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들어올 빛을 기다리며...
로마네스크 성당, 빛이 머무는 곳 - 강한수
중세 유럽은 카톨릭 신앙 중심의 사회이면서 각 민족들의 세력 확장으로 시시각각 세계(당시 유럽) 패권의 흐름이 변화되던 때라고 한다.
실제 세계사적 기본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종교, 미술, 음악, 사회, 문화, 정치사 등을 한 흐름으로 꿰뚫지 못하고 분절적이고 중구난방으로 이해하고 있어 유독 중세 유럽 시대와 관련된 어떠한 책을 읽어도 많이 혼란스럽고 이해하는데도 오래 걸리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독서의 속도 또한 느려지고, 흥미도 책의 처음 집었을 때보다는 확 사그라드는 느낌이었다.
현직 사제이기 전에 건축학을 전공했고, 건축 현장에서도 몸담았던 강한수 신부님의 중세 유럽사 그 중에서도 카톨릭 신앙의 중심인 ‘로마’ 제국 시대와 그 이후의 유럽의 역사를 ‘성당 건축’ 측면에서 바라본 흥미로운 책이었다.
로마 제국 멸망 이후 유럽의 패권이 게르만족(독일 민족)에게 넘어가게 되고, 게르만족의 일파로 서유럽을 차지한 프랑크족이 세력을 크게 확장하게 됐다. 교황이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대제에게 서로마제국 왕관을 씌워주고. 카롤루스 대제가 로마 제국의 재건을 꿈꾸며 로마네스크(로마 양식)이 발생했다고 한다.
‘로마’라는 상징적 의미가 보여주듯 중세 유럽에서 모든 왕국의 꿈은 로마 제국이었을 것이고, 로마의 양식과 문화, 건축, 제도, 법, 사회질서 등 모든 것들이 그대로 유지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을 것이다. 당시 카톨릭 신앙이 정신적 중심이었던 만큼 로마의 양식(건축과 미술작품 등)도 성당과 수도원을 중심으로 크게 로마네스크 양식이 확산되었다고 한다.
이후 성당의 주요 건축 양식이 된 ‘고딕’ 양식의 성당 이전에, 고대 유럽의 바실리카(교회당) 양식에서 발전한 중간적 단계에서의 로마네스크 양식은 특히 수도원을 중심으로 많이 확산되고 발전했다고 한다.
평면적으로는 위에서 내려다 봤을 때 십자가를 눕힌 모양을 주요 특징으로 하고 서쪽의 파사드에서 동쪽의 이스트엔드까지 수직과 수평을 교차하며 내부에 네이브월, 천장, 아케이드 등을 약간씩 변형적으로 두면서 웅장함과 신성함을 드러내고 있는 듯 하다. 당시에는 성당 또한 하느님께 바치는 제대가 있는 신성한 곳으로서의 ‘성스러운 곳’이었던 만큼 (물론 지금도 그러하지만) 일반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성당 건축으로서의 메시지도 포함되었으리라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에서도 전주 여행에서 들렀던 전동성당 역시 로마네스트크 양식이라고 하고, 성공회 성당 또한 이 양식을 따랐다고 하니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들러보고 싶다.
책에서 소개해 준 스물세 곳의 성당의 건축물들과 내용과 사진들을 보며, 비록 건축학적인 내용은 전혀 이해를 못했지만 그 공간이 주는 성스러움과 신비로움, 그리고 웅장함과 차분하게 만드는 기분까지 그 감정은 고스란히 전달받은 느낌이다.
특히 언젠가는 한번 꼭 가보고 싶은 산티아고 순례길(大 야고보의 행적을 따라가고, 가장 널리 알려진)의 최종 도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비롯해 피사의 사탑으로만 알고 있었던 ‘피사의 성모승천 대성당’, ‘몽생미셀 수도원 성당’ 등 기회가 된다면 유럽의 성당을 순회하는 여행을 하며 깊은 울림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솟구쳤다.
그리고 우리 나라에는 좀 떨어져 접근하기 쉽지 않다는 느낌이지만, 유럽에서는 수도원을 중심으로 신앙이 발달돼 와서 좀더 보편적이고 접근하기 편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온 가족과 함께 프랑스 수도원 중심의 성당을 다니며 기도하고, 응답해 주시는 말씀과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안고 싶다.
지금 카톨릭도 시기적으로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시기가 곧 다가오고, 예수님께서 탄생하는 주님 탄생 대축일을 앞두고 있다.
희망과 기대 속에 지나치지 않고 차분히 기다리는 마음의 자세를 다시금 정화해야 하는 이시기에 중세 유럽의 성당 건축 양식들을 둘러보며 다시 한번 처음 세례를 받고, 성체를 모시던 순간을 떠올려 본다.
계속 고민 중인 입으로만 하는 신앙, 머리만 커지는 신앙은 아닌지 정말 그만큼 치열하게 기도하고 말씀에 귀 기울이며,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다시 한번 나를 되돌아 본다. 조그만 유혹도 이겨내지 못할 만큼 나약한 존재이지만 하느님께서 소중하게 ‘보시기에 좋았을’ 그 모습으로 창조해 주신 ‘나’를 좀더 사랑하며, 주님께서 이끄신 사명대로 살고자 하는 가장 작은 노력이라도 해봐야겠다.
오늘도 신앙에 대한 고민과 함께 그에 맞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며, 내 안의 혼돈 상태에서 벗어나 평안과 안식을 찾던 순간을 떠올리는 성경 속 문구를 찾는 것 또한 소득이리라.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고 구하면 결국에는 찾아지는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신앙의 첫 문구를 다시금 떠올려 본다.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창세 1, 1)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에페 5,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