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트 서연 Sep 19. 2023

어쩌다 발레를 배우다...10

어쩌다 무대 데뷔(?)를 하다

나의 첫 무대 데뷔(?)는 어쩌다 보니 이루어졌다. 내가 발레를 배우기 시작한지 1년 후 어느 날 원장님은 학원 발표회를 하기로 했다고 중대한 발표를 하셨다. 더불어 원장님은 성인반 회원들도 무조건 발표회에 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해서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성인반 회원들은 어쩌다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대신에 원장님은 우리들이 발레 경력이 1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아서 발레 작품에서 발췌한 작품을 하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하셨는지 간단한 창작 발레를 추는 것으로 결정하셨다.      


나는 학교 다닐 때에 톡톡 튀는 아이가 아니었다. 늘 친구들 사이에서 조용히 묻어갔던 아이로 댄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친구들 앞에서 노래를 잘 하거나 춤을 잘 추어서 다른 사람들의 환호성과 관심을 이끌어내는 아이들이 언제나 부러웠다. 나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를 표현하는 일이 내 인생에서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왔다. 이랬던 내가 어쩌다 발레를 배우게 되면서 어쩌다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나의 첫 공식 무대 데뷔(?)는 이렇게 어쩌다 이루어졌다.     


두 번째 무대 공연은 급하게 이루어졌다. 아마추어 춤 동호회의 축제 <위댄스 페스티벌> 공연을 한 달 앞둔 상태에서 우리 학원이 ’발레‘ 부문으로 참가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학원에서는 급하게 발레를 배운지 2년 이상 되는 회원들에게 참가 의사를 물어보았고 참가 의사를 밝힌 회원들을 중심으로 연습에 매진하기 위한 발레 클래스의 시간이 조정되었다.     


위댄스 스테이지에 오르기 위한 작품은 <백조의 호수> 군무로 정해졌다. 급하게 모집된 발레 단원(?)들은 한 달 동안 약 8분에 달하는 군무를 배우고, 외우고, 연습해야 했다. 선생님이 새로운 분량의 안무를 알려주신 날에는 선생님이 시연해주시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집에서 보고 따라하면서 복습했다.     

 

발레에서 약 8분에 달하는 군무가 춤추는 사람들한테는 무척 힘들었다. 그 동안에는 배우지 않았던 새로운 발레 동작들도 배워야 했으며 모든 순서를 다 배운 다음에는 백조의 날개짓을 비롯한 순서에 들어가 있는 모든 발레 동작들을 다리의 테크닉과 상체의 몸짓 그리고 시선 처리와 함께 아름다운 춤선으로 다듬어 나갔다.   

  

<백조의 호수>는 군무도 아름다운 작품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군무를 추기 위해서는 다른 단원들과의 조화가 매우 중요하다. 절대로 튀는 동작을 하면 안 되고, 끊임없이 소그룹과 전체 그룹으로 나뉘고 합쳐지고 동선이 유기적으로 바뀌기 때문에 우리들은 안무를 배울 때에 자신의 동선을 재빠르게 외우고 체크해야 했다. 대여할 의상 치수를 잰 뒤부터는 살이 찌지 않도록 체중 관리도 했다. 무대에서 조금 더 예쁘게 추고 싶으신 분들은 다이어트도 했다.      


그래도 힘들었던 만큼 재밌었고 내 인생에서 예상치 못했던 경험들도 체험했다. 위댄스 페스티벌 참가 자격으로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김지현 발레 피아니스트의 반주를 들으며 이재우 발레리노에게 마스터 클래스를 받은 것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다.      

국립발레단 연습실
마스터 클래스 후 내 토슈즈에 싸인해준 이재우 발레리노


또 공연 당일 날 취미 발레인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에 주목한 기자들이 취재하러 와서 우리들에게 촬영 요청을 했다. 우리들은 흔쾌히 수락했으며 기자들의 요청에 따라 포즈를 바꿔가며 취했었고, 그때마다 기자들이 카메라 후레쉬를 터뜨려가며 우리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내 인생에서 참 신기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그 날 촬영하신 기자 한 분이 우리들이 계속 포즈를 바꿔가며 취하는 모습을 보고는 감탄하셨다. “역시 발레를 하시는 분들은 그냥 포즈를 취하는 법이 없군요.”     


<백조의 호수> 군무는 대성공이었다. 우리들은 연습한대로 아름다운 날개짓과 절도있는 칼군무를 췄다. 선생님들은 뿌듯해하셨고, 우리들은 해냈다는 성취감에 행복해했다!

상명아트홀에서 공연한 <백조의 호수> 군무


<위댄스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한 <꽃의 왈츠> 군무는 6개월이나 연습하고 준비했다. 한 달만에 준비했던 <백조의 호수> 군무가 너무 빡쎄고 힘들었기 때문에 <꽃의 왈츠> 군무를 위한 발레 단원들은 연초부터 모집을 했다. <백조의 호수>에 참가하지 않았던 회원들도 <꽃의 왈츠> 군무를 추기 위해 새로운 발레 단원으로 입단했다.(?)      


우리들은 6개월 동안 차이코프스키의 음악과 함께 숨 쉬면서 꽃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음악이 밀고 당길 때마다 우리들도 동작들을 밀고 당겼다. 음악이 음을 밀 때 우리들은 씨손느, 아라베스크 동작에서 양팔과 손끝, 그리고 턴아웃으로 들어올린 다리를 에너지를 뽑는 느낌으로 길게 써야 했다. 또 음악이 음을 끌어당길 때에는 발랑세 동작을 끌어당기듯이 빠르게 스텝을 밟아야 했다.     

 

<꽃의 왈츠>도 군무이기 때문에 동선이 끊임없이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바뀌면서 소그룹과 조별로 나뉘고 합쳐지고 대열이 바뀌었다가 전체 군무로 합체가 되었다. 게다가 방향전환도 생각보다 다채로웠기 때문에 우리들은 자신의 동선과 군무를 위한 방향전환을 재빠르게 외우고 체크해야 했다. 연습을 하다가 단원 한 명이 헷갈려 하거나 다른 동작을 하면 또 그 부분을 연습했다. 군무이기 때문에 누구 한 명이 틀리면 전체 단원이나 조별 단원들이 그 부분만 수없이 반복, 연습했다.  

   

보기에는 궁중무용처럼 기품있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춤이었는데, 막상 춰보니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는 작품이었다. 그래도 우리들은 꽃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어도 안 힘든 척 해야 했다. 오히려 꽃이니까 활짝 만개해야 했으며 연습할 때에도 꽃처럼 활짝 웃어야 했다.      


무엇보다도 우리들을 꽃으로 만들어주신 선생님이 마법사처럼 보였다. 공연이 끝난 후 우리들이 춤 춘 모습을 찍은 영상을 우리들이 보면서 자화자찬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깊이 우러나오는 진짜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선생님이 우리들한테 마법을 부리신 것 같아!”     


커튼콜 때 한강 시민들한테 받은 환호와 박수는 짧은 시간에 꾼 아름다운 꿈과 같았다. 잠깐이었지만 현실과 꿈같은 순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관객들의 박수갈채 소리가 환영처럼 느껴졌다. 취미 발레인들도 이런 심정인데, 발레 무용수들은 이런 느낌이 행복해서 발레가 힘들어도 계속 무대에 오르는 것 같다.

추억 소환! 이 해에 <꽃의 왈츠> 군무로 위댄스 페스티벌과 학원 발표회 총 2번 무대에 올랐다.사진은 학원 발표회날 꽃(?)으로 변신한 나.


매거진의 이전글 어쩌다 발레를 배우다...1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