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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비오 Nov 21. 2023

인생은 어떻게든 살아져

2023 김승옥문학상 수상집 - 권여선 外

 대학시절 절친한 선배의 추천으로 접했던 김승옥 작가.
 스무살의 나는 아무 것에나 쉽게 흥분하고, 쉽게 분노하고, 누군가를 이겨야만 직성이 풀렸고 나 스스로도 주체하기 힘든 결기에 가득찼었다. 하지만 김승옥 작가를 접하고 마음이 일순 차분해졌던 기억이 난다.

 뭔가 끊임없이 화두를 던져주며 끝모를 생각의 늪으로 빠지게 했던 순간들, 다양한 생각 모두를 감내하고 허용한다는 듯한 여유, 그럼에도 놓치지 않는 치열함까지 ‘깊이’라는 단어를 스무살의 나에게 깊게 각인시켰었다.

 매해 가을 빼놓지 않고 찾아 읽으며 스무살의 나와 지금의 나를 떠올리며, 이 시대를 바라보는 중견 작가들의 인간에 대한 마음과 삶을 들여다보는 깊이를 느끼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어지고, 더 간절해 지는 느낌처럼 올해 역시 매순간 긴장 넘치고, 집중하게 하고, 그들이 펼쳐놓은 삶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숨가쁘게 일곱 편의 작품과 인생을 다시 한번 느껴본다.

 지금은 낯선 대학가 하숙집을 배경으로 지방에서 올라온 네 친구의 인생과 그들의 삶 속에 드러나지 않은 생각과 고민들을 독특하게 보여주고 있는 권여선 작가의 ‘사슴벌레식 문답’.

 30년 전 대학을 입학한 내게는 너무도 낯익은 대학가 하숙 문화와 음주 문화, 그 시절 MT, 그리고 학생운동까지. 때로는 너무 같아서, 때로는 너무 달라서 넷이 함께 할 수 있었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또 방황했던 스무살 언저리를 지나던 네 청춘의 과거는 마치 내 얘기인 양 깊게 빠져들게 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러한 과거가 있었는지 조차 떠올리기 쉽지 않고(물론 아직 과거의 삶을 또다른 방식으로 이어가고는 있지만), 절친했던 친구의 장례식(자살로 인한)조차 찾지 못하는 상황을 살펴보며 어디서부터,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조금씩 어긋나 왔고, 왜 그 마음들을 껴안지 못했었는지 돌아보고 있다.

 그들이 여행에서 했던 대화의 방식을 ‘사슴벌레식 문답’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그들이 이후 삶을 살아왔던 방식 자체가 바로 ‘사슴벌레식’은 아닐까, 그리고 ‘인생은 원래 어떻게든 그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 나아가 인생을 그렇게 견뎌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희망’이라는 끈을 쉽게 놓지 말고, ‘그래 어떻게든 견뎌지지’라고 우리 모두에게 파이팅하고 있는 듯 하다.

“비극에서 중요한 것은 존재 증명을 위한 육하원칙이 아니라 그 비극을 겪는 이의 기막힌, 애끓는 내면이다.” <작품 中>

 열여섯의 봄, 아홉살의 여름(썸머)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과 특히 기후위기를 앞둔 세계에 대한 고민과 노력들을 보여주고 있는 최진영 작가의 ‘썸머의 마술과학’.

 다소 독특한 제목과 등장인물들의 이름 탓에 조금은 선입견이 있었지만, 그렇게 말랑말랑하게 접근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었다.

 그저 ‘인생이 다 그래’라며 현실에서 어떠한 변화의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불평과 불만만을 쏟아 부으며, 그리고 사태 해결의 계획이나 프로세스보다는 ‘한 방’에 기대는 어른의 무책임함 보다는 그러한 허위와 위선에 맞서며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 갈 것임을 말하고 있는 아이들의 허황됨(?)에 보다 더 믿음이 가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위악보다는 위선이 낫다고, 망하고 싶으면 너 혼자 망하라고 확실하게 말할 것이다.” <작품 中>

 제목에도 나와 있지만 이 지구를 지켜내고 그저 무기력하게 입으로만 떠드는 것 보다는 조금만 실천이라도 하는 것이야 말로 ‘마술과학’처럼 진정으로 우리가 지금 기울여야 할 시작일 것이다. 그저 아이들의 말이라고, 그렇게 해봐야 별로 달라질 것 없다고 하기 전에 뭐라도 하는 것이 세상과 지구를 위해서는 더 필요한 스텝임을 새삼 느껴본다.

“썸머를 생각하면 미래를 무한하게 긍정하고 싶다. (…) 엄마 아빠에게는 낯설지만 우리에겐 당연해질 것들을 사람들이 계속 만들어낼 거라고 믿고 싶다. (…) 꿈이 바뀐다면 바뀌는대로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작품 中>

 같은 직장인이자, 비슷한 연령대, 비슷한 직장 내 위치 등으로 그려져 더 없이 깊은 공감을 불러 일으켰던 서유미 작가의 ‘토요일 아침의 로건’.

 직장인의 두가지 희망은 ‘승진’과 ‘월급’이라는 말이 있듯이 ‘로건’은 회사에서 주중 내내 충성하고 더 나은 기회(미국 지사 발령)를 잡기 위해 토요일까지 투자하며 성실하게 생활해 오던 중 갑작스레 찾아 온 뇌종양 판정으로 인해 모든 계획이 갑작스레 중단된다. 이후 4주간을 함께 하며 나의 미국 지사 발령을 나보다도 기대했을 영어 과외 선생님에게 작별을 고하기 위한 로건의 노력(?)은 많은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

 회사와 직장인도 그렇지만, 어찌보면 필요에 의한 계약관계일뿐인 영어 과외 선생님과의 4주간의 인연 역시 자신에게는 소중했음을 깨달아 가고, 그리고 여타의 이유로 그 인연이 중단되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하는 그 마음에 이르기까지 고요하지만 무겁게 느껴진다. 그저 변화없이 반복되는 일상처럼 비춰지지만 실상은 그 속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와 생각들이 있었노라고, 그리고 그러한 일상들이 모여 인생이 됨을 잊지 말라고 하는 것 같다.

 “무언가 그의 앞으로 계속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고 자신이 무엇을 선택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러자 비로소 마음이 아팠다.” <작품 中>

 과거 크나 큰 재난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음에도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살아가려는) 주인공이 폭염과 곰의 탈주라는 상황에 자기만의 공간이었던(그렇게 여겼던) 곳을 재난대피소라는 공공의 공간으로 공유하며 사람 간의 관계와 인식의 변화들을 보여주고 있는 최은미 작가의 ‘그곳’.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 집중호우, 태풍 등이 잦아진 요즘의 상황에서는 언제건 쉽게 맞닥뜨릴 수 있는 환경이지만, 상황 자체가 가져다 주는 불안감과 무서움 보다는 그러한 상황을 견디는 사람들의 다양한 의식과 행동에 주목하게 된다.

 남들과는 전혀 무관하게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결국에는 타인의 말과 행동들을 모두 인지하고(관심있고) 서로 간에 영향을 미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왠지 무심함 속에, 비록 내 삶이 힘겹더라도 더 힘겨운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 수 있는 바로 그 지점이 우리가 삶을 희망적으로 살아낼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내가 의지했던 친절의 순간들도 나를 살린 것들도. 그것들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다.” <작품 中>

 故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나온 ‘수감자들은 더운 여름에는 누군가 내 옆에 있기만 해도 짜증나고, 불쾌해 서로 간에 미움과 짜증이 들지만, 칼날 같은 추위가 몰아치는 겨울에는 서로서로의 체온에 의지해 꼭 부둥켜안고, 조금의 떨어짐도 없이 서로간의 애틋함을 느끼게 된다’는 구절(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런 비슷한 의미의)이 생각난다.

 가장 위험한 순간에,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누군가를 의지하고, 누군가에게 함께 버텨나갈 힘이 된다는 것,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는다.

 “나는 늘 낯선 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해 살았어요.” (…) 친절과 거리가 먼 상황이 종종 쉽게 허용되던 시간들을 지나오면서 (…) 무례 속에서 서로 죽어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친절 속에서 어떤 시간을 살아 건너기도 하는 이야기. 그 마음이 일었던 순간만은 오래 기억하고 싶다. <‘작가의 말’ 中>

 로맨스 소설을 의뢰받은 주인공이 어느 날 꿈에서 본 장면을 되짚으며 있을 법한 상황들을 가정하며, 인물들의 변형, 상황과 구성의 변화 등 다양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구병모 작가의 ‘있을 법한 모든 것’.

 非대면 시대에 누군지도 모르고 또한 어떤 사람일지도 모를 누군가에게(여성으로 단정짓고는) 호감을 느끼고,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한 다양한 상상들을 하며 본인만의 시각과 인식의 틀 안에서 전개해 가고 있는 모습은 마치 우리 사회가 상대방의 입장이나 처지는 고려함이 없이 ‘그저 내가 관용을 베풀고 호의를 베풀었으니 너는 무조건 받아라’라는 식의 다른 모습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찰나를 초월한 이미지, 유사성의 끄트머리에 간신히 매달린 기억의 파편, 무시로 변용되고 변주되며 변모하므로 언제까지고 파악되지 않는 것을 가리켜 존재가 아니라고 단정짓은 일의 오만에 대하여.” <작품 中>

 내 인식의 틀 안에서 모든 상황을 예측하고, 판단하는 것의 무서움, 그리고 강요 아닌 강요로 자신만의 호의가 가져다 주는 불편함까지 왠지 통렬하면서도 씁쓸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특히, 이러한 모든 것이 非대면 시대가 가져다 주는 오해와 이해의 부족이 아니라, 이전 시대에도 공공연하게 자리잡고 있는 사회적 인식의 틀이라는 것이 더 큰 문제이리라.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궁글리고자 하는 욕망.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조각으로 변환하고자 하는 시도가 과학과 문명을 이어왔지만, 언젠가부터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그대로 놓아두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작품 中>

 ‘진정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있는 그대로를 이해하고, 그 처지 그대로를 바라봐 주는 것. 나의 시각이 아닌 그 사람의, 그 시대의 언어로 치환하여 이해해 보려고 하는 것. 그럼에도 이해되지 않는 것은 그냥 그대로 놓아 두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있을 법한 모든 것’은 상상력이 상실된 비대면 시대에 쓰인 성실하고도 신랄한 보고서다. (…) 비대면 시대의 인관관계를 황폐하게 만드는 것은 ‘비대면의 형식으로 제공된 노동 위에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무지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사람들을 결코 ‘사람’으로 대하지 않으려는 젠더화된 관성이기도 하다는 것. 비대면이라는 관계 형식을 물신화하지 않고, 희망과 절망의 이분법을 과감하게 가로지른 이의 대답이다. <작품해설 中>

 대학시절 사주 카페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화두로 하룻 밤 화려한 요트 여행을 즐기는 부부의 다양한 모습과 생각을 보여주고 있는 손보미 작가의 ‘끝없는 밤’.

 ‘두번째 기회’를 획득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그러한 기회를 찾고자 함인지는 모르겠지만 ‘두번째 기회’라는 화두를 통해 자신이 보내온 삶을 돌아보며 알 수 없는 통증의 원인을 되짚어 보는 여자의 이야기는 끝없는 양파 같은 면을 보여주고 있다.

 여자는 남편과는 대면대면한 현실 부부의 모습이고, 겉으로는 이해와 애정으로 덮여 있지만 뭔가 허전한 관계임을 계속 암시하고 있다. 그저 배려하고 이해하지만, 속으로 깊이있게까지 개입하고 싶거나 마음을 채워주는 관계가 아님을.

 “그게 바로 그녀가 (내키지는 않지만) 결정한 이유이기도 했다. 침울한 아내를 위해 희생하는 역할을 자처한 남편의 만족감을 지켜주려고, 서로에게 쓸모없는 것을 건네주는 것처럼.” <작품 中>

 애초 요트 여행에 초대한 대학 선배이자, 남편의 절친과의 애매한 관계부터 시작해 애완견의 치료를 위해 들렀던 동물병원 수의사에게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을 느끼고 깊은 관계로까지 빠지게 됐던 상황까지 여자는 요트 여행 내내 다양한 생각을 하며 자신이 느끼는 통증의 원인을 찾기도 하고, 현재에서의 이 불편한 상황을 견디고도 있다. 소설의 제목처럼 화려한 모습의 요트 여행이 한순간 난파된 요트를 뒤로하고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순간으로 변하는 등 ‘끝없는 밤’과 끝없는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자신의 내면에서의 자신의 내면을 고통스럽게 했던 통증은 바로 자기 자신이 만든 것임을. 애써 외면하고 덮어버리고자 했던 바로 그 지점에 원인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선택 또한 본인의 몫임을.

 “죽은 대상을 영원히 행복하게 만듦으로써 이득을 얻는 건 결국은 살아남은 사람들이라고. 죽은 대상이 기필코 행복하게 남아야 하는 건, 다름 아닌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해서라고.” <작품 中>

“해방감은 통증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그간의 기만을 벗어버림으로써 생겨났다. 더는 “교만”하지도 자신을 “과신”하지도 않아서 생겨난 일종의 “자유”이자 “치유”이다. (…) “교만”을 버리고 “건방”을 떨지 않으며 진실을 기만한 기회가 언제든 또 올 것이다. 그게 기회가 될지, 또다른 통증의 원인이 될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작품해설 中>

 어린 시절부터 동경해 왔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촌 언니와의 뜻하지 않은 뉴욕에서의 재회를 통해 누구에게나 찬란히 빛났을 순간을 그려보는 백수린 작가의 ‘빛이 다가올 때’.

 동경하던 사촌 언니는 큰 이모의 바람을 대신해 교수가 되었고, 늘 자신으로 인해 엄마가 시력을 잃게 됐다는 생각으로 모든 순간 큰 이모의 손과 발이 되어주었다. 늘 자신보다는 엄마의 바람과 엄마의 삶이 우선이었던 사촌 언니가 뒤늦게 중년의 나이에 안식년을 맞아 건너온 뉴욕에서 자신의 삶의 진짜 ‘빛’을 찾아나가는 여정이 따뜻하면서도 응원의 마음을 갖게 한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사람들은 자신이 진정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제때 알아채지 못한다는 것. 그 사실은 여전히 나를 놀라게 한다.” <작품 中>

 8살 차이로 인해 당시에는 생경하고 남의 시선도 신경쓰여 멀게 느껴졌던 언니의 감정이 언니의 나이가 되어 다시 바라보니 언니가 당시 느꼈던 또 다른 ‘빛’이라고 생각되는 장면이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아울러, 작품의 마지막 사촌 언니가 큰 이모와 산책을 하면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그 시절 언니가 엄마에게 전적으로 자신의 어린시절을 희생하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이 부족한 감각을 엄마를 통해 채워나갔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이 작품이 던지고 있는 깊은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언니가 그때 어떤 시기를 통과하고 있었다는 걸 내게 마침내 깨닫게 했다. 그건 얼마나 달콤한 일어었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었을까. (…) 그리고 그건 언제 누구에게 찾아오든 존중받아야 마땅했다.” <작품 中>

 깊어가는 가을 때문이었는지 작품 하나하나에 깊이 빠져들고, 매작품마다 다양하고 많은 생각을 했다. 때로는 작품이 던져주는 물음에, 때로는 작품이 품어주는 따뜻함에 쓸쓸해가는 늦가을의 정취와는 다른 따스함을 안겨준 것 같다.


 늘 따스함을 잃지 않는 것, 누군가에게 의지할 힘이 된다는 것, 우리가 의미있게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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