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유명치 않은 배우들의 어영부영 락밴드 만들기
배우라는 직업 외에 다른 꿈을 가져본 적이 있냐고 물으면
" 글쎄..? "라고 답하기 일쑤였던 나에겐,
사실 배우라는 꿈과 동일선상에 있으면서 조금 더 이상적으로 꿈꾸던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 락스타 "
(ㅋㅋㅋㅋ손발이 약간은 오그라들게 만드는 마법의 단어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와 드럼, 기타를 치며 찬양단을 했던 나는,
자연스레 밴드 악기들을 가까이하며 살아왔다.
해외 유명 밴드들의 공연 영상을 볼 때면
늘 심장이 뛰고 무대에 올라가서 공연을 하는 상상을 수 없이 했던 것 같다.
잠깐, 어째서 악기를 다 다룰 줄 아냐고?
내가 초등학생 때는 태권도나 피아노 학원을 다니는 것이 그 시대 때의 유행이었던 것 같다.
도복을 입고 무도인처럼 멋진 품새 동작을 하며 찍은 기념사진들,
다들 하나씩은 집에 있지 않은가?
바이엘 상권, 하권, 하농, 체르니 잘 찾아보면 아직도 본가 서랍장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우리 집은
위로 3살 터울인 형만 태권도, 피아노 학원에 보내셨었다.
그렇다면, 둘째인 내가 해야 할 몫은 무엇인가?
생떼를 쓰며 바닥에 드러눕는 거지.
대부분이 그렇듯
그렇게 인생 첫 악기는 피아노가 되었으며
중학생이 되던 해 즈음에는 아버지께서 작은 개척교회의 목사님이 되시면서
몇 안 되는 성도님들과 함께 찬양단을 만들기 위해 형은 드럼, 나는 기타를 배웠었다.
형 덕분에 어깨너머로 드럼도 자연스럽게 어느 정도는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단언컨대, 3가지 악기의 연주 실력이 대단치 않음.)
자, 다시 본론으로
주일에는 교회 찬양단으로서 ccm을 합주하면서
평일에는 작은 아이리버 mp3에
muse, oasis, AC/DC, Queen, Mr.Big 등의 해외 락밴드 음악을 들으면서 상상했었다.
커다란 공연장에
발 디딜 곳 없이 꽉 찬 관객들과 하나게 되어
스피커에서 토해내는 음악을 온몸으로 맞으며
" rock n roll!!"
" rock will never die!! "
따위의 저항정신 가득한 소리를 내뱉으며 뛰는 상상...
그렇게,
곰팡이 냄새날 정도의 오래된 꿈이었던 "밴드 만들기" 꿈을 천천히 시작해 보기로 했다.
2022년 9월 말, 진형에게는 드럼 레슨을 배우게 권유했고 피아노 전공인 재원이를 꼬셨고 기타를 치는 제연형과 서로의 마음에 펌프질을 해댔으며, 종혁에게는 베이스 기타가 얼마나 매력 있는 악기 인지를 어필했다. 밴드에서 드럼의 뼈대가 너무 중요하기에 이제 막 드럼을 배우기 시작한 진형에게 진도를 맞추면 더딜 것 같아서 드럼 경험이 있는 의태에게 함께 하자고 말했고 보컬로 투철까지 꼬드겼다.
마침내,
2023.01.04일,
몇 가지의 커버곡을 정해서 대망의 오합지졸 첫 합주를 했다.
기대 이상으로 잘 진행되는 합주 속에서
" 설마 이게 될까...? "
하는 마음들이 모여 각자가 준비한 멜로디와 박자에 맞춰 쿵짝쿵짝 움직이던 3분 남짓의 시간 동안,
나를 포함한 모든 멤버가 정성스럽게 두들기는 엉망진창 음악에 빠져들고 있는 광경을 봤을 때의 그 기분은
정말 뭐라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짜릿한 순간이었다.
우리는 대부분 유명하고 유능하며 각자의 이상향에 있는 "좋은 배우"라는 타이틀을
꿈 꾸며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고로 아직, 유능하지도 그렇게 유명하지도 않은 배우들이란 말이다.
하나의 목표만 바라보고 오래도록 달려온 우리들은 잘 알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성취감과 뿌듯함을 느끼기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며
그 횟수가 조금씩 귀해지고 있다는 것을.
멋지게 무언가를 해냈던 순간 보다
해내려고 온몸 내던져 부딪혔지만,
그 앞에 있는 벽들이 너무 두껍고 높아서
혹은, 이미 우리보다 앞서 그 벽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발길을 돌렸던 기억들이 지배적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온 지도
어느새, 평균적으로 9~10년 정도 됐다.
다행인 것은 해가 지날수록 조금씩 각자의 의식주가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뭐.... 아직 갈길이 한참 멀었지.
경제적으로도
능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이런 우리의 삶에 오합지졸, 엉망진창 밴드 라이프는
꽤나 큰 활력소가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정확히 노력한 만큼 성취감과 행복감을 느낀다.
이 얼마나 정직한 활동인가.
쏟은 만큼의 30%도 느끼기 힘든 바닥에서 구르던 사람들인데...
그리고 본업 외에서 느끼는 성취감과 행복감도 오래간만이다.
우리들의 배우 생활만큼 오래오래 이 밴드가 지속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올 연말에 지인들을 초대해서 작은 공연장에서 공연을 하기로 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밴드지만 우리만의 박자와 리듬으로 행복하게 하다 보면
내년 이맘때 즈음, 첫 공연의 후기를 여기에 적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하다 보니 마침내! 해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