺼두실 지도 모르겠으나) 상황에서도 타인이 보는 내 모습은 어떨지에 대해 고민하고 방어하는 모습이란.

(이럴 때는 영화 '트루먼쇼'가 아닌 게 다행이다 생각한다.)


그래도 옆에 있는 아이에게 엄마의 모습이 평소와 다르게 보이지 않은 것 같아 안심을 한다.

(게임으로 관심을 꺼두었는지도 모르겠지만-여러모로 핸드폰 게임이 고마워지는 순간이네.)


나는 내가 '꾸미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 되길 바란다.

찌들지 않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다른 이들이 보기에 언제나 한결같은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렇게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아니었나 보다.

문득 떠오른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억지로 꾸미려 했다는 게 적어도 몇 년은 '이불킥' 감이다.


마흔이 넘어서까지도 나를 착각하고, 알아가고 있는 엄마이지만 옆자리의 내 아이는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나보다는 빨리 알아차리길, 벌써 알고 있길 바래본다.


오늘의 캐러멜 팝콘은 맛있었고, 택시는 편하게 우리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었다.

그것으로 오늘은 되었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고 있지만 보이는 모습을 억지로 꾸미지는 않겠다고, 꾸미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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