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때 한국사회에서 "무용을 전공한다."는 것은 어떻게 비춰질까?
"머리가 나쁜가봐."
"시집은 잘 가겠네."
20세기도 아닌 21세기에도 여전히 무용 전공에 대해 이런 시선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가 잘못된 것일까?
어쨌든 이런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는 사람들은 아마도 단 한번이라도 무용공연을 본 적이 없거나 춤을 춰 본 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일테다. 이런 흑백논리에 갇힌 사람들은 그저 유연하기만 하면 춤을 출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할테니 말이다.
그나마 "발레를 전공한다."고 하면 사회적인 시선이 조금은 낫다. "부잣집 딸인가봐." 이런 시선은 취미발레로도 연결된다. 취미로 다른 장르의 댄스를 배운다고 말하는 것보다 발레를 배운다고 했을 때 플러스 알파가 되는 면이 있다.
그렇다면 과연 머리가 나쁜 사람들이 무용전공을 하는 걸까? 유튜브에 들어가서 로잔콩쿠르, YAGP라고 검색만 하면 발레 콩쿠르에 참가한 학생들의 영상이 엄청 많이 뜬다. 도깨비 시장같은 리허설 무대에서 발레 마스터가 내주는 엄청 길고도 복잡한 안무를 순식간에 다 외워 그대로 소화해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무용전공자들은 순간적인 암기력이 엄청 좋다. 게다가 눈썰미가 정말 예리하다. 두뇌와 신체의 협응능력이 엄청 뛰어나다는 뜻이다. 두뇌회전이 그만큼 좋다는 뜻이기도 하다.
춤을 춘다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복잡한 재능의 영역이다. 운동신경도 좋아야 하는데, 운동선수들과는 다른 운동신경이다. 여기에 타고난 리듬감각과 섬세한 춤에 대한 감각이 있어야 한다. 신체를 제어하고 조율하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게다가 발레는 캐릭터 분석능력도 뛰어나야 한다.
그런데 어느 취미발레인도 이런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언니, 발레하는 여자들 교양이 너무 없어요."
"맨날 학원에서 발레 얘기만 하고 인문학적인 조예가 너무 없어요."
어이가 없었다. 왜 발레학원에서 인문학적인 조예를 찾지? 그럼 독서모임에 가든가, 발레학원에서 회원들이 발레 이야기를 하지, 무슨 얘기를 하나?
내가 말했다. "발레하는 여자들 얌전하니까 그냥 다녀."
그 회원분은 매번 이런 식으로 내게 한 두번만 말한 게 아니었다. 어느 날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언니, 저는 발레할 때 예쁜 척. 우아한 척 하는 게 너무 싫어요." 참다못해 그 날은 그만 내가 버럭했다.
"원래 그런 춤인데. 알고 시작한 거 아니었어? 그래서 발레 할거야? 말거야?"
얼마전에 한 지인분에게 그 취미발레인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 다른 학원에서 발레를 계속 배우고 있다고. 내가 발레 그 자체가 좋아서 발레를 계속 배우고 있듯이 그 취미발레인 역시 발레에 대한 양가감정이 들면서도 발레가 좋긴 좋은가보다.
예쁜 척, 우아한 척하는 발레. 발레의 역사를 알게 되면 발레가 어째서 예쁜 척, 우아한 척 하는 춤인지 알 수 있다. 궁중에서 귀족들이 예쁜 척, 우아한 척하면서 사교로 췄던 발레는 겉으로만 "~척"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교양을 쌓아서 우아해지고 예절을 배우기 위해 췄던 춤이다.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와 여전히 발레는 예쁘고 우아하고 예의바른 춤이다. 고전발레에서 파드 되를 출 때 발레리나가 돋보이게 서포트를 해주는 발레리노의 태도 역시 예절이 들어간 것이다. 커튼콜 때 발레리나가 화려한 레베랑스를 하면 발레리노는 뒤에서 묵묵히 고개만 숙이는 정도로 발레리나가 대중들의 환호와 갈채를 받게 해주는 것 역시 예절이 들어간 것이다. 일반 발레클래스에서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과 학생들이 서로에게 예의를 갖추어 레베랑스를 하는 것도 "원래 발레는 예절을 익히기 위해 배웠던 춤"이라는 역사와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발레학원에 일진놀이를 하러 오는 여자들이 있다. 어디를 가나 이런 여왕벌들이 있기는 하지. 몇년전에 우리 학원에서도 그렇게 일진놀이를 하는 여자들이 있었다. 그 여왕벌들로 인해 평화로웠던 발레클래스는 난장판이 되었고, 회원들간에 균열이 생겼다.
인상이 순하게 생긴 나는 금세 그 일진무리들의 타켓이 되었다.
몇몇 회원분들은 상처를 받고 학원을 떠났다. 내가 좋아했던 언니 역시 상처를 받고 다른 학원으로 옮겼다. 회원들간의 갈등을 보면서 어찌해야 할 줄 모른채 마음만 아파하면서 그저 지켜만 보았다.
나는 버텼다. 그 일진무리들이 원하는 걸 절대로 해주지 않았다.
'기싸움에서 절대로 밀리면 안돼.'
몇달전에 어느 취미발레 까페에서 어떤 회원분이 학원내의 일진무리들로 인해 학원을 어쩔 수 없이 떠났다는 게시글을 올리셨다. 내가 댓글을 달았다. "발레는 원래 예의바른 춤이에요. 그런 사람들 때문에 발레를 그만두지 마요."
"언니, 저는 발레할 때 예쁜 척. 우아한 척 하는 게 너무 싫어요."라고 말한 취미발레인 역시 발레를 겉모습만 본 것이다. 학원에 일진놀이를 하러 발레를 배우러 오는 여자들은 과연 발레가 예절을 익히기 위해 배웠던 춤에서 출발한 춤이었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까.
각자 다양한 이유로 발레를 배우겠다고 모이는 취미 발레클래스. 각기 다른 서사를 품고 다양한 이들이 모인 발레 클래스에서 아무리 취미여도 발레를 왜 배우는지에 대한 진지한 내면의 고찰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 내가 지나친 이상주의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