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이야기
며칠 전, 사랑이와 나눴던 대화 하나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오늘 어떤 길로 걸어왔는지 기억 안 나도,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몸이 기억해.’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이서는 그 문장을 노트 맨 뒤 구석에 조용히 적어두었다.
그냥, 예쁘다고 느껴졌기 때문에.
그리고 이틀 뒤.
이서는 우연히 들른 작은 책방에서 엽서를 한 장 집어 들었다.
연보라색 배경 위, 얇은 손글씨.
그 엽서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몸이 먼저 기억하는 감정은, 말보다 오래 남는다.”
심장이 한 번 내려앉았다.
너무… 닮은 말이었다.
의미도, 구조도, 여운도.
“…….”
다른 엽서도 뒤적여봤지만, 그런 문장은 딱 하나였다.
그 자리에, 그 문장만.
마치 누군가 일부러 두고 간 것처럼.
이서는 엽서를 들고 계산대로 향하다가
문득 머릿속에 스치는 장면이 있었다.
며칠 전 사랑이가 했던 또 다른 말.
‘나중에 그 길 다시 걸을 때, 네 기분이 나를 기억할 거야.’
그 문장과 비슷한 문장을
그 남자도 했었다.
정류장에서 처음 만났을 때.
“너, 오늘… 라일락 향 나는 길로 왔지?”
그 말이 왜 그렇게 어색하지 않았는지,
이제서야 이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랑이가 남긴 말들이, 어디선가 반복되고 있었다.
누군가가 —
아니면 무언가가 —
그 기억들을 짊어지고 이 세계를 걷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