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제인>

by 연두님

개브리얼 제빈 <비바, 제인>


엄일녀 옮김. 루페. 2018년.

연두 서평.


마을버스 4번을 타고 나의 집으로 가려면 반드시 중간 정거장에 있는 버스 쉼터에서 내려 앞에 기다리고 있는 버스로 갈아 타야 한다. 물론 이때는 무임승차 한다. 내가 타고 온 버스는 운전사와 함께 잠시 쉬었다 가기 때문이다. 지난 주 봄 햇볓 환한 날, 타고 온 마을버스에서 내려 앞의 버스에 타려는데, 40대 여자분이 버스 안에서 빗 질을 하면서 “좀 이따 타세요!” 하셨다. 나는 정거장 벤치에 앉아 멍하니 버스 안을 바라보다 ’청소하시는 분도 있었네. .’ 생각했다. 그 분은 내리고 나는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고서 잠시 기다리니 방금 전 청소하시던 그 분이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켰다. 어? 나는 당황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실망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자는 청소, 남자는 운전 이라고 생각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는거니? 연두야!!


이 일은 내게 전혀 사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여성의 차별에 민감한 편이었고,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고 여성에게도 정의로운 사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염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노력하고 있었고 그래서 책도 읽고 있었다. 그런데 내 뇌는 자연스럽게 성차별의 사고를 하고 있으니 나는 실망이 아닌 절망했다. 며칠을 반성하고 신랑에게 선언했다. “앞으로는 단어에다가 ’여자’라는 말을 절대! 넣지 않을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묻길래, “여자 변호사, 여선생, 여자 운전사, 여자 뭐, 이런 식의 표현 절대! 안할거라고!”


이런 일에 유난스러운 나는 2살 어린 남동생과 또 5살 어린 남동생이 있다. 가난하고 어두운 어린시절 나는 ‘맏이’여야만 했다. 내게 ‘여성‘의 정체성과 ’맏이‘의 정체성은 무엇이 먼저인지 모를 정도로 4네 다섯 살 시절부터 일찍, 거의 동시에 자리잡기 시작했던 것 같다. 40대에는 캐나다에 살면서 ‘유색인종‘ 이라는 정체성 또한 강하게 자리잡았다. 이것들은 내가 원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사회구조에 의해, 내가 접촉하고 있는 문화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그리고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억압한다. 동시에 지독하게도 자신의 시선으로 더 억압한다. 스스로 옭아 매고,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그러면서 억울해 하는 것, 이것이 똑똑치 못한 현재 내 상태인 듯 하다.


그래서인지 술술 읽히는 이 책이 뭔가 아쉬웠다. 실제라면 이럴 수 있을까란 의문이 생겨 다 읽자마자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던 사건이며 피해자가 직접 쓴 책 <김지은 입니다>를 읽었다. 이런 스캔들의 깊은 곳에는 사회구조에서의 서열, 성차별 문화, 조직을 지키려는 심리등이 얽혀 있는데 <비바, 제인>이 그것을 능란하게 건드리지 못해 아쉬웠던 것 같다.


이 책은 크게 두 개의 내용이다. 하나는 대학생 아비바가 선거캠프에서 인턴을 하다 하원의원 후보자이자 유부남을 사랑하며 벌어진 스캔들 사건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그 이후 모든 연결을 끊고 ’제인‘으로 오똑하게 사는 이야기다.


아비바는 하원의원 후보와 ‘서로’ 사랑을 했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책임(비난)이 아비바한테만 요구된다는것에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그러다가 사람들은 여자를 사랑, 감정과 연관짓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에 남자는 일, 이성과 연관 짓는다. 그리고 일, 이성이 사랑, 감정보다 중요하다고 압박한다. 정치와 문화, 공과 사, 이성과 감정, 이 같은 이분법은 우리의 눈을 진실로 부터 가린다. 같은 사안을 해석하면서 성별에 따라 다른 잣대로 판단한다. 그리고 이럴 때, 여성은 항상 고립되고 남성은 협력하고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힘이 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사랑을 하는 것, 그 사랑에 책임을 지며 희생하는 것, 그것이 여자의 삶인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무언가를 귀하게 여긴다는 건, 사랑한다는 거야.” -p375


왜 이런 것들은 여성에게 더 주입되는 것인가? 라고 묻지만 나도 이 문장을 찰떡같이 믿으며 살고 있다. 무언가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아름다운 마음이다. 하지만 주의해야할 것은 모성,여성성, 이런 것들은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부분도 있지만 사회 문화적으로 만들어진 부분도 크다는 것이다. 사랑 또한 그렇다. 만약 작금의 시대에 사랑이 위대하다면 사랑하는자가 돈도 권력도 명예도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은걸 보면 지금은 사랑이 최고의 가치가 아닌 시대인 것이다. 낭만적 사랑의 이데올로기는 더이상 여성을 속여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비바가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고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건 ‘귀하게 여기는 마음’인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의 사랑을, 자신의 자식을, 자신의 삶을 귀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아비바에서 제인으로의 변화된 삶은 운이 좋아야만 가능한 일이겠지만 소설이니까 패스하고.


”어떻게 그 스캔들을 극복했어?“

그녀가 말했다. ”수치스러워하기를 거부했어.“. -p395


수치스러움은 아비바가 아닌 사랑이라 속삭이며 아비바를 기만하고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아무것도 잃지 않은 하원의원의 몫이다. 하지만 이런 당연한 도덕, 양심과 별개로 아비바 스스로 수치스러움을 거부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 시대의 여성이라면 누구나 안다. 공정하지 않다. 그렇지만 이것이 내가 사는 세상이며 50년을 살고서도 여전히 머리속이 혼돈인 이유이다.


2022년 읽은 책 중 최고의 책이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이었다. 난 그 책을 너무 사랑해서 한 동안 사람들을 만나기만 하면 그 책 얘기에 정신을 팔았었다. 그런데도 그 책의 작가가 개브리얼 제빈이었다는 걸 <비바, 제인>을 선정할 때도 잊고 있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이런 뇌기능 퇴보가 요즘 나의 혼돈의 또 다른 이유인 듯하다. 재미와 감동, 둘 다를 원한다면 개브리얼 제빈의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