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이야기

온기가 있는 식사시간

by 에이프릴

점심 식사를 하러 간 중국집에서 테이블 규모에 맞게 세팅되어 있는 2인석에 자리를 잡고, 자리마다 비치된 태블릿으로 주문을 했다.

선뜻 먹고 싶은 게 없으면 이 식당은 무엇이 맛있는지 물어볼 넉살도 없으면서 사람이 하던 일들이 기계화되는 것에 대해 아쉬움과 삭막함이 배를 먼저 채운다.


차돌짬뽕과 삼선짜장을 시키고 나니 그제야 사람이 직접 놔주는 생수가 들어 있는 물병과 컵, 단무지, 자차이를 받아본다.(그나마 테이블 세팅도 미리 되어 있으니 출입문에서 인사해 주는 사장님을 본 뒤로 처음 보는 사람이 되겠다.)


점심시간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라서 첫 손님이었기에 적적함이 삭막함으로 느껴진 건가 되새겨 본다.

(점심시간의 10분 차이는 제법 큰데 우리의 점심 식사시간의 시작은 11시 30분이다.)


요즘 주로 가는 곳들은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아직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어렵지 않고, 충분히 활용을 할 수 있는 세대라서 키오스크쯤은 계산기를 누르는 것처럼 기술이 필요하지 않지만 나보다 나이가 있는 세대들에게는 어려움이 따른다.

(나의 엄마도 매일 커피를 드시지만 키오스크 사용법이 어려워 지나가는 길에 우연히 본 커피 전문점에서 커피를 사는 것은 망설이신다-어려움을 해결할 대안으로 상품 교환권을 미리 구매하여 문자로 보내주면 교환하는 방법을 제안했고, 시행 중이지만 키오스크 사용법을 모른다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신다. 느끼지 않아도 되는 감정일 텐데 기계로 생활을 편리하게 한다는 것이 여러 사람 마음 상하게 한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겪게 되는 편리한 방법들이지만 기계가 주는 삭막함에 마음이 불편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식당 천장에 걸린 화면으로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우리처럼 30분 빠른 점심시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온다.

사람이 없어서 삭막하다고 느낀 불과 몇 분 전의 감정과는 반대로 테이블의 간격이 너무 좁은가 싶어 신경이 쓰였다.

(순간 이중적인 모습에 놀랐지만-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지 않나-별일 아니니 그냥 넘어가야 한다.)


가까운 간격으로 옆자리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귀에 들어온다.

그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이중적인 모습의 재등장-이런 감정 또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여겨야 한다-난 지극히 보통의 사람이니) 자연스럽게 들리는 것인데도 엿듣는 것 같아서 내심 불편하다.

그렇지만 좁은 간격을 두고 귀를 막고 있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불편한 마음과는 반대로 재밌는 전개에 온전히 음식에 집중하기는 힘들다.


그들의 이야기를 일부분 열거 해보자면

'어제 회식자리에서 술을 많이 마셔서 몸에 술이 흐르는지 피가 흐르는 건지 모르겠다.

(영화배우 송ㅇㅇ를 닮은 누군가가 한자리에 있었는지 그를 자연스럽게 송ㅇㅇ이라고 칭하며) 송ㅇㅇ씨가 귀엽다.' 등의 공통점은 없으나 순리대로 술술 흘러가는 이야기들이 식사시간의 재미를 더해주었다.

그리고 나도 순간 송ㅇㅇ의 얼굴이 매우 궁금해져서 사진이 있으면 보여달라고 할 뻔했다.(물론 마음속으로 그런 것이지만)


재밌는 이야기 잘 들었다고 숙취해소제라도 사다 주고 싶었지만 내색할 수 없으니 아쉽고, 더 앉아 있을 수 없게 만든 나의 빈 그릇을 탓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일어나면서 트림을 하는 남편을 꾸짖었다.

(나는 그들에게 숙취해소제라도 사다 주고 싶은 마음인데 그 마음도 몰라주고 매너 없이-)


'들으면 안 된다, 들리는 것을 어떻게 할 수 없다'며 내적 갈등을 잠시 겪었지만 식당이라는 공공장소에서 하는 말이라 어쩔 수 없이 듣게 된 타인의 이야기는 흥미로웠고, 삭막했던 공간이 조금은 풀어졌다.

별것 아닌 살아가는 이야기였지만 그 안에서 '사람'이라는 존재감이 느껴진다.


AI 발전의 끝은 어디 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AI 모델들이 등장하는 광고들은 진짜 사람이 아닌지 싶을 정도로 신기하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사람'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에 대해 씁쓸했던 차에 들려준 '사람 사는 이야기'였으니까.


분명 기계가 아닌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확신이 생긴다.


훗날 내가 되고 싶은 작가라는 일 또한 기계가 대신해 줄 수는 있으나 '사람 사는 이야기'를 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어제의 나는 글이 안 써진다며 불평했고, 기계처럼 써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서사 없는 이야기를 '기계처럼-' 쓰려고 하니 그런 것이 아니었나 반성을 해본다.


사람의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언가 혁명을 일으킨 운동가가 된 기분이다.

나의 글쓰기는 사소한 이야기지만 사람 사는 이야기가 가득한 글을 담고 싶다는 다짐도 되새겨 본다.

'온기가 있는 글'을 내가 살아가는 동안 열심히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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