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에서의 고독 속에서, 자극적이고 불꽃 같던 사랑은 나의 은신처였다. 그와 함께 있는 순간, 내가 어디에 있든 세계는 온통 평화로움과 살아 있음으로 가득 찼다. 나보다 더 자유롭던 그를 따라 걷다 보면,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착각 속에 빠져들었다. 현실을 잊고, 끝내는 안 될 것을 알면서도 끌려 들어가는 그 순간들. 그 안에서 나는, 이 낯선 땅이 마치 내 것인 듯한 달콤한 환영을 살았다.
그 사랑은 나의 가장 불안한 시기에 가장 안락한 집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비눗방울 같았다. 잡으려 하면 터져버리고, 가까스로 손끝에 닿았다 싶으면 공기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 불안정함을 애써 외면한 채,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무심히 찾아왔다. 사랑이 무너지는 순간, 나는 마치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듯 모든 것을 잃었다. ‘나’라는 정체성조차 함께 사라지는 듯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언어가 없었다. 그저 무너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다시 걸음을 떼는 수밖에 없었다.
집을 잃은 나는 다시 떠돌이가 되었다. 토론토를 벗어나, 기차를 타고 몬트리올로, 그리고 더 깊숙한 퀘벡으로 향했다. 퀘벡의 언덕 위에서, 강물 위로 스며드는 햇빛을 바라보며 나는 울었다. 펑펑 울었다. 어디로 가야 할까. 집을 잃은 자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그 질문만이 남았다.
결국 나는 토론토의 집으로 돌아와 짐을 꾸렸고, 그곳이 더 이상 나의 집이 아님을 인정했다. 이어서 비행기를 타고 쿠바로 향했다. 남국의 태양 아래에서 나는 다시 편안함과 동시에 고독을 느꼈다. 혼자가 되어버린 지금, 자유를 되찾은 기쁨이 있었지만 동시에 짙은 고독이 나를 에워쌌다.
바닷가 해변의 햇살 아래 웃고 있는 사람들 속에 혼자 있는 나. 그것은 내가 와이너리에서 느껴야 했던 소외감과 같았다.
혼자가 된다는 건 자유였다. 그러나 그 자유는 곧 고독이라는 그림자를 불러왔다. 해변의 햇살 아래, 웃고 있는 사람들 속에 혼자 서 있는 나. 그것은 내가 와이너리에서 느꼈던 소외감과 다르지 않았다.
고립과 소외 속에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세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 누군가의 곁이 집처럼 다가온다는 사실을. 사랑은 나에게 세계가 건네는 임시 거처였다.
사랑하는 사람 곁에 있으면, 언어의 벽도, 이방인의 낯섦도 한순간 사라졌다. 말이 서툴러도 괜찮았고, 침묵조차 이해받는 순간 나는 비로소 ‘속한다’는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사랑은 집과 닮았다. 하지만 그것은 고정된 건물이 아니라 바람에 흔들리는 천막과 같았다. 완벽히 튼튼하지는 않지만, 그 안에 들어서면 바깥의 추위를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그곳에 머물고 싶었다. 뿌리를 내리고 싶었다.
그러나 동시에 알았다. 사랑은 집이면서도 집이 될 수 없는 모순을 지닌다는 것을. 한 사람에게만 기대어 뿌리를 내리는 순간, 그가 사라지면 나는 다시 뿌리째 흔들리게 된다. 그래서 사랑은 따뜻한 피난처이면서도, 가장 불안한 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랑을 선택한다. 그 불안정함 속에서도, 사랑은 내가 세계와 이어질 수 있는 가장 깊고 진실한 연결이기 때문이다. 사랑 속에서 나는 집을 잃고, 동시에 집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