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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장꾸 Sep 28. 2021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 리뷰

비건을 지향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은 지 약 석 달, 벌써 마음이 해이해진 나를 발견했다.


최근 나는 고기 육수가 들어간 음식을 생각 없이 먹었고, 2주 차박 캠핑이라는 특별한 걸 하고 있으니 한 번은 먹어도 된다며 학센을 포장해 먹었고, 비건이 아닌 라면을 끓여 먹었다. (또 그 와중에 덩어리 고기는 석 달 동안 딱 두 번밖에 먹지 않았다며 자위하던 나..!)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비건 지향을 시작하면서 사둔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효과가 꽤 좋다. 이 책을 통해 잊고 있던 비건을 지향하게 된 이유에 대해 상기하게 됐고, 다시 제대로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는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로 귀촌한 이동호 씨가 쓴 책이다. 그가 귀촌한 마을은 국내 최대 축산단지로, 돼지와 소를 키우는 축산업 종사자와 축산업으로 인한 폐해를 겪으며 채식주의자가 된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다. (이동호 씨 역시 귀촌 후 채식주의자가 됐다) 그는 귀촌하고 2년쯤 됐을 때 '대안축산연구회'라는 동아리를 몇몇 젊은이들과 함께 만들었는데, 축산인이자 유기농 농사를 짓는 친환경 농부들이 함께한다. 이들은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며 유기 축산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다 자연양돈이라는 걸 알게 됐고, 그가 견학을 하러 간 자연양돈 농장에서 돼지들이 농촌을 파괴하지 않고 동물로서 존중받으며 사육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는 그 모습을 보며 '이렇게 기른다면 먹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거창하게 표현하면 예의를 갖춘 고기랄까. 생명을 정성 들여 키우고 그 생명을 죽여서 먹는 과정을 통해 자연의 순환과 생명의 고귀함을 지킨다는 면에서 채식의 연장이라고 여겨졌다.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 본문 중


그렇게 결론이 났다 싶었는데 그의 생각은 다시 돌아왔다. 


돼지가 사는 동안 행복했다고 하더라도 돼지를 잡아먹는 것이 괜찮은 걸까. 동물의 본성을 억압하지 않는 사육을 '동물복지'라고 하는데, 동물도 오래 살고 싶은 본성이 있지 않겠는가. 결국 잡아먹힐 거라면, 살아있는 동안 행복했다는 것이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 본문 중


그 후 대안축산연구회 사람들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결국 돼지를 직접 키워보지 않고는 안 될 지경이 됐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는 1년이 안 되는 기간 동안 돼지를 키웠고, 잡아먹었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채식주의자가 돼지를 반려동물로 키우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채식주의자가 돼지를 키우고 직접 자기의 손으로 돼지를 도축해서 먹는 이야기였다. 채식 다큐멘터리 영화나 책을 통해 가축을 방목해서 키우는 것 역시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접했기에 '이렇게 예의 갖춰 키우고 잡아먹는 게 의미가 있나?' 싶었다.


책을 끝까지 다 읽은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우리가 '고기'를 아무런 죄책감 없이 먹을 수 있는 이유는, 그 '고기'들이 사실은 살아있었던 '생명'이었다는 걸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설령 자각하고 있더라도, '고기' 자체만 앞에 두고 보면 죄책감이 크게 들지 않는데 그 이유는, 이 '생명'들이 자라고 도축되는 과정을 직접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마 그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본 사람들이라면 지금처럼 쉽게 고기를 먹지는 못할 거다. 먹더라도 죄책감과 함께 먹겠지. 그러니 이동호 씨가 돼지를 키우고 직접 도축하고 잡아먹은 건, 아주 큰 의미가 있다. (이동호 씨는 참 대단한 사람이다)


나는 비건을 지향하는 일상을 지속하고 있다. 완벽한 비건이 되겠다는 확신은 없지만,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좇는 일에서 오는 성취감과 행복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이 성취감과 행복이 마음껏 고기를 먹을 때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이 일상을 놓지 않으려는 노력을 계속할 예정이다.






아래는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에서 인상깊게 읽었던 문장들

















어떤 고기를 먹을지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그 이면까지 알고 선택할 때에야 비로소 진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 본문 중


마지막 문장은 육식과 채식을 떠나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언제나 염두해야 하는 마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충분히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이 세상은 우리가 불편해할 사실들을 숨기며 '자유로울 권리'를 계속해서 앗아가고 있다. 하지만 괜찮다. 이 자유로울 권리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가치들에 대해 공부하고, 그 가치를 직접 실천하면서 충분히 되찾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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