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때문이야
[때문] 어떤 일의 원인이나 까닭
살아야 했다.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부모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선희 씨는 스스로 병원을 찾았다.
문장완성검사을 비롯해 세 가지의 검사와 상담이 이어졌고, 내려진 진단은 중증 우울증이었다.
"선희 씨는 지금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 할 만큼 위험한 상태예요."
그 말에 놀라지 않았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살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자꾸만 떠올랐으니까.
의사는 상담과 치료를 병행하자고 권했다. 선희 씨는 의사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처음 그녀는 이것이 부족한 자신이 엄마가 된 탓이라 여겼다. 하지만 치료가 진행될수록, 출산과 육아는 단지 기폭제였을 뿐, 근본적인 문제는 그녀의 유년시절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어머니가 힘든 삶을 선희 씨 탓으로 돌리셨죠. 그 때문에 너무 일찍 철이 들었어요. 아이처럼 자라야 할 때, 부채감과 책임감으로 어른이 되어버린 겁니다."
"아이를 '아이답게' 키우고 싶었을거예요. 하지만 정작 어떻게 하는 게 아이답게 키우는 건지 모르는 거예요. 본 적도, 해본 적도 없으니까."
몇 차례의 상담을 거치며, 억눌렸던 원망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선희 씨는 엄마가 너무 미워졌다. 엄마가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의사는 엄마와 함께 가족 상담을 제안했지만, 선희 씨는 단호히 거절했다. 선희 씨는 그냥 엄마를 미워하기로 했다. 그래야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치료의 효과는 분명했다. 우울의 그림자가 조금씩 옅어졌다. 아이를 끔찍하다고 느꼈던 순간이 믿기지 않았다. 미안함이 밀려왔다.
그래서 더 많이 안아주었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아껴주었다. 자신이 받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아이에게 건네기 시작했다.
아이는 더 이상 그녀에게 집작하지 않았다. 아이가 웃었다. 그리고 선희 씨도 웃었다.
"아이와 놀 때는, 선희 씨도 그냥 아이처럼 놀아보세요."
의사의 말이 귓가에 남았다.
그녀의 상처가, 아주 천천히 아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