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글쓰기 모임을 하는 지인들과 카톡을 주고 받다가 한 지인이 이런 글을 남겼다. "저는 우당탕탕 이란 단어를 참 좋아해요...우당탕탕 부딪혀 가며 터득하면서 살면 좀 어떤가요?" 그 글을 읽고 순간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였다.
왜 난 삶을 이렇게 대한 적이 없을까? 40년의 내 생활 속에 '우당탕탕'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강박적으로 살고 완벽주의자는 아니였지만 나는 어릴때부터 삶에 어느 정도 정답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걸 빨리 발견하고 싶었다. 실수는 할 수 있지만 실수를 최소화하고 싶었다. 내가 그동안 읽었던 성공책들도 인생에 지름길이 있고 그걸 빨리 발견해서 성공하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삶에서 벌어지는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살아왔다. 그래서 내 계획과 의지와 다르게 일이 진행될 때는 그걸 못 견뎌한 적도 많았고 우울하기도 했고 때로는 좌절하기도 했다.
나의 이런 성격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양육하면서 가족과 크게 부딪혔다. 가족 여행을 가기 전 계획을 함께 세우고 떠나지만 막상 여행을 떠나보면 우리의 여행은 계획과 다르게 진행될 때가 많았다. 아이들이 계획된 시간보다 한 장소에서 오래 머물게 되면 나는 다음 일정에 차질이 생길까봐 조급할때가 많았다. 여행을 오는 목적이 꼭 뭘 보고 특정 장소에 가려고 오는 것만은 아닌데...아이들이 여기에서 충분히 즐기는 걸로 충분한데...다음 장소는 안 가도 되는데...마음으로는 알아도 나의 말투, 몸짓, 표정이 괜찮지 않았다. 나는 일정에 집착할때가 많았고 하나라도 더 보고 가려고 무리를 했다. 그러다 보니 일정이 내 예상과 달라졌을때 가족들에게 짜증을 내기도 했다.
집에서도 아이들이 컵에 담겨 있는 물을 엎지르거나 접시를 깨뜨리거나 새 옷에 더러운 것을 잔뜩 묻혀올때도 이런 순간들에 화가 났다. 말로는 "괜찮아" 하지만 내 표정이 괜찮지 않았다. 아이니까 접시를 깨뜨릴 수 있고 물을 쏟을 수 있고 더려운 것을 묻혀 올 수 있는데 어느 순간 나는 아이들을 아이로 대하지 않고 있었다. 이런 실수를 했을때 "실수해도 괜찮아. 엄마도 실수 많이 해." 이렇게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할까. 이런 우당탕탕 속에서 아이는 삶에서 실수할 수 있으며 실수해도 괜찮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는데 말이다.
과연 세상에 정답이 있긴 할까? 어쩌면 나는 이런 실수를 통해서 우당탕탕 속에서 오히려 더 성장한 게 아닐까 싶다. 우리 인생에서 성공한 결과보다 우당탕탕의 과정이 더 중요한데 말이다. 우당탕탕 속에서 오히려 삶의 진정한 의미를 더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남은 40년은 우당탕탕 살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