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살면서 불편한 일들이 있다. 새로운 직장으로 첫 출근.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순간. 낯선 곳으로의 여행. 이사로 인한 새로운 거주지에 정착... 다양한 불편을 살면서 겪지만 나에겐 오랫동안 가장 불편했던 일 중 하나는 바로 운전이였다.
태어나서 결혼하기 전까지 수도권에 살았던 나는 운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정해진 시간에 버스와 지하철이 수시로 다니고 대부분의 장소와 연결되니 내가 가고 싶은 곳 중 못 가는 곳은 없었다. 결혼과 함께 수도권 생활을 정리하고 지방 소도시 아산으로 이사왔다. 그때 당시 우리집 근처에는 그래도 1호선 전철이 있었다. 신랑 외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낯선 아산에서의 생활을 가족들과 친구들은 많이 걱정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잘 지낼 수 있겠어?"
"그래도 전철이 다녀...언제든 올라오고 싶으면 올께"
라고 호기롭게 말했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아산의 전철 1호선은 말뿐인 전철이였다.(그나마 천안까지는 1호선이 많이 운행된다.) 대부분 30-40분에 한 대가 운행되고 낮 시간에는 1시간에 1대가 다니기도 했다. 시간을 잘 못 계산해서 1대를 놓치면 역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버스를 타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집에서 버스는 노선이 5-6개 정도 되었고 그나마 특정 버스는 1-2시간에 한 번씩 운행되기도 했다. 20-30분을 기다리기 일쑤였고 버스로 갈 수 없는 지역들도 많았다. 그렇게 아산에서 고립생활이 시작되었다. 남편이 없으면 동네 가까이에 위치한 마트와 식당들을 제외하면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운전면허를 따기로 결심했다.
"반드시 운전면허를 따서 이 답답한 생활을 청산하겠어!!!"
호기롭게 집에서 10분 거리에 떨어진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했다. 필기 수업을 들을때는 그래도 나았다. 조금만 공부하면 되었다. 내가 운전면허를 딸때는 학원내에서 주행 시험을 보고 합격을 해야지 도로 주행이 가능했다. 학원 내 주행은 그래도 해볼만 했다. 일자주차를 하는게 가장 어렵긴 했지만 다른 차들까지 신경을 쓰지는 않아도 되어서 운이 좋게 합격했다. 하지만 문제는 도로 주행이였다. 나는 극도로 긴장했고 손에서 핸들을 떨어뜨릴 수가 없었다. 등에서는 연신 식은 땀이 흘렀고 2시간의 연습 시간이 나에게는 커다란 곤욕이였다. 반대쪽 차선의 차들이 나에게 다가오는 듯 느껴져서 반사적으로 오른쪽으로 붙으면 오른쪽에 있는 차들이 차선을 침범한다면서 나에게 빵빵대기 일쑤였다. 뒤에 차들도 빵빵대기는 마찬가지였다. 20-30km의 속도도 나에게는 마치 100km로 느껴졌다. 옆에 선생님은 "차선 잘 지켜요. 속도 더 내도 되요. 너무 느려요." 연신 격양된 목소리로 나를 혼내셨다. 그래도 운이 좋았는지 시험은 한 번에 합격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운전면허는 땄지만 당장 운전할 차도 없었고 운전을 하고 꼭 가야하는 곳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운전을 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내 운전면허증은 장로면허가 되었다.
혼자 있을때는 그나마 괜찮았는데 아이를 낳고 나니 운전을 못하는 것이 너무 불편했다. 아이와 함께 병원에 가야할때는 아기띠를 하거나 유모차를 끌고 2-3키로를 걸어가야 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커서 문화센터 수업을 들으러 갈때는 택시를 타거나 버스를 타야 했는데 매번 택시를 타는 것은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었다. 그나마 버스를 타려고 노력 했지만 제 시간에 맞춰서 버스를 타기는 어려운 일이였다. 아이를 아기띠하고 한여름이나 한 겨울에 밖에서 20-30분씩 기다리기 일쑤였다.
둘째 아이까지 태어나니 외출은 더욱 어려워졌다. 한 명은 아기띠를 하고 한 명은 유모차에 태우고 밀고 다녀야했다. 병원 한 번 다녀오려면 병원을 가기도 전에 이미 진이 빠지는 기분이였다. 점점 운전의 필요성은 알았지만 당장 아이들을 데리고 운전을 할 자신은 더 없었다. 나는 운전의 필요성을 더 느끼고 있었다. 작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이제는 진짜 운전을 해야겠다고 느꼈다. 신랑도 운전하라고 차를 사주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신랑에게 운전을 알려달라고 할까 고민했지만 인터넷의 글들을 보니 신랑에게 배우지 않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가족끼지 운전을 알려주다 싸움이 난다며 말렸다. 그래서 비싼 금액이였지만 몇 년 전에 다녔던 운전면허 학원에 도로주행 10시간을 등록했다. 등에서 식은 땀은 나고 어깨는 잔뜩 긴장된 채였지만 10시간을 선생님과 하고 나니 그래도 도로에는 나가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에 운전 잘하는 방법을 찾아봤다. '매일 같은 길을 꾸준히 하면 늘어요.'라는 글이 가장 많았다. 그래서 나도 아이들이 기관에 가면 그 시간 동안 나가서 집에서 가기 쉬운 코스를 정해서 매일 다녀왔다. 2-3년차가 되니 가까운 거리 운전은 그래도 할 만 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운전은 나에게 편한 일은 아니였다. 특히 처음 가는 곳을 갈때는 길도 확인해야 하고 차선도 바꿔야 해서 항상 식은땀이 흘렸다. 아빠가 주말 출근한 날 아이들과 아이들과 놀러 다녀오는 날에게 난 '앵그리 엄마'가 되기 일쑤였다.
"엄마 지금 운전해야 하는 거 알지...지금 차선 바꿔야 돼...싸우지 말고 조용히 해."
차안에서는 아이들이 왜 더 많이 싸우는건지...가끔은 좋은 곳에 놀러 가는건데 이렇게 화내면서까지 가야하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운전을 시작한 덕분에 바쁜 신랑을 대신해서 아이들과 도서관도 가고 신정호, 현충사, 은행나무길, 영인산 등 아산의 좋은 곳들을 계절마다 다녀올 수 있었다. 또 천안을 비롯한 세종, 공주, 예산 등 충청도의 다양한 지역들도 다녀올 수 있었다.
이렇게 1시간 거리들을 운전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운전이 전보다 편해졌다고 느껴졌다. 나에게도 이런 순간이 오는구나. 솔직히 신기했다. 운전은 나에게 항상 어려운 일일꺼라고 생각했었는데...이제는 운전을 하면서 익숙한 곳을 갈때는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음악도 듣는다. 그리고 운전을 하면서 듣는 음악을 따라서 흥얼거리는 여유도 갖게 된다.
우리에게 불편했던 상황이 금방 편해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불편한 상황이 오래갈때도 있다. 누군가는 그때 포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에게 꼭 필요한 거라면 때로는 불편한 일을 계속 해보는 용기도 필요한 일인 것 같다. 그 불편했던 일이 나에게 편안할 일이 되기도 하고 다른 즐거움을 안겨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불편한 운전을 계속 한 덕분에 나는 아이들이 어릴때 좋은 추억을 만들러 다닐 수 있었다. 그리고 집에서 제법 떨어진 곳으로 요가와 수영도 다닐 수 있었다. 그리고 가끔은 혼자서 음악에 취해서 운전하는 순간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날 만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