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움직임 그 자체

웨인 맥그리거의 <크로마, Chroma>

by 아트 서연

이 작품은 로잔콩쿠르에서 학생들이 추는 컨템포러리 발레작품으로 먼저 접했다. 참가학생들 상당수가 이 작품을 선택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설득력이 없는 작품으로 느껴졌었다. 오늘에서야 ROH 홈페이지에서 이 작품을 풀영상으로 봤는데, 콩쿠르에서는 왜 납득을 하지 못했는지 이해가 갔다.


역시 발레는 무용수들의 움직임 뿐만 아니라 움직임을 돋보이게 해줄 의상과 무대배경 그리고 조명까지 "발레작품"이 되는 것이다. 콩쿠르의 특성상 각 작품마다 무대배경과 조명을 전환할 수 없으니 발레작품 자체가 주는 매력과 안무가의 의도가 감상자에게 전달되지 못했던 것이다.

https://youtu.be/A2RdCgmURAU?si=fo8DVc3pfI6jzwlp

참가학생이 춘 부분은 실제 작품에서 에드워드 왓슨과 마라 갈레아찌가 번갈아 가며 춘 장면으로 풀영상에서는 16분부터 나온다.


조비 탈보트의 사이버틱한 음악을 타고 에드워드 왓슨과 마라 갈레아찌가 강렬한 인상을 남기면 장면전환이 되면서 사라 램이 등장한다.이런 식으로 총 7번의 장면전환마다 자신의 피부색에 맞는 미니멀한 발레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유동성있게 등장하고 퇴장하면서 신체를 심하게 비틀고 몸을 유연하게 하다 못해 과하게 꺾는 춤을 춘다. 가끔씩 발끝 포인을 하면서 발레의 역사를 지키는 컨템포러리 발레작품이라는 것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발레의 정체성인 '풀업'보다는 중력의 영향을 받는 동작들이 대부분이다. 발레근육이 아닌 다른 근육을 사용하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오히려 평소에 갈고 닦았던 무용수들의 발레근육이 더 잘 보였다.



전반적으로 미니멀한 무대배경과 장면전환마다 미묘하게 바뀌는 조명 그리고 여기에 어우러지는 피부톤의 발레의상들은 색상, 명도, 채도가 비슷한 매우 가까운 색들로 조합한 배색들로 이루어져있다. 그런데 이러한 색의 배치가 오히려 무용수들의 팽팽한 근력과 긴장감 넘치는 움직임들을 더 돋보이게 해주고 시야에 확 들어오게 한다.


사이버틱한 음악 안에서도 낭만적인 선율이 있다. 확실히 낭만적인 선율이 흐르는 장면에서는 아름다운 발레리나 사라 램과 조각같은 발레리노 페데리코 보넬리를 배치했다. 사라 램과 보넬리는 전형적인 고전발레 무용수 체형이다. 그래서 이 작품 중에서는 춤선이 그나마 부드러운 장면들에 배치를 한 것 같은데, 두 무용수들이 빚어내는 모든 동작들이 전부 그림이었다.


출연무용수들 중에서 가장 유심히 본 무용수는 라우라 모레라와 에릭 언더우드이다. 라우라 모레라는 로열발레단 수석무용수였어도 특별히 주목받았던 무용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 그녀는 언제나 복잡미묘한 매력을 발산하면서 빛이 났다. 흑인 무용수들이 근력이 좋다보니 무용작품에서 언제나 멋진 자세가 나온다. 에릭 언더우드가 흑인 무용수들만이 지니고 있는 특유의 탄력있는 근육으로 매우 멋진 춤을 보여주었다.


발레의 정형성에 대한 반동으로 창시된 현대무용은 세월이 흐르면서 나름의 메소드가 생겼다. 그래서 요즘 현대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보면 어느 메소드로 배웠는지를 알 수 있을 정도로 현대무용 역시 정형화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점을 떠올리면서 감상한 웨인 맥그리거의 <크로마>. 이 작품에서 무용수들의 사지가 과격하게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에곤 실레 그림처럼 신체를 과하게 꺾고 비트는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꿈틀거리는 근육을 보면서 오히려 발레의 역사는 지키는 컨템포러리 발레야말로 훨씬 움직임이 자유롭고 창의적이고, 춤의 반경이 더 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발레는 러시아'라고 생각할 경우 영국발레는 정말 안 예쁘다. 러시아 발레체형 기준에 영국 발레무용수들 체형이 대부분 안맞기 때문이다. 특히 낭만발레, 고전발레에서 로열발레단의 군무는 무용수들의 균일하지 않은 키 때문에 더욱 안 예쁘게 보인다. 하지만 영국이 어떤 나라인가. 몇 백년동안 연극공연을 해오면서 무대연출에 관한한 수많은 노하우가 쌓여있을 것이다. 그래서 로열발레단은 이러한 부분들을 전부 기가 막힌 무대연출로 눈속임을 잘한다.

러시아 발레와 비교하면 백조들의 키가 균일하지 않다.


하지만 영국발레의 장점을 웨인 맥그리거의 <크로마>를 통해서 다시 한번 확인했다. 로열발레단 무용수들의 뛰어난 기량이 이런 컨템포러리 작품이나 드라마 발레에서 다 드러난다. 핀터레스트에서 관련 사진들을 찾아봤더니 생각보다 사진들이 많았다. 그리고 생각 이상으로 이 작품의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사진으로 봐도 멋있었다.

에드워드 왓슨과 마라 갈레아찌
맨 오른쪽 발레리나는 타마라 로호. 현재 샌프란시스코 발레단 예술감독
아름다운 발레리나 사라 램과 조각같은 발레리노 페데리코 보넬리
사라 램의 상체 유연성
모든 동작마다 아름다운 라인을 보여준 사라 램
매우 탄력있는 근력으로 꿈틀거리는 근육을 보여주며 좋은 춤을 보여준 에릭 언더우드. 춤을 정말 잘 추는 무용수.
스티븐 맥레이


https://youtu.be/2SMmL6kIx-w?si=kOpwSdlCFDBknwp0

https://youtu.be/Cx6rWBMqNcM?si=gkegyWnuWQZP63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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