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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 서연 Sep 15. 2023

어쩌다 발레를 배우다...03

그만 탈춤을 추고 말았어요

새로 옮긴 발레 학원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학원이었다. 그래서 성인반 클래스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직 초급반만 있었다. 주 2회 수업을 받을지 또는 주 3회 수업을 받을지를 회원 본인이 결정한 후에 수강료를 결제한 다음 해당 요일에 수업을 받으러 오면 되는 거였다. 주 2회는 화목 반, 주 3회는 월수금 반으로 진행되었다. 나는 주 3회 수업을 받았다.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은 학원인데다 마침 다른 발레 학원에서 발레 수업을 조금이라도 받은 회원분들이 단 한 명도 없었기에 나는 엄청 안도감을 느꼈다. 내가 다른 학원에서 발레 수업을 받긴 했었으나 고작 한 달이었기 때문에 나 역시 그냥 생초보였다.


수업을 진행하시는 원장님은 매우 젊고 활기가 넘치셨다. 게다가 본인이 수업을 진행하셨기 때문에 동작을 한 개라도 수강생들에게 더 알려주려고 노력을 하셨다. 매우 많은 매트 스트레칭 동작과 정말 많은 바 동작을 진행하셨는데, 센터 동작들도 정말 많은 것을 알려주셨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초급반 수업에서는 이렇게 많은 동작들을 알려주시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을. 매우 열정적인 원장님 덕분에 우리는 초급반치고 많은 발레 동작들을 배우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원래는 80분 수업인데도, 수업이 끝나면 언제나 1시간 40분이 훌쩍 넘어가곤 했다. 매트 스트레칭만 거의 40분을 하는 듯 했고, 바 동작을 하는 시간도 그와 비슷했다. 그래서 바 동작이 끝날 즈음에는 언제나 유체 이탈을 경험하는 듯 했다.


바 동작이 끝난 후 발레 바를 무용실 한 쪽으로 치우고 나면 발레 수업 중에서 가장 두렵고(?) 떨리는 그 순간이 찾아왔다. 바로 센터 수업이었다. 안 그래도 바 동작이 끝날 즈음에는 언제나 유체 이탈을 한 듯했기 때문에 센터 시간에는 그야말로 내 정신과 몸이 따로 놀았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센터 수업은 원장님이 동작을 보여주시는 순간들만 좋았다.(?) 같은 여자가 봐도 너무 멋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할 차례가 오면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원장님이 보여주신 발랑세 스텝(왈츠 스텝)은 매우 활기가 넘쳤고, 정말 예뻤다.

 https://naver.me/GnvqUHfX


나는 폴드브라와 다리, 그리고 시선이 따로 놀았다. 원장님이 “발랑세는 쿵짝짝 쿵짝짝, 강약약 스텝이에요. 여러분 플렉스 절대로 안 되요. 처음 나가는 동작에서 발끝 포인을 꼭 지켜주시고 악센트를 주세요.”라고 설명해주셨으나 내 몸은 언제나 처음 나가는 동작에서 나도 모르게 플렉스를 하고 있었고, 처음 나갔던 다리는 금세 무겁게 무용실 바닥을 딛고 있었다.


분명 원장님이 발랑세 스텝을 시연해 주실 때에는 폴드브라도 참 예뻤는데, 내가 발랑세 동작을 할 때에는 그 느낌이 안 났다. 같은 동작 vs 다른 느낌이었다. 뭐지? 왈츠 동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탈춤을 추는 것 같은 이 느낌적인 느낌은? 나는 분명히 원장님이 시연해주신 것을 보고 따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내가 하는 모습을 거울로 슬쩍 보면 무엇이 문제인지는 몰라도 확실히 폴드브라가 엉성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코어와 다리가 후들거렸다.


오직 어느 회원분 한 분만이 제대로 하고 있었다. 분명 발레는 처음 배우는 거라고 하셨는데, 그 분이 너무 잘하셔서 눈길이 자꾸만 갔다. 알고보니 발레는 처음 배우는 것이었지만 이전에 다른 운동들을 많이 했었다고 한다. 확실히 운동신경이 좋아보였고 그간의 운동 경력 때문인지 근육도 신체에 멋지게 자리잡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 회원분은 눈썰미가 남다르게 좋았다. 그래서 원장님이 동작을 시연해 주실 때에 그 동작의 중요 포인트(폴드브라 포지션과 시선과 하체의 조화)들을 전부 다 눈으로 스캔하듯이 찍고 그대로 따라하셨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무용도 미술 못지않게 눈썰미가 좋아야 한다는 것을.


매 수업시간마다 발랑세 동작을 배우면서 그때마다 원장님이 보여주시는 시연과 설명들을 꼼꼼히 들었다. 내가 했던 발랑세가 탈춤처럼 보였던 이유는 흔들리는 코어와 후들거리는 다리 때문이기도 했지만 확실히 엉성하게 따라했던 폴드브라와 거울만 보려고 하는 내 시선 때문이었다. 원장님은 발랑세 스텝을 하실 때에 폴드브라를 분명히 손등으로 올려서(이때 손끝따라 시선도 같이) 사선에서 팔꿈치의 관절을 사용해 돌리면서 팔의 전체적인 동작을 곡선이 이루도록 만드셨다. 나는 처음부터 손바닥으로 올라왔고 결론은 발랑세 스텝을 밟으면서 손바닥으로 올린 팔을 오른팔, 왼팔 번갈아가며 흔들고 있었던 거였다.


알고보니 손바닥으로 팔이 올라오는 동작은 한국무용에서 사용하는 동작이었다. 발레에서는 반드시 손등으로 올라오는 폴드브라를 사용해야한다. 발랑세 스텝을 밟을 때에 처음 나가는 하체 동작과 동시에 폴드브라와 시선의 조화는 점점 좋아졌다. 발레를 배운지 몇 년차가 된 지금도 러시아 무용수들의 발랑세 스텝처럼 상체의 동작을 크게 하다못해 관객들에게 내 등을 다 보여주듯이 과장되게(그렇게 해야 발랑세 동작이 예쁘다) 움직이는 발랑세 동작은 못하지만 그래도 제법 처음 나가는 동작에 발끝 포인은 기본으로 악센트를 주면서 폴드브라와 시선처리를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     

https://naver.me/5K5hdR6L

이 영상에서 48초부터 '발랑세 스텝(왈츠 스텝)'이 나온다.

영상에 나오는 첫 동작은 '마주르카 스텝'이다.


발랑세 스텝은 셈여림이 '쿵짝짝 = 강약약'으로 처음 나가는 동작에 악센트를 주고,

마주르카 스텝은 셈여림이 '짝쿵짝 = 약강약'으로 두번째 나가는 동작에 악센트를 준다.


발랑세 동작은 초급반 레벨부터 배우는 동작이지만 예쁘게 하기 힘든 동작이고,

마주르카 스텝은 보기와는 다르게 어려운 스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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