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뤼스는 어떻게 세계를 사로잡았나
서문 첫 문장부터 자신을 못 말릴 정도로 발레에 중독된 사람(발레트망)이라고 소개한 저자는 본문 첫 장부터 영화 <분홍신>을 소개한다. 이 영화는 안데르센 동화에 기초해 댜길레프와 니진스키의 사랑과 전쟁에서 모티프를 삼아 무척 화려하고 다채롭게 제작함으로써 2차 세계 대전 전후 어둡고 칙칙했던 유럽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대중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작품이다.
그러나 분홍신을 신고 계속 춤을 춘 주인공 빅토리아는 죽음이 임박해서야 분홍신을 벗는다. 정말 못 말리는 발레 중독자인 저자가 본문 첫 장부터 영화 <분홍신>을 언급한 이유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책 전반에 걸쳐 다루게 될 댜길레프와 니진스키의 인생 스토리와도 연관이 있지만 여기에는 평생 동안 자신의 인생을 갈아넣으면서 발레에 헌신하는 예술가들 그리고 발레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발레 애호가들과 발레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전쟁이 끝난 지금 <분홍신>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예술을 위해 나아가 죽어라.”(p.15)
또한 발레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저자는 1장에서 발레의 미래에 대해 결론부터 내린다. 오늘날 고전발레의 새로운 어휘가 사라졌음에도 엄격한 그 기본 테크닉에 열광하는 극성스러운 발레 팬들 덕분에 유물같은 발레는 그 생명력이 꺼질 줄을 모르고 살아 숨쉬고 있다. 게다가 이렇게 인습을 중시하는 발레의 경계 안에서도 그 한계를 뛰어넘는 창조적인 발레 안무가들이 계속 나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매력적이고 감동적인 작품들을 선사하기 때문에 발레는 앞으로도 꾸준히 헌신적인 추종자들에 힘입어 무대에 오를 것이라는 발레트망인 저자의 말에서 발레의 존재감을 계속 타오르게 하는 불꽃같은 에너지를 느꼈다.
하지만 이미 한 세기 전에 발레 에너지를 불꽃처럼 태우면서 유럽인들의 마음을 훔쳐서 가는 곳마다 발레를 점령한 매혹적인 발레 제국의 황제가 있었으니 바로 발레 뤼스의 처음이자 마지막 황제인 댜길레프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발레 제국의 씨앗을 싹트게 한 그 뿌리부터 시작해서 댜길레프가 뛰어난 총신들을 규합해 본격적으로 유럽을 약탈하면서 식민지화한 발레 제국의 번영과 영토확장 그리고 갑작스러운 황제의 죽음으로 한순간에 와해된 발레 제국의 이야기와 황제 댜길레프가 총애했던 무용수들과의 사랑과 배신, 발레 제국을 건설하는 데에 일조한 총신들간의 갈등 등 댜길레프가 이룬 업적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훗날 댜길레프의 조신들이 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넵스키 픽웍키언 클럽 멤버들(알렉산드르 브누아, 발터 누벨, 레온 박스트 등 4인 그룹)은 이미 발레토마니아들이었다. “만일 내가(브누아) 친구들에게 나의 열정을 전염시키지 않았다면 발레 뤼스와 발레 뤼스가 낳은 그 모든 발레토마니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p.55) 넵스키 픽웍키언 클럽 멤버들의 환심을 산 댜길레프는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젊은 인재들을 끌어모았다.
“그는(미하일 포킨) 지배적인 미학의 경계 너머를 보면서 아시아 조각의 유려한 굴곡과 민속춤의 거친 스타일을 결합했다.”(p.79)
“자신의 몸으로는 이탈리아 무용수들처럼 발끝으로 서서 힘차게 돌 수 없다는 점을 깨달은 파블로바는 흙보다 공기를 더 많이 품은 생명체로 느껴질 만큼 우아하게 하늘거리는 독특한 스타일을 개발했다.”(p.83)
“타마라 카르사비나는 매우 지적이고 학식을 갖췄으며 변함없는 친구이자 믿을만한 동료였고, 여왕 같았지만 누구에게나 정중한 스타였다. 이 책에 정직한 미덕의 횃불이 있다면 그 불빛은 타마라에게서 나온다. 눈부시게 빛나는 아름다움, 능수능란한 연기력, 시적 상상력을 겸비한 이 무용수는 학교라는 외피를 깨고 나올 때부터 선배인 파블로바보다 더 따뜻한 인간, 그러니까 손에 잡히지 않는 환상뿐 아니라 감정적 진실까지 전달할 줄 아는 예술가였다.”(p.84~85)
“특별히 존경스러운 스승은 엔리코 체케티와 크리스티안 요한손이었다.”(p. 85)
“니진스키는 언제나 별종이었다. 욱하는 성질에도 불구하고 나르시시즘에 빠졌나 싶을 만큼 과묵했으며 매사에 강박적으로 깔끔하고 꼼꼼했다. 한마디로 심리학적 수수께끼 같은 존재였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후에 ”그의 성격에는 이상한 결핍이 있다“고 지적했지만 사람들은 그가 무대 의상을 입고 다른 사람이 되었을 때 드러나는 무시무시한 변신에 놀라곤 했다. 이 단단한 근육질의 평범한 체격이 어떤 연금술에 의해 초자연적으로 날아오르거나 이국적인 관능을 발산하거나 시적 갈망의 전형이 되었다.”(p. 86~87)
“하지만 그의 기술을 가장 정확히 묘사한 사람은 그의 친구 마리 램버트였다.(발레뤼스에서 활동을 하다가 영국 발레의 초석을 세우는데 일원이 된 발레리나. 오드리 헵번의 발레 스승이기도 했다.)”(p.88)
이처럼 인재들을 끌어모은 댜길레프의 야망은 정말 원대했다. 타고난 심미안과 예술적 감성으로 인재들을 발굴했을 뿐만 아니라 연극과 음악 문화 전체를 실어 나르는 대업을 이루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당대의 무용 스타들과 경영주였던 댜길레프를 묘사하는 저자의 필력은 춤처럼 나풀거리고, 눈 앞에서 마주하는 것처럼 생생하다. 그러면서도 유머를 가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포장용 상자에 담겨 배달된 맛있는 음식이 단결심을 유지시켰다. 그 시절 발레 무용수들은 오늘날처럼 마른 몸매에 집착하지 않았고, 식욕이 말과 같았다. 카르사비나는 ”나는 항상 모든 걸 먹었다.“고 힘주어 말했다.”(p.93)
춤이 전에 없이 유행하는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새로움을 갈망하는 파리 시민 특유의 호기심과 감수성은 그들 편이었다.(p.93) 파리를 점령한 댜길레프는 런던, 베를린, 로마, 몬테카를로에도 진격해 차례차례 승리의 깃발을 꽂으면서 이긴 자의 미소를 지었다. 1910년 무렵에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아방가르드”라는 용어가 출현했다. 이제 발레 뤼스는 모더니즘의 최전선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댜길레프의 치하에 모여든 모더니스트들이 나오는 4장은 그야말로 당대 유명했던 예술가들의 인명사전같은 챕터임과 동시에 저자의 예술적인 조예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챕터이다. 발레 뤼스의 역사에 분수령이 된 작품들인 니진스키의 <봄의 제전>, <목신의 오후> 그리고 이 작품 때문에 소외된 포킨의 <다프니스와 클로에>를 둘러싼 니진스키와 포킨의 갈등을 묘사하면서 저자는 예리하게 평론을 한다.
“결국 생전에 마지막으로 웃은 사람은 포킨이었다. 그가 창조한 발레들은 발레 뤼스의 초기 성공에 핵심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후에도 박스 오피스 수익의 주요 수입원이 되어 발레단을 지탱했으며 다음 세대까지 전 세계적인 인기를 유지했다. 한 세기가 흐른 지금 누구의 발레가 더 위대한 유산인가 하는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p.132)
“(봄의 제전) 작업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니진스키가 모든 움직임이 기계처럼 정확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다. 몰락하긴 했어도 포킨은 언제나 개성과 해석의 자유를 허락했던 반면, 니진스키는 자신의 명령을 단원들에게 설명조차 해주지 않는 엄격한 군인이었다.”(p.138)
저자인 루퍼트 크리스천슨은 니진스키의 부재로 발레 뤼스를 대표하는 차기 발레리노이자 안무가가 된 레오니드 마신을 매우 중요하게 다룬다. 이제 발레 뤼스에는 초기의 건국 공신들은 없었지만 댜길레프에게는 마신이 있었다. 마신을 선봉으로 내세운 댜길레프 제국은 드디어 미국에도 상륙했다. 그러나 미국의 상륙작전은 댜길레프의 기대에 못미쳤다. 게다가 댜길레프의 곁을 떠난 후에도 계속 곁에서 배회를 했던 니진스키가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상륙작전은 물 건너 갔다.
댜길레프와 니진스키의 휴전 협정으로 니진스키가 발레 뤼스에 다시 합류하면서 이루어진 미국 공연은 호평도 받았지만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미국인들은 파리지앵이 아니었다. 파리지앵들은 니진스키의 에로티시즘에 열광했지만 뉴요커들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였다. 런더너들은 니진스키의 이야기들을 가십으로 즐겼지만 뉴요커들은 없는 이야기들을 지어내서 헛소문을 퍼뜨렸다.
댜길레프는 니진스키를 비롯한 발레 뤼스의 일부 단원들을 미국에 남겨두고 스페인으로 향했다. 댜길레프가 이끄는 스페인 정복은 성공적이었으나 니진스키를 선두로 한 미국 점령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니진스키의 천재적인 재능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하는 것만 잘하고 나머지 무용수들과 융화되지 못하는 유아적인 천재성이었다.
반면에 마신은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결정을 번복하는 니진스키와는 전혀 달랐다. 다양한 예술분야를 접하면서 영감을 받았고, 비록 심장은 차갑더라도 리허설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단원들에게 정확한 언어로 전달하면서 단원들을 이끌었다.
러시아 민속춤과 발레를 결합해 작품을 통해 서사, 감정 등을 전달하고자 했던 미하일 포킨, 원시주의와 인간 내면에 꿈틀거리는 본능을 적나라하게 표출한 니진스키.
반면에 마신은 익살스러운 춤을 좋아했다. 심장과 머리는 차가웠으나 익살에 대한 감각은 매우 뛰어났던 마신은 <환상가게>, <삼각모자>, <풀치넬라> 등을 통해 발레에 코믹과 재치를 구현했다.
이렇게 마신이 안무가로서 성공가도를 달리며 스펙을 쌓는 것과는 별개로 댜길레프와의 관계는 빠르게 뒤틀리고 있었다. 사실은 니진스키처럼 이성애자였던 마신 역시 결국 댜길레프의 곁을 떠난 후 결혼을 했다. 이번에도 댜길레프는 상처를 받았다.
마신의 후계자를 찾지 못한 댜길레프는 궁여지책으로 오히려 제국주의 발레로 회귀해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무삭제 버전으로 공연할 계획을 세웠다. 이 새로운 프로젝트는 오히려 그 동안에 댜길레프의 예술철학과 원칙에 반대되는 것이었고, 온갖 최첨단 예술사조에 푹 빠져 지내는 대중들의 아방가르드한 취향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평론은 이중적이었으나 어떤 이들은 매일같이 이 작품을 보면서 발레 뤼스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 열광했다. 어느 예술가는 어린 시절에 이 작품을 보고 마법처럼 인생이 바뀌었다고 회상했다.
댜길레프의 유산은 이렇게 깊이깊이 흘렀다.
발레 헤게모니를 장악했음에도 개인의 변덕스러운 공납과 박스 오피스 수익이라는 불안정한 재정에 의지했던 댜길레프의 제국은 뿌리깊은 나무처럼 뿌리 내리지 못한 채 아슬아슬하게 표류하면서 유지되었다. 이 때 댜길레프의 어깨에 내려앉은 짐과 마음의 무게를 덜어준 구원의 손길이 모나코로부터 날아왔다. 덕분에 위태롭게 연명했던 발레 제국을 구하고 발레뤼스는 처음으로 연중 내내 공연할 수 있는 영구적인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 세워졌다.
이 시기에 니진스키의 여동생 니진스카가 발레뤼스의 안무가가 되어 <결혼>이라는 작품을 안무하면서 아방가르드의 최전선에서 여성 안무가라는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결혼>은 논쟁의 여지없이 여성들이 주도한 최초의 위대한 공연 예술 작품이 되었다.(p.236)
그러나 발레뤼스에 조지 발란신이라는 뛰어난 인재가 들어오면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발레 제국에서 매우 중요한 조신이 된 발란신은 아무리 어려운 안무를 맡겨도 뚝딱뚝딱 해치웠다. 발란신은 일처리도 야무졌을 뿐만 아니라 조조같은 꾀와 제갈량같은 지략을 갖춘 고수였다. 니진스키처럼 정신병으로 고생하지도 않았고, 마신처럼 기계같은 딱딱함도 없었으며 발레 제국에 만연해있는 동성애에도 휩쓸리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여성들이 흠모할만한 매력을 지녔고, 그럼에도 수수께끼같은 느낌을 주는 인물이었다. “미래에 그를 후원한 링컨 커스틴은 ”눈으로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묘사했다.”(p.259)
길고 긴 발레의 역사에서 탁월한 감각과 통솔력으로 새로운 발레의 유전자 스위치를 켠 댜길레프가 사실은 발레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당대의 재능있는 발레리나였던 알렉산드라 다닐로바는 발레 뤼스의 수준낮은 테크닉과 충분한 리허설이 없이 성급하게 임시변통식으로 공연하는 모습에 충격받았다. 다닐로바는 자서전에서 “아주 많은 것이 각자의 재량에 맡겨졌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언제나 돈이 없었던 댜길레프는 단원들에게 월급을 줄 돈도 거의 없었다. 심각한 재정난은 언제나 불화의 원인이 되었다. 스트라빈스키는 돈을 움켜잡으려 했으나 댜길레프는 항상 돈이 부족했다. 들어오는 돈은 있었으나 언제나 나가기에 바빴고 금고는 텅텅 비어있었다. 이 진실의 이면에는 댜길레프의 투명하지 않은 재정관리에 있었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고 돈을 썼던 댜길레프는 당연히 저축한 돈이 없었기에 단원들의 월급을 줄 돈이 거의 없었다. 회계관리를 전혀 하지 않았던 댜길레프는 그래서 누군가가 먹이를 줄 것 같으면 그 손을 덥석 물었다.
댜길레프는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결코 좌절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진정한 투사였다. 그의 생명이 꺼져가는 시기가 점점 다가왔음에도 그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며 <로미오와 줄리엣>을 제작해 런던 공연을 추진했다. 그러나 아방가르드가 중요했던 프랑스의 젊은이들은 발레 뤼스가 전위예술을 배신했다며 소란을 피웠고, 영국의 평론가들은 한국인이 읽어도 훅 들어오는 얼얼함으로 매운맛 비평을 썼다.
“전쟁 전에 그는 러시아 발레를 위한 유행을 창조했고, 전쟁 후에 그는 단지 유행을 위한 유행을 창조했다.” (p.260)
카드 돌려막기처럼 이리저리 돌려막았던 발레 제국의 재정은 채무가 쌓여갔고, 청구서를 지불하지도 않았으며 점점 부호들의 공납에 의지했다. 예술의 흐름을 파악하는 뛰어난 동물적인 감각과 인재를 알아보는 예리한 눈으로 타고난 리더쉽과 함께 버무려 발레 제국을 건설했고, 몬테카를로에 전용극장이 생겨 충분히 뿌리내릴 수 있었지만 시스템 구축에 관심이 없었던 탓에 기반이 전혀 없었던 발레 제국은 갑작스런 황제의 죽음과 함께 와해되었다.
댜길레프가 만년에 총애했던 코흐노와 리파르라는 이름의 두 청년들은 댜길레프의 유산을 한 푼이라도 더 챙길려고 서로 물어뜯고 싸웠지만 사실은 황제가 남긴 재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황제는 돈은 거의 안 남겼지만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유산을 남겼다. 문.화.유.산!
발레 제국이 와해된 후 제국의 후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제 2의 댜길레프를 흉내내는 후손들도 있었다. 댜길레프 콤플렉스에 걸린 제국의 후손들은 제각각 발레단을 만들어 표류하면서 춘추전국시대처럼 서로 헐뜯고 경쟁하면서 온갖 협잡질로 피비린내나는 전쟁을 했다.
그러나 황제가 새긴 발레 유전자는 생각보다 훨씬 더 깊었다. 그 발레 유전자가 좋은 기억으로 남았는지 그 DNA를 기억하는 청년들이 새로운 발레 제국을 건설하는 데에 주축이 되었다. 요즘 MZ세대 문화처럼 발레 뤼스의 공연에 열광했던 블룸즈버리 그룹을 비롯한 영국의 젊은이들이었다. 이미 발레에 관한 비평문화가 자리를 잡았고, 더 이상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닌 광범위한 문화의 일부가 된 발레에 관해 더 이상 러시아 발레에만 열광할 게 아니라 영국적인 발레를 만들자는 담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언제나 댜길레프 황제의 충직한 충신이었던 발레리나 타마라 카르사비나를 비롯해 발레 뤼스에서 무용수로 활동한 경험이 있었던 니넷 디 벨루아, 마리 램버트, 프레데릭 애슈턴을 비롯한 발레 엘리트들이 모여 제도적인 인프라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한편 한때 황제의 총애를 받았던 레오니드 마신은 “교향곡 발레”라는 나름대로 혁신적인 발레 장르를 만들어 나갔다. 물론 마신의 심포닉 발레는 금세 구식이 되었지만 그의 아이디어와 시도는 미래의 발레 후손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의 씨앗이 되었다.
프랑스에서도 새로운 동력이 출현했다. 만년의 댜길레프에게 총애를 받았던 코흐노가 그의 곁에서 배웠던 발레 교훈을 실천한 것이다. 그 교훈이 결실을 맺었으니 코흐노는 샹젤리제 발레단의 예술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코흐노 앞에 나타난 인습타파적인 발레를 꿈꾸었던 무용수 롤랑 프티는 시대를 앞서나가는 안무가가 되어 암울한 시기에 발레를 부활시킨 도화선이 되었다.
치료 불가능한 댜길레프 병에 걸린 사람들이 여기저기 출몰하자 링컨 커스틴은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보통내기들을 경계하라.”(p.360)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진짜배기가 있는 법이다. 댜길레프의 제국에서 뛰어난 지모로 창조된 <아폴로>는 음악이 가진 차분하고 고전적인 명료함을 구현한 작품으로 지금까지도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이 작품을 창조한 발란신은 진짜로 뮤즈를 인도하는 아폴로가 되어 새로운 발레 제국을 건설하는 지도자가 되었다.
댜길레프 황제는 관심조차 없었던 제도적인 기반 마련과 재정 확보, 투명한 회계 관리 등으로 안정적인 제국을 건설하는 데에 일조한 두 지도자인 프레데릭 애슈턴과 조지 발란신은 각각 영국과 미국에 뿌리내리면서 발레에 창조적인 생명력까지 불어넣었다.
두 지도자 모두 한때 발레 뤼스에 봉직하면서 황제가 가르치는 미학을 배우고 성장했으나 그들은 제 2의 댜길레프가 되지 않았다. 황제의 곁에서 배웠던 발레 미학을 흡수했으되 모두 자신들만의 창조성을 부각시켰다.
과거에 대한 향수를 간직했던 낭만주의자 애슈턴은 예쁘고 아기자기한 표현에 섬세한 감정과 영국적인 유머를 가미했다. 반면에 발란신은 바그너의 총체예술을 추구했던 댜길레프의 미학을 버리고 기본을 강조했다. “음악을 보고, 춤을 들어라.”
이처럼 발레를 위해 위대한 시도를 한 애슈턴과 발란신. 시대를 앞서가려고 했던 롤랑 프티. 발레의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했던 모리스 베자르. 발레의 경계 안에서 매력적이면서도 창조적인 작품을 만든 케네스 맥밀란, 존 크랑코, 알렉세이 라트만스키, 크리스토퍼 휠든 등의 발레 안무가들. 언제나 고전발레를 흥미롭게 패러디하는 매튜 본, 표현의 다양성을 시도하는 아크람 칸, 앙줄랭 프렐조카주, 웨인 맥그레거, 크리스털 파이트 등 댜길레프가 했던 혁명적인 노력들은 이렇게 창의적인 후손들을 번성하게 하면서 현재까지도 발레의 번영을 이룰 수 있게 했다.
“대체로 추한 일들만 가득했던 20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한 아름다움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p. 407)
바그너의 종합 예술을 꿈꾸었던 댜길레프는 당대에 유명했던 최고의 예술가들을 총동원해서 협업을 이끌어낸 발레 경영자이자 흥행주였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 셀레이는 각 분야별 예술가들이 모여 협업한 발레 뤼스의 작품들은 발레의 유전자를 바꿔 놓았다. 이전에는 없었던 방식으로 작품들을 창조하면서 발레의 역사에 새로운 DNA를 새긴 댜길레프. 이 책은 그 댜길레프가 창단한 발레 뤼스가 어떻게 발레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고, 전 유럽을 매혹시켰는지에 대해서 발자취를 따라가며 쓴 발레 역사서이자 책으로 읽는 발레 다큐멘터리이다. 발레 뤼스를 마치 한 나라의 흥망성쇠처럼 풀어놓아서 마치 역사책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했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는 댜길레프를 마냥 찬양하지 않았다. 댜길레프라는 인물의 빛과 그림자, 그를 둘러싼 예술가들과의 에피소드들은 댜길레프라는 인물의 평전이기도 하다. 저자는 그 동안에 신격화되었던 발레리노 니진스키도 빼놓지 않고 낱낱이 해부하면서 예리한 평론을 했다. 책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저자의 도리토스같은 매운맛 비평과 진지하게 묘사해서 더 웃기는 드라이한 유머감각에서 BBC 취재스타일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 책은 그 동안에 내가 가지고 있었던 댜길레프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게 했다. 다른 발레 서적에서 읽었던 댜길레프에 관한 묘사와 사진에서 봤던 댜길레프의 모습은 발레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인물이었어도 충분히 위압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만난 댜길레프에게서 인간적인 따스한 면모를 보았고 이제 그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마드리드에서 왕족의 후원으로 공연이 열렸다. 피로연 자리에서 알폰소 국왕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당신이 하는 일은 정확히 무엇인가?“ 댜길레프는 영리하게 대답했다. ”폐하, 저는 폐하와 똑같습니다. 일을 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지요. 하지만 필수 불가결한 존재입니다.“ (p.172)
“위대한 춤은 허공을 가로질러 공간을 조각한 뒤 향수처럼 차츰 사라진다. 창시자가 떠나고 나면 짧고 불확실한 생이 남는다. 안무는 시나 그림 같은 영원한 힘을 거의 갖지 못한다. 카메라는 안무를 그저 이차원으로 납작하게 만든다.”(p.402)
“그러므로 21세기에 남겨진 발레 뤼스의 흔적은 그림자와 윤곽들, 책 속에 얼어붙은 이미지들,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 대한 기억들이다.”(p.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