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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비오 Jan 09. 2024

보고싶은 것들 속에서 나에게 말 걸어보기

90일 밤의 미술관 - 이용규 外

 어느 순간부터인지 미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비록 정보나 지식은 많이 부족하지만, 그림 자체를 (간접적으로) 보고, 느끼고, 이야기 나누는 순간들이 가슴에 깊이 다가온다.


 비록 시험에 대비하듯 작품과 작가를, 그리고 작품의 한 줄 요약 특징을 줄줄줄줄 꿰고 있지는 못하지만, 새롭게 다가오는 작품들과 기존에 알고 있었던 작품들이 지금 이 순간에 전해주는 느낌들이 좋다. 책도 그렇지만 미술 작품 또한 (아마도 모든 예술 작품들이 그럴 것이라 생각하지만) 지금의 내 상황과 감정, 의식의 흐름에 따라 정말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해준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독일, 네덜란드와 그 외 다른 지역의 작품들까지 총 102점의 미술작품에 대한 소개와 해설을 담고 있는 책이다.


 아마도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될 무렵 작품을 현지에서 직접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책인 듯 한데, 갈증이 해소되기 보다는 뭔가 더 갈망하고 더 직접 접하고 싶은 감정이 점점 커지는 느낌이다. 이전에 읽었던 ‘이탈리아’ 중심의 미술작품이 가져다 준 감동도 컸었지만, 이 책을 덮은 지금 이 순간도 그에 못지 않은 감동에 남겨진 듯 하다.


 중세를 이끌었던 세상의 문화, 경제, 정치의 중심이었던 유럽에서 주류를 이뤘던 카톨릭 신앙과 그에 부응하는 예술 작품들이 가져다 주는 감동은 말로 하지 못할 만큼 더욱 커지고 있다.

 아울러, 굳이 ‘聖畵’가 아닌 다른 작품들이 그 시대와 맞물려 가져다 주는 감동 또한 크게 느껴진다.


 그간 여러 책들을 통해 접했던 그나마 익숙했던 작가들의 작품들은 이제는 조금은 말을 트고 지내는 친구처럼 반가움과 함께 당시 접했던 감정과 조금은 다른 느낌을 전달해 주고 있고, 새롭게 접한 작가들과 작품들은 또 그들만의 새롭게 전해주는 느낌들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이 책의 가장 처음에 소개되고 있는 정교함의 극치로 표현되는 ‘얀 반 에이크’‘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의 경우, 흐릿하게 사물을 반사해서 비추고 있는 거울 속 장면까지 세밀하고 정교하게 표현되는 설명을 읽고 나니, 정말 작품 앞에 마주서서 찬찬히 작품 속으로 깊게 빠져들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한다. 얼마만큼 세밀하게 표현하고 묘사했느냐도 중요하겠지만, 그처럼 세밀하고 정교하게 묘사하면서 전달해 주고 싶었던 말과 감정은 어떠한 것인지 직접 느껴보고 싶다.

 라자로의 부활’, ‘엠마오의 저녁 식사’, ‘성 안나와 성 모자’, ‘십자가에서 내림’ 등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카라바조 등으로 대표되는 종교화들은 언제 봐도 새로운 큰 울림을 가져다 주고, 그 시절 종교화가 그려졌던 목적에 부합하게도 직접 작품 앞에 서 있다면 묵주를 꺼내거나, 성경을 펼치게 될 ‘나’를 상상해 보게 된다.


 아울러, 렘브란트가 그린 ‘이삭의 희생’에서는 성경 창세기 속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하느님께 봉헌 제물로 바치는 순간의 장면을 그린 작품이지만 마치 실제 옆에서 지켜본듯 굉장한 긴박감과 인물들의 마음까지도 전달받는 듯 강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추상화의 대표로 여겼던 피카소가 사실은 정통 엘리트 미술교육을 받고, 정말 세밀하게 사물을 그려냈음을 알고, 역시 한 분야의 천재란 그 분야의 정통 지식에 통달함이 바탕에 되어야 함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또한, 유명한 작가들의 ‘쓸쓸한’ 자화상들에서는 당대에는 명예로나 재물로나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외로움고독을 함께 느껴보기도 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책에서는 유독 여성을 그린 작품들과 빛에 대해 표현한 작품들에 눈길이 갔었다.


 에두아르 마네‘폴리베르제르의 술집’에서 느낀 세밀한 묘사와 뭔가 모순된 표현,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는 표정이 전달해 주는 미묘한 감정까지 느끼고 나서, 마네의 일부만 보고 감히 ‘알고 있다’고 했던 성급함과 교만함을 새삼 깨닫는다.

 교과서에 등장해서 익숙했던 밀레와 그의 작품에 대해 조소했던 무식함도 반성해 보고, 유명해서 외려 접하려 하지 않았던 고흐의 작품들을 보면서 고흐 스스로의 생각보다 깊었던 허무와 고독과 외로움을 같이 느껴보기도 했다.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로 불리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서는 뒤로 돌아보는 소녀의 모습에서 신비로움과 함께 감히 말을 걸어보거나 손을 대지 못할 경외감을 느껴보기도 했다.


 무엇보다 강하게 다가온 엘리자베타 시라니‘베아트리체 첸지의 초상화 모작’은 마녀사냥으로 희생되어야 했던 피해자(소녀)의 애처러운 눈빛이 가져다 주는 처연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만약 소녀가 큰 죄를 저질렀더라도) 용서해 주고 싶을 만큼 가슴을 크게 때린 아름다움까지 이전에도 접했겠지만 그저 한 작품으로 흘려 보냈을 시간들 속에서 가장 크게 다가왔던 작품이기도 하다.

 여전히 프리다 칼로가 가져다 주는 의연함과 강인함과 적나라함은 가슴 속에 ‘가만있지 말고 당당히 맞서라’라고 말하는 듯 느껴지고, 그녀가 말한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견딜 수 있다”는 말이 저절로 생각나게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해서 인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들 속에서는 사실이 아닌 사실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과 시각에 대한 문제제기는 물론 ‘빛의 제국’이 가져다 주는 모순된 상황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게 푹 빠져들게 하는 이끌림에 강한 충격을 받았다.

 정말 작품 앞에서 직접 대면하게 된다면 1시간이건 2시간이건 계속 작품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그저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가져다 준다.


 책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그림(으로 통칭되는 작품)들은 뭔가 지식을 전달해 주기 보다 우리가 끊임없이 질문하고 생각하게 해 준다.

 단순히 이건 어떤 의미이고, 어떤 내용을 전달하고 싶었는지부터 작품을 바라보는 나의 감정은 어떤지, 내가 왜 이 작품에 몰입하게 되는지, 지금 떠오르는 (연상되는) 상황이나 생각은 무엇인지 쉴새 없이 내 스스로 말을 걸고 생각하게 만든다. 비록 정답이 아닐지라도 누군가에게 말하기 부끄럽더라도 그때 떠오른 나의 생각과 감정이 진짜 나의 생각과 감정일 것이다.


 늘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

 감정과 의식에 솔직해 지고, 나 스스로에 당당해 지는 시작이기를 바란다. 나에게 솔직하고, 내 감정에 솔직하고, 내 스스로가 나를 사랑해야 세상에 당당하고, 다른 사람들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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