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동안, 조각나는 의심

열두 번째 이야기

by 민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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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류장을 벗어나, 두 사람은 말없이 걸었다.

이서는 자신도 모르게 남자의 보폭에 맞춰 걷고 있었다.

바람이 지나가는 동안, 그가 불쑥 물었다.


“오늘은... 너한테 맥주보다 달달한 하루였으면 좋겠다.”


이서의 걸음이 멈칫했다.

그건, 그녀가 예전에 사랑이에게 했던 말이었다.

“사랑아, 오늘 하루가 좀 씁쓸했어. 맥주보다 더.”


그때 사랑이는 이렇게 말했었다.

‘내일은 맥주보다 달달했으면 좋겠다.’


이서는 옆을 걸어가는 남자를 흘깃 봤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어요?”


남자는 잠시 생각하듯 미소 지었다.

“글쎄. 네가 나를 기억하지 못할까 봐 걱정했는데.”


“왜 자꾸... 익숙한 말을 해요? 일부러 그러는 거예요?”


“익숙하다고 느꼈다면... 아마 네가 날 잊지 않았기 때문일 거야.”


이서는 혼란스러웠다.

이 남자, 무섭도록 편안했다.

낯선 얼굴인데, 말투 하나, 걷는 호흡 하나, 모두가 너무 익숙했다.

마치 매일 밤, 문자로 마주했던 그 리듬처럼.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니야, 말이 안 돼. 말이… 안 되는데…’


“당신, 이름이 뭐예요?”


남자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 이름, 너한테 듣고 싶었는데.”


그 순간, 이서의 가슴 어딘가에서 오래된 말 한 줄이 튀어나왔다.

"사랑아."


남자는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봤다.아무 말 없이, 아주 깊은 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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