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도끼다>

by 연두님

박웅현 인문학 강독회 <책은 도끼다>


(주)북하우스 퍼블리셔스. 2018.

연두 서평.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카프카의 편지 中


프란츠 카프카의 책은 매 번, 그리고 확실히 나를 깨우는 도끼였다. 기괴하고 난해하지만 그래서 읽는 이를 더 생각하게 만드는 그의 지성과 열정을 닮고 싶었다. 독서 인생 초반에 카프카를 만나서일까, 항상 책은 도끼여야만 했다. 읽은 책 중 유난히 사랑하는 책은 있지만 도끼가 아닌 책은 거의 없었다. 나는 감수성이나 지성에 자극을 주지 않는 책은 몇 장 넘기지 못하고 흥미를 잃는다. 무슨 책을 집중해서 읽고 있다면 그건 필히 내가 도끼질을 당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도끼같은 책들의 문장들을 이 책의 작가 박웅현처럼 기억하지도 못하고 붙잡고 살지도 못한다. 내 마음과 꼭 같은 시인 진은영의 표현을 빌려 본다.


“늘 무언가를 읽고 있었으니 읽은 만큼 삶이 바뀌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현명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책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中


박웅현은 광고하는 사람이다. 광고의 목적은 설득이다. 그는 사람이 가장 설득당하기 쉬울때란 감탄할 때라는 걸 누구 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감탄과 울림을 일으키는 도구로 도끼 같은 책 만한게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나와 다르게 박웅현은 매번 책을 읽으면 좋거나 감동 받은 부분들을 따로 옮겨 놓는다. 그리고 그것을 본인의 삶 뿐 아니라, 광고일을 할 때 사람들을 감탄시키기 위한 뮤즈로 사용한다.


그렇게 그의 독법과 독서 취향은 그의 일과 긴밀히 연결되는 듯하다.


그래서 <책은 도끼다> 를 읽다 보면 어떤 부분은 섬광처럼 번쩍 빛나지만 어떤 때는 약장수의 현란한 호객행위를 보는 것처럼 소란스럽다. 그는 감탄과 울림을 공유하고자 하는게 이 책의 목적이라고 말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프리젠테이션 하듯 강독하기 때문에 이건 설득일까 공유일까 고민하다보면 내 마음이 어지럽혀진다. 감탄은 각자 마음이고 독서는 은밀하고 사적인 것이라 생각하는 나는 그가 책 속의 문장에 대해 입시용 참고서처럼 자세하게 뜻 풀이를 할 때면 슬쩍 눈을 감았다. 물론 배우고 싶은 것이 더 많았지만.


그가 소개하는 책들을 다 읽진 않았지만 몇 권은 내게도 중요한 책들이다. 특히 <그리스인 조르바>는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인물이며 책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캐릭터를 꼽으라면 내겐 조르바이다. 인간도 자연에 가까울수록 아름답다. 게다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기쁨을 춤으로 표현하고, 시간의 흐름 안에 살지 않고 현재 현재를 살며, 머리로 이해하지 않고 팔과 가슴을 사용하는 그를, 나처럼 박웅현도 사랑한 것 같다. 그러나 사랑한다고 그렇게 살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살 수 없어 그리워하는지도 모른다. 그의 강독을 읽다보면 그는 ’키치’의 세계와 조르바의 세계에 아슬 아슬하게 걸쳐 있다는 생각이 든다.

키치의 세계란 똥을 부정하는 세계이며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세계, 또 전체가 아니라 부분을 좋아하는 태도라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저는 키치는 편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가 해석하고 싶은대로, 보고 싶은 대로 잘라서 편집하는 게 바로 키치 아닐까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광고는 아주 키치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우리의 삶 또한 편집이에요. -p230


키치가 이런 의미라면 박웅현의 독법은 ‘키치’적이다. 그의 강독인 이 책도 편집된 노트의 문장들을 다시 골라내어 해설하는 내용이므로 이 또한 키치적이다. 어쩌면 머리로 읽는 모든 독법은 키치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와 내가 사랑하는 그리스인 조르바는 키치의 세계 정 반대편에 사는 사람이다. 우리는 항상 닿을 수 없는 먼 곳에서 반짝이는 것들을 동경하며 그것에 대하여 꿈을 꾼다. 나도 그처럼 키치의 세계에 살면서 조르바를 사랑하고 있다.


사실 나는 추구하는 독법이 있다. 비를 맞으며 물을 건널 때처럼 내 몸 전체가 책을 통과하듯이, 몸으로 책을 읽으려 한다. 이런 독법을 ‘조르바’적이라 부르면 어떨까?


책 읽기는 물을 건너는 것과 비슷하다. (…) 비가 온다면 어느 물가를 건너더라도 온 몸이 다 젖을 것이다. (…) 독서는 내 몸 전체가 책을 통과하는 것이다. 몸이 슬픔에 ‘잠긴다’, 기쁨에 ‘넘친다’, 감동에 ‘넋을 잃는다’……텍스트를 통과하기 전의 내가 있고, 통과한 후의 내가 있다.

-책 <정희진처럼 읽기> 中


자극에 민감해서일까, 쉬운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많은 책이 내게는 도끼였다. 어떤 책은 지성에, 또 어떤 책은 감성에 균열을 만들었고, 그렇게 생긴 틈으로 빛이 들어와 나를 흔들었다. 그때의 그 혼돈을 나는 사랑한다.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와 낸시 홈스트롬의 <페미니즘, 왼쪽 날개를 펴다>는 가장 최근에 읽은 도끼이다. 정보는 진실보다는 질서유지를 위해 편집되어 사용되었는데 AI시대에는 어떤 위험과 대처 방법을 가져야하나 알고 싶다면 <넥서스>를 읽어보기를, 또 이 세계를 살면서 억압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인간 스스로는 그것을 어떻게 내면화하는지 이해하고 싶다면 <페미니즘, 왼쪽 날개를 펴다>의 독서를 권한다.


책이 몸 전체를 통과하면 더이상 그 전의 내가 아니게 된다. 그렇게 책은 영혼을 바꿔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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