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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비오 Nov 28. 2023

너무 깊지 않은 무심함이 가져다주는 힘

2023 이상문학상 수상집 - 최진영 '홈 스위트 홈' 外

 이 책을 처음 접하게 됐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을 추동시켜준다고 생각했던 사회과학 서적, 철학 서적 중심의 독서 편력에서 그 당시 개인적 시련으로 머리를 식히고자, 그리고 왠지 모르게 윤대녕 작가에 이끌려 처음 접하게 됐던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

 마음의 상태가 그러해서 였는지 단편 소설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됐고, 그 뒤로 다소간 냉담하다시피 하다 다시 손에 쥐고서는 매해 빼놓지 않고 읽게 되는 것 같다. 그때 나를 이끌었던 윤대녕 작가는 이제 중견을 넘어 심사위원으로서의 입지를 지니고 있다는 것도 신기할 따름이다.


 대상 수상작인 '홈 스위트 홈'최진영 작가는 여러 번 읽었던 것 같고 익숙한 듯 했지만 최은영 작가, 최은미 작가와 헷갈렸음을 알게 됐다.

 분명히 일어나지 않은 일을 기억하고, 당시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하는 도입부로 인해 망자가 된 유령이 머지 않은 미래를 보는 내용일 것이라 여겼지만, 말기 암 환자인 주인공이 스스로 기억하는 (기억하고 싶은, 기억으로 만들고 싶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기억을 토대로 삶의 희망(까지는 아닐지라도)이나 삶의 이유를 만들어 가는 내용임을 깨닫고 다소 먹먹해 왔다.

 그리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어떠한 위로나 공감보다도 ‘내일 뭐 하자’, ‘다음에는 가보자’ 라는 투의 무심한 듯한 화법이 때로는 당사자가 내가 그날까지 버텨야 하는 조금씩 조금씩 쌓여가는 이유이자 죽음과 맞서는 이 되리라 생각을 바꿔본다. 나의 입장에서 재단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닌 그 사람의 입장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또한 움직여 질 수 있는 행동과 대화를 위해서 내가 가져가야 하는 삶의 스탠스가 어떠해야 하는지도 다시 한번 깨달아 본다.

 소설 보다 시리즈에서 처음 접했던 김기태 작가‘세상 모든 바다’는 마치 지난해 이태원 참사를 연상시키듯 BTS 급의 아이돌 콘서트 장에서 일어난 불시의 참사를 소재로 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참사로 인한 희생자에 대한 기억과 안전에 대한 계몽성의 글이 아니라 재일교포 3세로서 한국인도 그렇다고 일본인은 더더욱 아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자의식에 관한 글임을 깨닫고 아마도 김기태 작가의 글을 꽤나 오랫동안 주목해서 읽게 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다.

 약간 판타지 느낌을 주기도 하고, 기괴한 느낌을 던져 주었던 박서련 작가‘나, 나 , 마들렌’은 소설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상상력을 무한히 자극시켜주고, 단순히 상상만 하며 유쾌하고 흥겨운 것이 아니라 실제 정신적인 부분에서는 가능할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으로 그저 웃을 수만은 없었다.


 다양한 상황에서의 타인의 만족을 충족시키기 위해 '''또 다른 나'가 각자 공간에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의 절실한 부탁 앞에서 결국에는 거절하며 (그 자신이 가해자를 마음에 두고 있어서일 수도) 가장 가까웠던 관계의 파국이 예고되는 그 순간, 나는 계속된 분열로 다른 모든 시선을 충족시키기 보다는 내 손으로 직접 또 다른 나를 살인하는 (자살하는) 결단을 내리게 된다.

 비록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상황이겠지만, 가정과 학교, 회사, 그리고 다른 환경에서 숱하게 겪었고, 또한 접하고 있고 접해야 하는 갈등과 고민의 순간일 것이다. 내 몸을 분열시켜 가면서까지 모든 상황을 잘 대처하고 싶은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상황일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나’이고, 어디에도 휩쓸리지 않고 나의 본질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리라.

 누가 봐도 평화롭고 화목하고 애정 넘치는 가족 안에서 딸이 준비 중인 작품을 통해 애써 감추어뒀던 아픈 기억을 끄집어 내고 그로 인한 내적인 갈등과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서성란 작가‘내가 아직 조금 남아 있을 때’ 또한 깊은 마음의 울림을 주었다.


 지금의 삶을 깨뜨릴 지라도, 또한 마음이 깊이 다칠 수 있음에도 꼭꼭 숨겨두었던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용기를 내고, 또한 그러한 진실을 마주하면서 다시 내면의 치유를 이뤄가는 과정이 가슴 시리면서도 내가 할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경외감마저 들게 했다.

 나 또한 한 때 너무나도 열렬한 팬이었던 UFC 격투기 선수 ‘크로캅’의 마지막 리턴 매치에 대한 소재를 시작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는 이장욱 작가‘크로캅’.


 이장욱 작가의 작품은 계속 찾게 될 것 같은데, 다양한 소재를 통해 글을 이끌어 가는 솜씨도 뛰어나지만 계속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이끌림도 있는 것 같다.
 한때 서로 의지했던 중년의 남성들이 어떠한 계기로 서로의 신뢰관계가 깨지고 결국에는 서로의 목숨을 노리게(?) 될 정도의 사이가 돼 버린 그 서사를 너무나도 공감되고 이끌어 가고 있다. 또한 극적인 반전으로 잠시 멍하게 만들며 앞장을 계속 뒤적이게 만들었다.

 한때 열렬한 동지였던 관계가 원수가 되고 그에 대한 통쾌한 복수를 꿈꾸는 듯 하지만, 결국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관계를 회복하는 (그 방식이 너무 놀랍기는 했지만) 전개가 너무도 숨막히면서 긴 여운을 갖게 한다.

 크나 큰 재난상황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음에도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그렇게 보이는) 주인공이 폭염과 곰 탈주라는 상황에 자기만의 공간을 재난대피소라는 공공의 공간으로 공유하며 사람의 관계와 의식의 변화들을 보여주고 있는 최은미 작가‘그곳’.


 쉽게 맞닥뜨릴 수 있는 상황이지만, 상황 자체의 내용 보다는 그러한 상황에서의 다양한 사람들의 의식과 남들과 무관하게 개인주의적으로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결국에는 타인의 행동과 말들을 모두 인지하고 영향을 미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지금을 보는 것 같다.

 가장 위험한 상황에서 내가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것은 정말 올바른 판단인 것인 가, 어딘가에 고립되는 느낌을 상상해보면 쉽지 않을 것 같다. 생각이 생각을 낳고, 고민이 더 큰 고민을 안겨다 주는 고립된 상황에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 것인지, 정말 누군가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군가와 무언가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임을 다시 한번 느껴본다.

 어수선한 분위기 탓인지 나의 집중력이 조금  떨어졌음인지 온전히 책에 집중하지도  일상을 치열하게  살아가지도 못하고 있는 요즘.

 다시 한번 책과의 대화를 통해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들을 점검해 본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너무 신경쓸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아예 무시할 수는 더더욱 할 수 없는 상황임을 인지하고, 적절한 (가장 어려운) 관계들을 꾸려 나가보도록 노력해 보자.

 너무 깊이 몰입하면 상처가 되는 것처럼, 상처받지 않고 나의 중심과 나의 생각과 나의 자존감을 지켜갈 수 있기를.

 그리고 무심한 듯 나를 둘러싼 것들에 대한 관심도 던져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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