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자격증 따기-
우리 가족은 매년 연말이 되면 각자 내년에 이루고 싶은 목표를 적고 이를 발표하는 시간을 갖는다. 둘째 아이까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4번이 되었다. 계획을 세울때는 아이들도 나도 기대감에 부푼다. 평소 역사를 좋아하는 큰딸은 2024년 계획으로 한국사 능력검정시험 4급을 합격할 계획을 세웠다.
"엄마, 엄마도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같이 보자."
딸아이는 엄마도 함께 시험을 보자고 제안을 했다. 나는 고등학교때 역사 과목을 좋아했다. 다른 친구들은 다 재미없다고 툴툴거리는 역사 수업이 너무 재미있었다. 도서관에서 시험 기간에 혼자 공부를 하면서 일제 강점기 부분에 대한 내용을 읽으면서는 감정이입이 되어서 눈물을 흘린 날도 많았다. 우리 때는 과목별 전교 등수가 나오곤 했는데 역사 과목은 전교 1등을 해본 적도 있었고 고등학교 한국사 시험 내내 100점을 맞거나 1-2개 이상 틀린 적이 없을 정도로 역사과목을 좋아했다.
내신과 수능 점수에 맞춰서 간 대학교에서 전공이 맞지 않아 재수를 결심하고 수능을 다시 쳐서 고고학을 전공하는 학교로 입학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원에 가면서 전공을 바꾸기도 했고 육아와 살림을 하면서 역사에 대한 지식과 감은 모두 잊은 상태였다. 오히려 고등학교때보다 전반적인 역사 지식은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딸과 함께 공부해서 한국사 시험을 본다면 그것도 의미있을 것 같았다.
'나는 역사적인 지식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니 1달이면 충분하겠지.'
이런 마음으로 딸은 기본시험에서 4급을 따는 걸 목표로 나는 심화시험에 1급을 따는 걸 목표로 정하고 시험 신청을 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시험 신청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 각 지역별 날짜가 있어서 신청일에 신청을 해야 한다. 공기업을 준비하거나 공무원 시험에서 한국사시험이 한국사능력검정시험으로 대체된 경우가 많아서 시험 신청 시간에 접속을 하기도 어려웠고 조금만 늦게 신청하면 자리가 없어서 시험을 못 보는 경우가 많다. 나도 이걸 모르고 신청날 조금 늦게 접수를 했더니 장소를 정할 수가 없어서 임시 고사장으로 신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신청을 했으니 이젠 무조건 시험 공부해서 보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1달이면 충분할꺼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 오산이였다. 생각보다 시험 범위가 너무 많았다. 특히 대학교 내 전공 특성상 나는 근현대사에 상대적으로 취약했다. 가끔씩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고등학교 이후로 한국사 공부 한 번도 한 적 없는데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주일 공부하고 1급 합격했어요.' 이런 글들이 과연 진짜일까 싶은 의문이 들었다. 그들은 하루에 15시간씩 집중할 수 있는 평범한 나와는 다른 유전자를 지닌 사람인건가.
수영을 다니고 매일 100번쓰기를 하고 꿈노트쓰기도 하면서 일주일에 2번씩 3시간 한식조리기능사 수업, 방학인 아이들을 챙기느라 생각보다 하루가 너무 바빴다. 처음에는 동영상을 보고 내용 정리를 하면서 여유롭게 공부했는데 나중에는 이러다가는 진도가 못 나간채 시험을 볼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내가 보던 동영상은 총 40강으로 되어 있었는데 보름 정도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겨우 15강을 공부하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끝까지 공부를 못하고 시험을 볼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예전 고등학생, 대학생때처럼 공부에 시간을 많이 쏟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였다. 그래서 이제부터 동영상 보기는 건너띄고 내용이 정리되어 있는 책만 읽고 문제 풀이를 하는 방식으로 넘어갔다. 딸도 딸 나름대로 내가 알려준 동영상을 보고 문제풀이를 하고 열심히 공부했다. 제출할 곳도 없는 시험이고 아무도 나에게 공부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딸에게 나도 자존심은 있었다. 꼭 합격하고 싶었다.
드디어 2월 17일 결전의 시험날!!!
나는 집 근처 대학교에서 시험을 보게 되었고 딸은 집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서 시험을 보게 되었다. 다행히 딸아이 친구 엄마가 아이를 태워다준다고 해서 아이는 친구 엄마와 함께 아침 일찍 시험을 보러 갔다.
아이를 낳고 육아하면서 처음으로 본 시험이였다. 시험 보러 가는 10분이 왜 이렇게 긴장되고 설레이는지 모르겠다. 주차를 하고 대학교를 캠퍼스를 걸으니 대학교때 추억들이 슬며시 떠오른다. 내가 대학교때로 돌아간 듯한 착각도 든다. 정기적으로 보는 중간, 기말 시험의 긴장과 떨림이 그때는 너무나 당연하고 싫었는데 이제는 젊은 날에 느꼈던 긴장, 떨림이 그리웠다. 한편으론 이런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괜시리 기분이 좋아져서 눈물이 또 나왔다. 찬 바람이 쌩쌩 옷 속으로 스며들지만 간간히 내리쬐는 태양의 따스함을 느끼면서 혼자서 다짐해본다.
"나는 오늘 1급 90점으로 합격한다. 나는 오늘 1급 90점으로 함격한다."
수험번호로 고사장 번호를 찾아서 내 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자리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친구들도 몇 명 보였고 20-30대 젊은 사람들이 주를 이루긴 했다. 가끔씩 나처럼 30대 후반에서 40대인 분들도 보였다. 중간 중간 빈자리도 보였다. 무슨 사정이 생겨서 시험을 보러 못 왔으리라.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무슨 사연으로 시험을 보러 온 건지 궁금증도 생겼다. 나도 시험 전까지 앉아서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제일 약했던 부분들 중 독립운동단체들 이름과 전투 순서 등을 빠르게 훍어보고 있는데 감독관 선생님 2분이 들어오셨다. 핸드폰은 모두 끄고 신분증, 필기도구를 제외하면 모두 다 가방에 넣으라고 했다. 마치 고등학교때 시험 순간이 떠오른다. 문제지를 나누어주셨다.
"페이지가 모두 인쇄되어있는지 확인하고 다시 시험지를 덮으세요. 그 이후에 시험지를 만지면 부정행위로 간주합니다."
감독 선생님은 적막함 속에서 수험생들에게 나지막히 말했다. 다들 긴장된 얼굴로 앉아서 감독 선생님만 바라보고 있다.
드디어 시험 시작. 시간이 부족해서 문제풀이를 많이 못 해서 걱정이 되었는데 역시나 생각보다 문제 풀기가 만만치 않았다. 우선 앞에서부터 모든 문제들을 풀어나갔다. 모르는 문제는 표시하지 않고 확실히 아는 문제들에는 정확히 표시를 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모든 문제를 두 번씩 풀었다. 마지막 이제 모르는 문제들을 가지고 고민을 해본다. 그 사이 문제를 다 푼 사람들은 교실을 나갈 수 있어서 한 두 명씩 자리에서 일어나서 답안지를 제출하고 나갔다. 내 예상보다 모르는게 많았다. '이러다 1급 못 따는거 아냐.'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1급 못 딴다고 뭐라고 할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꼭 따고 싶어...결과가 어떻든 최선은 다하자. 다시 문제에 집중하자. 문제들을 잡고 1시간 20분 가량 씨름을 했다. 이젠 문제를 더 본다고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교실에 두 번째로 늦게 나온 사람이 되었다.
시험을 보고 딸을 데리러 갔더니 딸은 시험을 아주 잘 봤다며 의기양양했다. 모르는게 없었다면서 연신 자랑을 하기에 바빴다. 가지고 온 시험지로 가채점을 해보니 딸은 고득점으로 4급을 합격했다. 이제 내 차례였다. 두근두근 인터넷에 올라온 가답안으로 채점을 해본다. 생각보다 틀린게 너무 많은데...채점을 하면서 걱정했는데 그래도 다행히 점수는 82점이였다. 턱걸이로 1급 합격이다. 바쁜 와중에 벼락치기로 공부한 것 치고 나쁘지 않았다. 물론 90점을 받아서 합격하길 바랬지만 그래도 1급 합격한거에 만족한다.
이번 시험은 딸과 함께 본 시험이여서 나에게 의미가 깊었다. 딸과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고 어릴때 다녀왔던 여행지의 유적지에 대한 이야기도 다시 할 수 있었다. 딸이 공부하다 모르는걸 물어보면 척척 설명도 해줄 수 있어서 좋았다. 시험을 계기로 딸아이와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딸들과 함께 도전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