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라는 세계>

by 연두님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에세이. 사계절. 2021.

연두 서평.


우리 모두 한때는 어린이였다. 그러다가 우리는 어린이를 잃어버린 어른이 되었다.


김소영작가는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어린이의 마음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이다. 어린이들 옆에서 거울처럼 비춰주는 그런 어른이어서, 우리는 보고도 잊는 어린이 모습을 때마다 감탄하고 기억하고 지지하는 모습에, 그건 커다란 사랑이니까, 읽는 내내 뭉클했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단순하고 긍정적이며 선함을 믿는 세계다. 열려 있다. 절망도 없다. 그래서 어린이와 살다 보면 선물 같은 날들을 맞게 된다.


장래 희망을 얘기할 때 “나는 커서 거북이가 되고 싶어요.”라고 씩씩하게 말하는 조그만 내 딸, 자신의 10번째 생일날, 그날이 너무 기뻐, 자고 일어나 몰래 혼자 나가, 아빠, 엄마를 위한 건강 커플 반지, 언니를 위한 빨간 머리 앤 인형,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는 커다란 비눗방울을 사서 한 손에 가족들 선물꾸러미를 들고 다른 한 손은 비눗방울을 날리며 빛 밝은 붉은 땅, 프린스 애드워드 아일랜드의 너른 캠핑장을 가로질러 걸어오던 그 행복한 모습, 크리스마스날, 태평양 건너 할아버지, 할머니를 위해 주차창고에서 영상통화를 켜고 수십 개의 핸드벨을 흔들며 캐럴 메들리를 연주하던 두 딸의 모습, 생각하면 끝도 없이 줄줄이 사탕처럼 떠오르는 아름다운 어린이의 세계, 그것은 선한 힘이었고 사랑의 춤이었다.


반면, 학교 설문조사에 엄마가 솔직하게 답했다는 이유로 선생님이 불러 세워 친구들 앞에서 조사지를 꾸겨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며 망신을 준 이야기, 커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말에 그런 직업은 없다며 면박을 주던 담임 선생님 얘기, 구름사다리 타려고 새치기하는 친구에게 폭력을 당하고 와서 퉁퉁 부은 얼굴로 울던 모습, 친구 스티커북을 훔쳐와서 어찌 훈계할지 몰라 손바닥을 때리고 나 자신에게 실망한 것, 이그지마로 얼굴에서 진물이 나고 피부가 갈라져, 마치 10라운드를 뛴 권투선수의 얼굴이 되어, 그 모습에 우는 나에게 “엄마, 나는 이 얼굴로 살아도 아무렇지 않아. 엄마만 괜찮으면 돼. 울지 마”라며 도리어 날 위로하던 어린 딸, 이 또한 애를 태우면서 봐야 했던 어린이의 세계였다.


어린이와 함께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리라.


그러다가 나는 어른이 되면서 무엇을 잃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을 잊었는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어른들의 말과 뜻을 거스르지 않는 어린이”, 그런 의미의 착한 어린이가 되고 싶었다. 미소와 사랑은 아무리 많아도 좋았는데, 그걸 얻는 정답은 착한 어린이였으니까.


막내 동생이 태어나기 전이니까 다섯 살 때일 것이다. 어두운 방에 아기는 방바닥에 누워 자고 있고 그 옆에 작고 동그란 상을 놓고 엄마와 마주 앉아 밥을 먹었다. 밥과 반찬을 입에 넣고 씹자마자 바로, “동생 깨겠다! 왜 이렇게 시끄럽게 먹어?” 라며 야단을 맞았다. 동생이 깨면 엄마도 동생도 힘들게 하는 거니까 나쁜 거였다. 그런데 아무리 조용히 먹으려고 해도 내 귀에는 내가 씹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렸다. 나는 씹는 것을 포기하고 조용히 꿀꺽 삼켰다. 눈물이 났다. 주눅이 들었다. 엄마는 어떻게 먹어야 소리가 안 나는지는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나도 물을 생각을 못했다. 이미 엄마는 여기에 없고 어둡고 슬픈 세상으로 들어간 것처럼 보여서. 그게 나 때문일지도 모르니까.


어른은 어린이에게 권력자이다. 권력자가 하는 말과 행동은 권력 그 자체다.


내가 나온 초등학교는 빈부의 차가 큰 동네에 있었다. 우리 동네엔 나와 비슷한 성적을 가진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내향적이고 수줍음이 많은 나는 학교에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는데, 거기에는 내 가난을 들키고 싶지 않은 이유도 조금 있었다.


별일이게도, 그런 내가 4학년 2학기에 인기투표로 반장이 되었다. 생애 첫 반장이 된 다음 날부터 나는 방과 후에 혼자 남아야 했다. 56명이 공부하는 그 교실을 청소하는 게, 선생님이 내게 말한 반장의 역할이었기 때문이었다. 도와주겠다는 친구도 허락되지 않았다. 난 선생님이 나한테 그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것이 내 가난 때문인 게 창피했지만 엄마에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엄마가 슬플 테니까. 고되고 서럽던 그 청소는 한 달 후 엄마가 오만 원을 들고 담임을 만난 다음 날부터 면제되었다.


6학년에 올라가고 일주일 후, 새 담임선생님은 나를 따로 부르시더니, 성적으로는 네가 1학기 반장이 되는 게 맞지만 너는 착하고 예뻐서 2학기 때 반장이 될 수 있으니까 그렇지 못한 아이를 반장으로 시켰다면서 “괜찮지?”라고 물으셨다. 앞에 서서 반장을 하는 것은 내게 두려운 일이라 괜찮은 것 같았지만, 메이커 옷에 메이커 신발을 신은 아이가 나 대신 반장이 된 것은 속상했다. 가난해서 선생님이 나를 싫어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작가는 어린이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는 이상하다고 느꼈으면 좋겠다”라고 했지만 정의로운 어른이 곁에 없다면 참 부질없지 않은가? 내가 사는 어린이의 세계와 내가 보는 어른의 세계는 완전히 달랐는데, 어른의 세계에는 닮고 싶은 것도, 부러운 것도, 하나도 없었다. 그 세계는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낡은 옷을 입고 엄마가 촌지를 주지 않으면 무시하는, 교묘하고 더러운, 부당한 세계였다.


나의 남편은 초등 고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시험을 친 날에는, 집에 가면 영락없이, 아버지가 어디서 구하셨는지, 그날의 시험지를 놓고 앉아 계셨다고 한다. 어린이 남편은 그 방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앉아 가방에서 자신의 시험지를 꺼내 앞에 놓고, “1번 문제는 답이 3번인데 맞았습니다.” 라며 모든 문제에 정답을 맞혔는지 틀렸는지를 말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5번 문제는 답이 4번인데 2번이라고 써서 틀렸습니다.” 하면,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마구잡이로 두드려 맞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무엇으로 맞았는지, 어디를 맞고 있는지, 그때도 지금도 알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 폭력은 고3 때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자란 그는 모의고사 전국 3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하지만 잘 때마다 매일 밤, 내일은 아버지가 죽지 않으면 자신이 죽어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고 한다.



어린이에게는 어른들이 환경이고 세계라는 사실. -p146



70년대의 어린이의 환경에선 비일비재했던 이런 폭력과 학대가 많이 사라졌지만, 2000년도에 내 딸들 또한 부당한 일을 겪었다. 잘못되었다고 얘기하면 엄마들은, 엄마가 선생님한테 잘해서 학교에서 그 자식이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이 더 공정한 거 아니냐고 말한다. 허! 우리 대부분은 차별이 무엇인지, 평등이 무엇인지, 공정과 불공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나이만 먹은 어른이 된 것이다.


어린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의 문제는 근본적인 수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근본적이라는 것은 어린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부터 돌아보는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지적한다.



바로 이 점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린이를 감상하고 싶어 하는 것. (...) 어린이는 대상화된다. 어른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어린이를 사랑한다고 해서 꼭 어린이를 존중한다고 할 수는 없다. (...) 어린이를 감상하지 말라. 어린이는 어른을 즐겁게 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어른의 큰 오해다. -p227



사랑보다 존중이 더 중요하다.


만약, 존중이 어려울 때면 아래의 말을 상기하자.



어린이는 정치적인 존재다. -p236



어린이를 자유민주주의의 정치적인 존재로 대하면 된다. 그 생각으로 존중하면 실수하지 않을 거다.


어린이를 정치적인 존재로 대하면,

그들은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에 깊은 자부심과 소속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정치적인 존재로 자랄 것이다.


나는 내 딸들을 보면서, 내가 어른이 되면서 무엇을 잃었는지 발견하곤 했다.


느리고 천천히 행동하는 딸을 보고, 빨리빨리로 꼼꼼함은 물론, 그 행위를 즐기는 마음과 평화를 잃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그녀들을 보면 내가 사람에 대한 믿음과 세상에 대한 기대를 많이 잃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비만 봐도 춤을 추고, 꽃 보고 노래하며, 구름을 보면 감탄하고, 달님을 보면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점점 감정을 잃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확실한 건 어린이에 대해 생각할수록 우리 세계가 넓어진다는 것이다. -p8



그리고 어른이 되면서 잊은 것은,

좋은 어른이 되겠다는 수많은 다짐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른이고 상대는 어린이라는 것을, 어떤 때는, 잊었다.


어른이 된 후에도 때론 내게도 어른이 필요했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렇게 나는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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