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
[화해] 싸움하던 것을 멈추고 서로 가지고 있던 안 좋은 감정을 풀어 없앰
친정과 단절하기로 결심한 날, 선희 씨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앞으로 당신들에게 연락하지 않겠노라고, 쌀 한 톨도 받지 않겠노라고 내가 어떻게 살아가든 궁금해하지 말아 달라고, 나 역시 궁금해하지 않겠노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동생들에게도 연락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그때 소식만 전해 달라고.
아빠와 동생들 모두 며칠 동안 끊임없이 전화를 걸어왔지만, 선희 씨는 단 한통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단절하기로 결심했던 순간의 차분함과 고요함은 온데간데없이 불안이 소용돌이치듯 밀려왔다 하루에도 두세 번 엄마와 통화하던 습관 탓이었는지, 휴대전화를 손에 들었다가 내려놓기를 수십 번 반복했다. 부재중 통화 기록에 찍힌 가족들의 번호를 보며 눈물이 흐리기도 했다.
일주일쯤 지나서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선희야, 엄마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안 나."
기억이 안 난다는 엄마의 말이 진실일지도 모른다고, 선희 씨는 잠시 생각했다. 사실, 당시 엄마는 알코올의존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다 한들 엄마가 내뱉은 그날의 말은 지워지지 않았다.
"내가 미울 순 있어. 내 남편이 밉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이제 태어난 내 아기가 밉다는 건... 그건 도저히 용서가 안 돼요."
"내가 그런 말도 했니? 엄마가 정말 술 때문에 미쳐가나 보다."
"그러니까 엄마, 이제 연락하지 말아 주세요."
쿵쾅거리는 심장과 달리, 선희 씨의 목소리는 차갑고 담담했다.
그 뒤로도 아빠는 가끔 문자를 보냈다.
"쌀이 떨어질 때가 된 것 같은데..."
"김치 있니?"
"우리 손주 아픈데 없니?"
그리고 늘 마지막은 같았다.
"큰 딸, 아직 마음이 안 풀렸어? 엄마가 많이 미안해하고 있어."
2시간마다 깨는 아이, 품에서 내려놓기만 하면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와 씨름하며 정신없이 보내던 어느 날, 또다시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엄마가 술을 끊을게. 다시는 입에 대지 않을게. 아빠랑 병원에도 다녀왔어. 약도 처방받았어."
선희 씨의 마음이 흔들렸다. 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 말 한마디가 돌덩이처럼 눌려 있던 마음을 조금은 가볍게 했다.
그렇게 화해를 했다. 진짜 화해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