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뒤에 나는 그 학원에 재방문했다. 다행히도 학원문은 열려있었다. 학원 수업스케줄과 수업레벨을 상담받은 후 학원비를 결제했다. 무슨 옷을 입고 해야하는지도 여쭤보았다. 요가복을 입고 해도 상관은 없으나 발레가 좀 더 익숙해지면 기왕이면 발레복을 구입해서 입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해서 나는 다른 학원으로 옮겨 발레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학원 유리창에 그려진(?) 발레리나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아라베스크' 동작을 하고 있는 발레리나 그림이었는데, '나도 한 달 정도 지나면 저런 동작이 나오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막연한 기대심에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물론 일주일 뒤에 그 환상이 깨졌지만 말이다. 일주일 뒤에 현실을 수용하게 될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될지는 꿈에도 모른채 나는 새로 등록한 학원에 열심히 출석하기 시작했다.
기존에 다녔던 학원에서도 매트 스트레칭이 매우 힘들었었는데, 새로 등록한 학원은 더 힘들었다. 매우 긴 시간동안 모든 동작들을(?) 매트 위에서 아주 역동적으로 진행하셨다. 저질 체력이었던 나는 매트 동작을 하는 것만으로도 기가 빨리는 듯 했다. 매우 활달하고 외향적인 성격의 원장님은 바동작도 매우 길게 하셨다. 매트 위에서는 왜 그런 스트레칭을 하는 것인지, 또 바동작에서는 왜 그 순서대로 발레 동작들을 배웠는지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정신없이 따라하기만 했다.
나중에서야 운동을 잘 하시는 분들은 그 원리를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있었고 따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장님이 매트 동작 중에 기립근 강화 운동과 크런치, 플랭크 동작들을 많이 시키셨는데, 그게 다 발레의 기본동작을 배울 때에 중요하게 쓰일 근육을 강화시키기 위해 진행하신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또 바동작 중에서 아라베스크 - 팡쉐 - 에튀튀드를 순서대로 알려주셨는데, 바동작에도 먼저 배워야 할 동작이 있고 그 동작을 응용해서 나중에 배워야 할 동작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비록 힘들었으나 수업시간이 매우 역동적이고 활기차서 그 재미로 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학원 창문에 그려진 '아라베스크' 동작처럼 그 라인이 나오려면 DNA를 바꿔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도 말이다. 그냥 있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현실을 수용하고 나니 그 라인이 안 나오더라도 발레가 재미있어졌다.
볼쇼이 수석 무용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
발레는 재미있었으나 짧은 햄스트링으로 인해 일자다리 스트레칭이 안 되는 것이 큰 고민이었다. 집에서도 일자다리 스트레칭을 하면 근육이 늘어난다고 해서 근육이 찢어질 것만 같은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집에서도 열심히 스트레칭을 했다. 앞뒤 일자다리 스트레칭과 양 옆의 사이드스트레칭을 매일같이 생각날 때마다 가능한한 더 많이 시간을 투자해서 근육을 늘릴려고 노력을 했다.
일자다리 스트레칭 (프론트 스플릿)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의 사이드스트레칭 (사이드 스플릿)
마리아 호레바의 사이드 스플릿
그러다가 허벅지 뒷 근육에 엄청난 통증이 왔다. 살펴보니 내 허벅지 뒷근육에 피멍이 들었다. 하필이면 허벅지 뒷근육이라니...정형외과에 가서 의사선생님께 보여주기에도 민망한 곳이었다. 또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도 고민이었다. 보통은 운동을 하다가 다쳤다면 무릎이나 허리일텐데 일반적으로 허벅지 뒷근육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부위일테니 말이다. 하지만 통증이 너무 심해서 어쩔 수 없이 정형외과에 갔다.
그리고 결국에 나는 의사 선생님께 실토를 하고 말았다. 의사 선생님은 어이없어하면서 꾸중을 하셨다. 그렇게 나는 오전에는 발레 학원에서 발레를 배우고, 오후에는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매일같이 처방받은 약을 챙겨먹었다. 통증은 꽤 오래갔다.
그런데 통증부위가 낫기 시작하더니 반전이 있었다. 짧았던 내 햄스트링이 통증이 다 나음과 동시에 믿을 수 없을만큼 유연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나 안 되고 뻣뻣했던 내 다리의 근육이 유연해지면서 그토록 간절하게 원했던 일자다리 스트레칭이 어느새 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