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트 서연 Sep 20. 2023

어쩌다 발레를 배우다...11

예쁜 척, 도도한 척

큰 키와 시선을 끄는 외모, 멋지고 다양한 포즈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는 패션 모델. 그들이 멋있어 보이는 이유이다. 그런데 런 어웨이를 걷는 패션 모델이 멋있어 보이는 이유를 단지 외모만 가지고 이야기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자신감 있는 표정과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표현력, 당당하게 걷는 걸음걸이가 그들을 더욱 멋있어 보이게 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생 로랑 2023 F/W 컬렉션


나는 패션 모델들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자신을 드러내는 표현력을 볼 때마다 ’발레‘와 어떠한 공통점을 느낀다. 발레에서도 자신감이 중요하다. 무대 위에서 발레 무용수들이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날씬하고 매력적인 신체로 천상의 날개짓을 하면서도 거기에서 느껴지는 생명력과 건강미 그리고 넘치는 자신감 때문이다. 그렇다. 발레도 자신감이다!

사진 출처 : 구글, 마린스키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누군가가 내 머리를 뽑는다는 느낌으로 머리와 목을 꼿꼿이 세우고 어깨와 가슴을 열고 신체의 모든 에너지를 위로, 아래로, 손끝으로, 발끝으로 분출하고 끌어올려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외부로 보낸다는 느낌으로 춤을 춰야 하는 발레는 그 특유의 자세와 손끝 따라 움직이는 도도한 시선 때문에 더욱 자신감 있어 보인다.

사진 출처 : 인스타그램, 케네스 맥밀란 안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 역을 맡은 로열발레단 수석 발레리나 멜리사 해밀턴


그렇다면 발레가 이처럼 우아하고 자신감 있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발레의 역사에서 찾아보았다. * 이탈리아의 궁정에서 왕족과 귀족들의 사교댄스로 시작되었던 발레는 피렌체의 명문가 출신인 카트린느 드 메디치가 프랑스의 앙리 2세에게 시집을 가면서 프랑스에 발레를 전파했다.     


카트린느 드 메디치가 조국에 대한 외로움과 향수를 달래기 위해 프랑스 왕실에 소개했던 발레는 그 시작은 이탈리아였어도 찬란하게 꽃을 피운 곳은 바로 프랑스에서였다. 화려한 것을 좋아했던 프랑스의 왕족과 귀족들은 ’발레‘라는 새로운 춤에 빠져들었다. 그 중에서도 태양왕 루이 14세는 국왕의 신분으로 본인이 직접 발레 작품에 출연할 정도로 춤바람이 단단히 들었다. *

태양왕 루이 14세의 초상화. 다리의 각선미를 자신있게 드러내면서 포즈를 취한 자세가 최초의 발레리노답다.


이처럼 궁정에서 왕과 귀족들이 췄던 ’발레‘는 이후 전문 무용수들이 추는 춤으로 진화한 뒤에도 그 특유의 우아하고 있어보이는 자세가 궁중무용의 유산으로 남게 되었다. 발레의 모든 동작들이 궁중 무용처럼 품위 있고 우아해 보이고 자신감 있어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진 출처 : 인스타그램, 로열발레단의 <라 바야데르>에서 나탈리아 오시포바(감자티)와 바딤 문타기로프(솔라르)


이렇게 궁중 무용이었던 유산은 오늘날 무용실에서도 계승되고 있다. 전공반 학생들부터 취미 발레인들까지 모든 발레인들은 무용시간에 선생님들한테 요구 당하고 있다.

“어깨 펴세요!”

“움츠리시면 안돼요!”

“모든 동작들을 크게 크게 하세요. 그래야 자신감 있고 당당해 보여요.”

“발레는 당당해 보여야 예쁜 춤이에요!”     


1년 전에 어떤 선생님은 수업 시간마다 회원들에게 가스라이팅(?)을 하셨다.

“도도한 척!”

“예쁜 척!”

심지어는 센터 시간마다 내가 할 차례가 오면 언제나 내 옆에 오셔서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이기까지 하셨다.

“나는 예쁘다!”

“나는 공주다!”     


올 초에는 오래전에 우리 학원의 전공반 학생이었던 아이가 대학교 합격 후 우리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오셨다. 서로를 반가워하면서 재회의 기쁨을 누린 것은 잠시! 무용 시간에는 딸 같은 선생님한테 끊임없이 지적당하고 잔소리를 들으면서 발레를 배웠다. 심지어는 새내기 선생님이 낭랑한 목소리로 수업시간마다 우리들을 이렇게 세뇌시켰다.

“여러분, 발레는 겸손한 무용이 아니에요.”

“발레의 모든 동작과 시선처리까지도 업신여기듯이 바라보고 거만해 보이게 하셔야 해요.”      

         

사진 출처 : 인스타그램, 로열발레단 수석 발레리나 마리아넬라 누네즈


나는 클래식 듣기, 그림 감상 등의 취미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취미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비교적 적다. 해도 해도 티는 안 나면서 끝이 없는 집안일은 나를 오롯이 취미에만 몰두할 수 없게 만든다. 집밥을 좋아하는 가족들 덕분에 요리를 못하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음식을 자주 만드느라 대부분의 음악 감상은 배경 음악으로 흘려 듣고는 한다. 오롯이 나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발레를 배우는 시간뿐이다.     


그룹 레슨이라 다른 사람들이 추는 춤을 전혀 안 볼 수는 없다. 발린이였던 시절에는 다른 사람들이 추는 춤을 보면서 나와 비교하는 일이 잦았다. 자신감이 없어서였다. 그러나 이제는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마주한다. 그래서 춤을 못 춰도 일단 자신감 있게 춘다. 팔과 다리를 쭉쭉 뻗으면서. ’좀 못 추면 어때! 어차피 취미인데. 나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즐기자!‘ 이런 마음가짐이 발레를 끈기있게 배우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 참고문헌 : <천상의 언어, 그 탄생에서 오늘까지 발레이야기>, 이은경 지음, p. 1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