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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돈키호테> 원작 2

키트리와 바질의 결혼 대소동

by 아트 서연

돈키호테 2권 중 19장에서 22장까지 나오는 에피소드 중에서 발레 작품의 뼈대가 되는 액기스만 뽑아 즐겁고 신나고 유쾌하게 각색되어 또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탄생된 발레 <돈키호테>. 결론부터 말하면 발레 작품 <돈키호테>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나오는 에피소드와 뼈대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작품이다. 발레 <돈키호테>는 대본과 안무를 맡은 마리우스 프티파와 작곡가 루드비히 밍쿠스, 그리고 프티파가 안무를 만드는 데에 많은 영감을 주었던 이탈리아 출신의 기교파 무용수들, 대다수의 러시아 황실 발레단원들의 합작품이다. 즉 프랑스 출신의 안무가가 스페인에서 3년간의 무용수 생활을 했던 경험과 기억들을 되살려 이탈리아의 발레 테크닉을 차용해서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곡가의 음악으로 러시아인들의 뜨거운 열정을 융합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볼쇼이 발레단의 돈키호테, 아나 투르아자쉬빌리

볼쇼이 발레단의 돈키호테. 키트리 역의 스베틀리나 자하로바, 바질 역의 데니스 로드킨


낭만적 열정이 가득한 발레 작품에서는 주인공 키트리가 아빠 말 안 듣고 돈 없고 잘생긴 남자와 결혼하려는 금쪽이처럼 보이지만 소설 <돈키호테>는 키테리아와 바실리오의 결혼 에피소드를 통해 작가 자신이 생각하고 있었던 ‘결혼’에 관한 통찰력을 담아내었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와 산초의 입을 통해 ‘결혼’에 관한 성찰을 들려줌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자녀들의 결혼에 관해서 부모가 어디까지 개입을 해야 하는지, 결혼 상대는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 등 ‘결혼이 뭘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매우 민첩하고, 막대 던지기를 잘하고, 뛰어난 씨름꾼에, 최고로 공차기를 잘하지만 정작 재산도 없고 신분도 낮은 바실리오. 그런 바실리오에게 딸을 시집보낼 마음이 없었던 아버지는 돈 많은 농부 카마초와 결혼시키려고 한다.

로열 발레단의 돈키호테. 바질 역의 매튜 볼


이 이야기를 들은 돈키호테는 “겉보기에는 용감하고 멋져 보이는 남자라도 사실은 쓸데없이 칼을 휘둘러대는 건달에게 마음을 줄 수도 있는 것이지. 사랑과 호의는 적합한 사회적 신분을 지닌 사람을 고르는 데 필요한 이성의 눈을 쉽게 멀게 하지 않느냐....그래서 좋은 신랑감을 고르기 위해서는 훌륭한 직감과 하늘의 특별한 은총이 필요하지.”라고 말한다. 또 산초는 “사랑은 간절한 마음이 생기면 구리를 금으로 보이게 하고, 가난뱅이를 부자로 보이게 하고 눈곱을 진주로 보이게 한다고 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사랑에 빠지면 나타나는 현상들을 예리하게 짚어내고 있다.

로열 발레단의 돈키호테. 키트리 역의 로렌 커버슨, 바질 역의 매튜 볼


결국 바실리오는 발레 작품 속 바질처럼 가짜 자살 연기 소동을 벌인다. 이때 돈키호테는 상처입은 바실리오의 모습에 마음이 움직이면서 바실리오와 키트리가 이루어지는 데에 결정적인 말을 한다. 이에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도 키테리아에게 달려가 죽어가는(?) 바실리오에게 청혼할 것을 권유한다. 그러자 발레 작품 속에서 통통 튀는 캐릭터 키트리와는 다르게 차분하고 지고지순한 키테리아는 과감하게 불쌍한 바실리오에게 다가가 청혼을 한다. 키테리아는 애틋한 마음으로 바실리오에게 마지막 사랑의 속삭임을 하고 마을 신부는 울먹이면서 주례를 선다.

돈키호테 2권에서 21장 에피소드, 자살 연기를 하는 바실리오, 구스타프 도레의 삽화


그 순간 바실리오가 날렵하게 몸을 일으킨다. 그 후 키테리아와 바실리오는 돈키호테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면서 자신들의 거처로 데려가 극진하고 융숭한 대접을 한다.

돈키호테 2권 중 22장. 은인 돈키호테를 정성껏 대접하는 키테리아와 바실리오 부부, 구스타프 도레의 삽화


돈키호테는 키테리아와 결혼한 바실리오에게 통찰력있는 조언들을 한다. 결혼은 반드시 원하는 사람들과 하되 상대방의 재산보다는 평판을 더 중요시해야 한다는 충고와 함께 사랑의 최대의 적은 배고픔과 가난임을 경고한다.


작가가 소설 속에서 들려주었던 결혼에 관한 여러 성찰들은 오늘날에도 고민하는 문제들이다. 그만큼 인간의 생애에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세르반테스보다 훨씬 후대의 작가인 제인 오스틴도 자신의 소설들을 통해서 결혼에 관한 통찰력을 담아냈던 것이다. 역사상 위대한 대 문호들이 이렇게 작품 속에서 ‘결혼’에 관해 중요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지만 이 문제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다. 그리고 현재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민하고 있을 것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대다수의 심리학자들은 부모를 보며 배우자감을 고른다고 말한다. 어느 정도는 동의하지만 의외로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도, 그 반대의 경우도 본 적이 있어서 심리학자들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훌륭한 직감과 하늘의 은총”이 필요하다는 돈키호테의 말에 동의한다. 일명 ‘팔자 소관’이다. 결혼은 복불복인 것 같다. 행운의 여신이 랜덤으로 뿌려주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결혼에 관한 여러 가지 성찰들은 끝나지 않을 인간의 굴레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에드워드 번 존스, 운명의 수레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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