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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비오 Jan 03. 2024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아는 만큼 보인다 - 유홍준

 유홍준 교수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 국내편 총 12권의 종합 요약판이라고 해도 좋고, 이 한권에 가장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14편의 우리 문화유산을 다시 한번 정리하며, ‘꼭 이것만은 알고 가야 한다’고 책을 집어들게 만든 30주년 기념판이다.


 이 책을 아우르는 하나의 문장이자 우리 국토 문화유산 답사기의 핵심은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로 설명될 수 있다.


 아버지의 고향인 영암 도갑사를 출발로 이 책이 시작된 것도 흥미로웠지만, 어린시절부터 숱하게 봐왔던 월출산과 도갑사를 나는 얼마나 소홀하고 하찮게 대했나 하는 생각부터 들게 했다. 지금은 국립공원이 됐지만 어린 시절에는 그저 할머니집 뒷산으로 여겼고(실제 그렇게 놀이터인양 대하며 놀기도 했고), 백제 문화의 원류인 왕인박사가 수학하던 도갑사도 그저 동네 절로만 느꼈던 것 같아 못내 미안한 마음이다.


 아직은 가보지 못한 강진도 참으로 매력적인 곳이라는 느낌이다. 책에 소개된 무위사는 물론 다산 정약용 선생이 귀항살이했던 다산초당도 꼭 한번은 보고 오고 싶은 마음이 깊이 든다.


 너무도 아름답고 자연의 모습을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자연과 조화롭게 인공의 美를 가미했다는, ‘자연과 인공의 행복한 조화’로 부르는 담양 소쇄원도 아직 가보지 못함에 참으로 어디 놀러가보지도 못하고 그저 집에서 뒹굴거렸던 게으름에 다시금 부끄러워진다.


 안동 병산서원, 청풍 한벽루, 아우라지강 정선 정암사, 설악산 진전사터ㆍ선림원터를 지나 책의 1부 ‘사랑하면 알게 된다’의 마지막을 차지하고 있는 한라산 영실에 이르러 언젠가는 꼭 한번 한라산에 가보리라 하는 다짐을 해본다.


 지리산은 대학교 때 숱하게 올라 천왕봉에서 일출을 맞이했던 경험도 있지만(사실 그때 어떤 감정과 느낌이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한라산은 그렇게나 많이 제주도를 가봤지만 단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

 그저 지난 겨울 제주도 가족 여행 숙소가 한라산 중턱 부근에 있어, 백록담이 있는 정상이 구름에 둘러싸여 있는 신비로움을 간접적으로 느껴본 것이 전부였다.

 꼭 한번은 혼자 천천히 음미하며 한라산을 등반하고, 한라산의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을 한번씩 다르게 느껴보고 싶다.


 이 책의 주제이자, 우리 문화유산을 관통하는 정신 ‘검이불루 화이불치’ 내용으로 채워진 2부의 문화유산들은 1부의 장소들에 비해 그래도 낯선 느낌은 덜했다. 무엇보다 국가적인 문화유산이다 보니 중고등학교를 거쳐 오며 국사책에서 시험을 위해 열심히 외웠던 유산들이라 이름은 낯익지만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사실 모른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경북 영주는 대학시절 농활도 다녀오고 꽤 갔던 곳이긴 한데, 부석사는 한번도 다녀오지 못했다. 신라시대 명 스님이신 의상 대사가 창건한 것도 새롭게 알게 되긴 했지만,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소백산의 풍광이 한 폭의 진경 산수화를 보듯 감탄을 자아낸다고 하니, 자연의 여유로움과 자연 그대로가 가져다 주는 감동을 한번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다.


 때로는 수학여행으로, 때로는 가족 여행으로, 때로는 친구들과 다양한 형태로 많은 사찰을 경험은 해봤는데, 그때는 그저 힘든 마음에 빨리 보고 지나갔던 순간들이 아쉽게 다가온다. 사찰이 가져다 주는 분위기와 여유롭게 조용히 음미해 보며 어떤 말을 걸어줄지 명상을 해보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아직 부석사는 못 가봤지만 정말 가게 된다면 한 시간이건, 두 시간이건 천천히 둘러보며 그 자체로서 나의 느낌에 솔직해지고, 나의 생각들도 명료해지는 시간을 갖고 싶다. 말로만 들은 그 유명한 ‘무량수전’도 꼭 한번 보며 비록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천천히 둘러보고 싶다.


 통일신라 시대의 수도였던 경주를 가족들과 다녀올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여행이 별 것도 없었지만 큰 행복을 가져다줬던 기억이 든다.

 무령왕의 대왕암이나 감은사지 삼층석탑이 있다는 감은사터에는 못가봤지만, 경주 시내에 자리 잡고 있는 큰 고분들과 첨성대, 그리고 불국사까지 천년 왕도의 중심지로서 문화유산 그 자체인 경주에서의 느낌이 참으로 따뜻하고 행복했었다.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여서 모든 것이 더 좋았었고,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수학여행이 아닌 가족들과 함께 가본 불국사의 느낌도 새롭게 다가왔다. 비록 날이 너무 추워 오래 머물지는 못했지만 사찰 경내 수많은 연등 밑에서 사진 찍었던 행복한 순간이 떠오르며 슬며시 미소 짓게 한다. 우리 문화유산이 가져다 주는 감동도 크고, 그러한 곳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였다는 그 행복감이 더 큰 것 같다.


 백제 문화권 출신으로 백제의 문화유산에 가까이 살면서도 수학여행 때 다녀온 기억들이 전부일 정도로 그동안 백제 문화에 대해서는 나 스스로도 별 관심없이 살아왔다.


 이 책에 소개된 서산 마애불은 사진으로만 봐도 어떻게 그 시대 저런 위대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는지, 백제문화의 찬란함과 그 찬란함을 실제 구현해 냈던 예술가들의 노고가 깊게 느껴진다. 실제 어느 곳에 있는지도 몰랐던 서산 마애불은 그 일대를 다녀갈 기회가 생긴다면 실제로 그 모습을 직접 마주하며 그때의 느낌을 다시 한 번 정리하고 싶게 만든다.


 고등학교 입학 이후 지금까지 쭉 우정을 이어오고 있는 절친들과 함께 가봤던 부여 여행을 떠올리게 만든 부여 능산리 고분군ㆍ정림사터도 다시 한 번 가족들과 천천히 둘러보고 싶다.

 백마강과 비록 보수 중이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낙화암과 부여 시내를 한눈에 조망했던 산 위에 정자까지 고즈넉하고, 또 그 시절의 문화가 살아 숨쉬는 듯한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다. 비록 지금 기준으로는 많이 발전되지 않았고, 옛 백제의 수도가 맞나 싶을 정도긴 하지만 그럼에도 도시 자체가 가져다 주는 고풍스럽고, 멋스럽고, 왕도의 자존심 등이 느껴졌던 생각이 난다.


 늘 가까이 있어서 더더욱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종묘창덕궁.

 창덕궁은 회사 문화재 지키미 활동으로 개방되지 않은 곳까지 들어가서 청소도 해보고, 행사 도우미로 구석구석까지 가봐서 어느 누구보다 친숙한 느낌이지만, 문화적 가치나 중요함을 크게 느끼지 못했던 나의 무식함에 다시금 부끄러워진다.


 아울러, 정말 가까이 있지만 단 한번도 가보지 못하고 그저 지나 가기만 했던 종묘는 온전히 시간을 내서 혼자서 그 웅장함과 깊이를 한번 느껴보고 싶다. 그저 왕의 혼을 모시는 조선의 신전으로서의 종묘가 아니라, 그러한 정신을 품은 건축물, 예술물로서의 종묘 자체도 한번 느껴보고 싶다.


 무엇보다 나의 게으름에, 그리고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내가 움직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더 늦기 전에 시간이 된다면 그리고 가족과 함께 하고 싶은 곳은 함께, 혼자서 온전히 느껴보고 싶은 곳은 혼자서 한 두 군데라도 더 다녀봐야겠다.

 가슴에 깊은 울림과 감동을 가져다 주는 혼자만의 국토 답사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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