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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싱가포르 가기 싫어요

초등영어교육전공 교사맘의 좌충우돌 아이 국제학교 적응시키기

by 트랄라샘

나는 싱가포르 가기 싫어요


2024년 1월쯤 남편에게 갑자기 카톡이 왔다!

"우리 싱가포르 가게 될 것 같아!!"


아이 아빠는 싱가포르 파견을 위한 경쟁시험에 지원했었고 최종 선발이 결정됐다고 알려왔다! 힘들게 일하면서도 가족들을 좋은 환경에서 경험하게 하고 싶은 마음에 퇴근 후 시험공부를 꾸준히 했었고 올해 선발이 안되면 더 이상 지원하지 않기로 나와 약속도 했었다.


남편이 그 해에 유독 해외 출장이 잦아서 사실 공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워낙 뭐든지 꾸준히, 책임감 있게 하는 사람이라 알아서 잘하겠거니 하고 시험과정에서 참견하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다.(물론 남편 생각은 다를 수 있다...)


오히려 해외 출장 전후로 야근도 많고 출장지에 다녀와서도 시차적응도 못한 상태로 다시 마무리를 하러 가는 모습이 짠하기도 했다. 행여라도 건강이 안 좋아질까 봐 걱정도 많이 했다.


그런 나날을 보내 던 중 온 반가운 메세지였다. 사실 남편이 시험 보러 가는 날 BTS의 진이 꿈에 생생하게 나왔었다. 나는 길몽이라고 생각했지만 혹시나 남편에게 부담을 줄까 봐 시험 보고 나중에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역시 그냥 웃어넘긴다.


우리가 2024년까지만 파견을 고려했던 것은 아들 때문이었다.

아이가 3학년인데 4학년만 돼도 2년 파견 후 돌아오면 6학년 졸업 때이다. 6학년 후반에 전학 오는 아이들은 경험 상 쉽게 아이들과 어울리기 힘들고 또 중학교를 가더라도 같은 학교 출신 아이들끼리 뭉치는 경향으로 쉽게 적응이 힘들다. 물론 성격이 외향적이라 누구와도 잘 지내고 사춘기도 스리슬쩍 넘어가는 아이들은 무관한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아들은 심한 계란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어서 어릴 때부터 남들 먹는 케이크나 빵 종류를 보면서 자기만 못 먹는 상황에 속상한 마음을 가져온 아이라 아이의 감정과 기분을 많이 살피며 키웠다.

물론 다른 부분에서는 아이를 강하게 키우려고 많이 노력했지만 다른 아이들이 먹는 음식을 자신만 못 먹는 상황에도 오히려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는 아이를 더 살피게 되고 더 짠하게 생각하며 키웠다. 그래서인지 다른 요인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아이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해외생활은 3학년 이하가 적기라고 생각했다. 외국 아이들은 워낙 독립적으로 길러지는 편이라 성숙하고 사춘기도 오더라도 심하게 지나간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무너진 공교육에 교실마다 사건사고가 많아 해외 교사들도 많이 힘들어한다고 들었다. 사춘기 즈음의 해외 생활은 공부보다 아이의 성격형성이 큰 관건이다. 그나마 어린 나이라면 좀 더 수월하게 지나갈 수 있다.


다행히 아이가 3학년 중반에 싱가포르 파견을 갈 수 있었고 아이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위해서는 매우 잘된 상황이었으나 나에게는 사실 좋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학교 현장에서 어떤 교사로 남아야 하는지 고민도 많이 될 때였고 어느 때보다도 학생, 학부모, 관리자 요구에 맞춰 교사로 일하는 것이 녹록지 않을 때였다. 여러 고민을 실천에 옮기며 나의 미래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그림을 그려야 할 때쯤 결정된 일이라 우리 가족에게 더없이 좋은 일임에도 한편으로는 근심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아이를 위한 고민에서는 결정이 빠른 엄마이다!

그래! 가보자! 도전해 보자!

남편도 역량을 더 업그레이드하고 아이에게도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자!

다양한 기대역할 중 '엄마'라는 역할은 어떤 역할보다도 정신이 번쩍 들게 하고 없던 에너지도 만들어 주는 것 같다.


마음의 결정 후에는 그때부터 속전속결로 일을 진행해 갔다.

싱가포르의 생활여건, 아이가 다닐 학교, 한국주변 정리 등 우리 부부는 일사천리로 검색을 하고 의사결정을 시작했다.


6개월쯤 전에 결정된 것이라 준비할 시간은 충분했으나 아이 학교를 결정하기에는 그렇게 여유 있는 기간은 아니었다. 그래도 여러 가지 고민했던 일들이 잘 해결되나 갔고 심지어 아이 알레르기 검사 결과도 좋아져서 면역치료를 마치면 싱가포르에서 계란이 들어간 빵들은 자유롭게 먹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있었다!!

그것은 싱가포르행 결정의 가장 중요한 이유였던 아들이다!

아이에게 아빠의 파견선발을 이야기하고 함께 축하하자고 했을 때 아이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안 간다고 했다...

자기는 학교가 너무 좋고 친구들이 있어서 안 가고 싶단다....


물론 아이의 상황은 이해가 갔다. 아이가 다니고 있던 학교 친구들, 선생님도 좋아했고 안정적인 생활에 만족하며 지내고 있었다. 태권도도 국기원에서 품띠를 땄고 6개월이나 검은띠를 따기 위해 수련하고 있었다. 갑자기 자신의 생활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생기는 것이 싫은 모양이다. 한 편으로는 아이가 지금의 학교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나름 많은 노력을 했었다는 걸로 생각이 되어 딱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가 저렇게 까지 단호할 줄은 몰랐다. 가장 만만치 않은 복병을 만난 듯했다.

우리는 기다리기로 했다.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까....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영어학원도 다니고 아이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로 했다.


아이는 다행히 조금씩 수긍을 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요인은 친한 친구도 아빠의 파견으로 비슷한 시기에 영국행을 가게 된 것이다.

그 친구는 더 무덤덤했고 심지어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서 영국에 가서 하고 싶은 To do list까지 만들어 놓았다!! 친구가 차분하게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무언가를 느낀 모양이었다.


또 한 가지 아이가 싱가포르행을 결정하게 된 이유는 북한의 오물풍선 때문이었다!!

이게 웬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싶겠지만 아들은 북한의 도발에 예민하게 촉각을 세우던 아이였다. 북한에 관한 뉴스만 나오면 귀가 쫑긋 세워지고 당장 전쟁이 나는 거냐며 초조해했다. 언제 자기는 군대를 가냐며 물어오기도 하고...

이런 아이에게 북한의 오물풍선뉴스는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우리 부부는 사악하게도 싱가포르행에 북한의 오물풍선을 이용하기로 했다.

싱가포르에 가면 북한이 오물풍선이 오지 않고 안전하다고!!!

잠깐 가서 오물풍선 끝날 때까지 기다리자고!!!


엄마 아빠에게 이 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싱가포르 빨리 가자!"

"그럴까? 그럼 엄마 아빠 준비한다! 학교도 알아보고 사는 곳도 알아볼 거야?"

"응 알았어!"


이로써 우리는 싱가포르행을 속 시원하게 결정할 수 있었고 준비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에게 또 다른 복병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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