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애 오답노트

1. 남자친구가 아니라 그와 '연애한다는 사실'을 좋아한 것

by 하루 HARU

민석과의 첫 만남은 꽤 낭만적이었다.


비운의 코로나 학번으로 1학년을 집에서 보낸 나는 대면 학기가 시작된 2학년 1학기, 아카라카를 시작으로 연세대 학생의 생활을 마음껏 누렸다. 밤마다 신촌의 밤거리를 친구들과 거닐며 술을 마셨고, 이런저런 학교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여했다. 같은 수업을 들으면서 친해진 과 부학생회장 서아와 나는 각종 자리에도 자주 동행했다.


그날도 서아와 함께 같은 과의 연고대 학생들끼리 스포츠 경기를 하는 ‘미니 연고전’ 뒤풀이에 참석했다. 치열한 농구 경기가 끝난 후, 행사 자리 배정을 책임졌던 서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붙잡았다. “연대에서 빠진 사람들이 있어서 나 혼자 고대 쪽 테이블에 앉아야 해. 낯 가리니까 같이 가 줘!”라는 절박한 부탁이었다. 친구를 돕고 싶었던 나는 흔쾌히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뒤풀이 장소인 고깃집은 이미 대학생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지글지글 고기 굽는 냄새로 가득했다. 낙서로 빼곡한 벽, 바쁘게 움직이는 사장님, 그리고 왔다 갔다 하는 맥주잔들. 그야말로 대학생들의 전형적인 뒤풀이 현장이었다.


서아가 안내한 테이블에는 고려대생 두 명이 앉아 있었다. 빨간 고려대 티셔츠에 큼지막한 금색 호랑이가 그려져 있어 한눈에 그들이 고대생임을 알 수 있었다. 동글동글한 금테 안경과 바가지머리를 한 재준 옆에는 민석이 앉아 있었다. 민석은 헝클어진 머리에 수줍은 표정을 짓고 있었고, 오른쪽 콧대 위에 작은 점이 눈길을 끌었다. 그 순간, 나는 묘한 끌림을 느꼈다.


자리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자 민석은 주로 조용히 듣는 쪽이었다. 내가 말을 하면 그는 가끔 미소를 지으며 눈을 마주쳤는데, 그 태도는 무심해 보이면서도 나를 신경 쓰는 것 같아 더 신경이 쓰였다. 특히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자주 듣는 그의 좋은 평판이 나의 호감을 더욱 부추겼다. 무엇보다도, 내가 로망으로 그리던 바로 그 ‘고대 학생’이라는 점이 마음을 설레게 했다.


고깃집에서 나와 2차, 3차를 함께하며 나는 일부러 민석의 옆자리를 사수했다. 모든 친구들이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가 되었을 때, 나는 용기를 내어 그의 번호를 물어봤다. 대화의 대부분을 내가 주도했지만, 상관없었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우리가 사귀는 장면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 만남 이후, 나는 끈질기게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금 뭐 해?”

“너무 배고파. 너는 뭐 먹고 있어?”

“오늘 미용실에 가는데 머리 자를 거야.”

“고대 학식은 어때?”


누가 봐도 화면 속 말풍선의 9할은 내 것이었다. 하지만 민석은 나의 문자에 답장을 놓치지 않았고, 그 덕에 나는 마치 그와 진짜 연애를 시작한 것처럼 스스로에게 확신을 심어갔다. 사실 민석과의 대화 자체보다도 누군가와 내 하루를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 행복하게 했다. 여러 행사와 뒤풀이로 채워진 하루 끝에서 느껴지는 공허함을 달래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나에게 절실한 위로였다.


며칠 후, 나는 고려대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는 민석을 만나기 위해 억지로 명분을 만들어냈다. 동아리 친구가 고려대 학생인데 마침 생일이라며 선물을 직접 전달하겠다는 핑계를 댔다. 사실 그 친구와는 그리 친하지 않았고, 선물을 줄 만큼의 특별한 사이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민석과 만나기 위해 쥐꼬리만한 핑계마저도 코끼리만큼 부풀렸다.


그날 밤, 민석과 고려대 캠퍼스를 산책했다. 내가 상상하던 완벽한 장면이었다. 민석은 검은색 바탕에 은색 호랑이가 그려진 과잠을 입고 있었고, 나는 들뜬 기분으로 그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은은한 가로등 아래 고풍스러운 벽돌 건물들, 선선한 바람이 부는 캠퍼스의 중앙광장. 모든 것이 로맨틱하게 느껴졌다.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그와의 거리를 더 좁히고 싶었다. 그래서 회심의 질문을 던졌다.

“너의 이상형은 어떤 사람이야?”


사실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이미 상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나는 그가 나의 외모를 칭찬하기를 기대하며 마음이 들뜬 상태였다. 그의 답변은 내 기대에 부응했지만, 한편으로는 묘한 기분도 들었다. 혹시 그가 나의 질문에 맞춰 대답한 것은 아닐까? 그저 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했던 말이라면? 마음 한편에 작은 의문이 자리 잡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민석과의 진정한 관계보다는 누군가와 연애를 한다는 사실 자체에 더 집착하고 있었다. 민석을 진심으로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그가 나의 로망을 완성해 줄 대상이길 바랐다. 나의 호감과 열정은 민석이 아닌 내가 만들어낸 이상적인 ‘연애의 틀’ 속에서만 커져 갔다.


그러나 그 틀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진정한 연애는 내 공허함을 채워줄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진심이 오가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나를 위한 연애의 오답노트를 정리한 지금, 나는 나 자신부터 이해하고 진정한 사랑을 마주할 준비가 되었다.


앞으로의 연애는 상대방을 나의 이상형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용기로 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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