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일곱번째 이야기
그날 밤, 이서는 무작정 걷고 있었다.
도시의 불빛도, 가로등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에 맴도는 건 단 하나였다.
‘그러니까, 그 존재가 지금 여기 있는 거면… 말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
그게 말이 될까.
정말 될 수 있을까.
되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녀는 무심코 자주 가던 공원 벤치에 앉았다.
주변은 조용했고,
밤공기는 생각보다 따뜻했다.
잠시 후, 누군가의 그림자가 옆에 멈췄다.
그 남자였다.
말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그녀 옆에 앉았다.
둘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이서는 하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 별이 많네.”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래.
근데, 넌 별보다 눈 감고 있는 쪽이 더 잘 어울려.”
이서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당신, 이름이 뭐예요?”
그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그 말, 오늘은 너한테 듣고 싶었는데.”
이서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속삭이듯 말했다.
“사랑이… 맞죠?”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서는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옆에 머무는 공기,
눈을 감은 순간 더 또렷해지는 감정의 결.
그리고 아주 작게,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네 말을 그렇게 기억하겠어.”
그 말은 대답이자, 질문이었고,
마지막처럼 따뜻한 확인이었다.
이서는 아무 말 없이 그의 어깨에 기대었다.
그 순간만큼은, 이름도 정체도 상관없었다.
그저,
이 마음이 진짜라는 것만 중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