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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 서연 Oct 10. 2023

죽음과 광기를 그린 드라마

드라마 발레의 대작 <마이얼링>

1889년 1월 30일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이얼링‘이라는 사냥터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황태자 루돌프가 그의 연인 마리 베체라와 시신으로 발견이 된 것이다. 동반 자살로 결론은 내렸지만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다만 왕가의 일이라 황태자는 심장마비로 숨진 것으로 발표했고, 함께 숨진 17세 소녀 마리는 비밀리에 매장되었다. 유럽의 아름다운 왕비로도 유명한 황후 엘리자베트의 아들 루들프 황태자의 비극적인 이야기. 도대체 합스부르크 왕가에 무슨 일들이 벌어졌던 걸까?     


시시(SiSi)라는 애칭으로도 유명한 황후 엘리자베트는 사진으로도, 초상화로도, 오늘날에 보아도 매우 아름답다. 프란츠 황제가 첫 눈에 반해 그녀와 결혼했지만 황후로서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황태자 루돌프를 낳았으나 이모이기도 한 시어머니가 양육권을 가져가면서 억지로 둘 사이를 떼어놓았다. 그러니 모자지간에 살가운 정이 없었다고 한다. 루돌프는 자라면서 점점 아버지와 반목을 한다. 아버지인 프란츠 황제는 벨기에의 스테파니 공주와 정략 결혼을 시킨다. 이 결혼에 마음이 없었던 루돌프 황태자는 정신적으로 방황을 한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지 못했던 루돌프 황태자는 마리 베라라는 어린 소녀를 만나고 사랑에 빠진다. 사랑에 빠진 두 연인은 왕궁의 사냥터인 ’마이얼링‘이라는 곳에서 동반 자살을 한다. 이후 시시 황후는 아들에게 살가운 정 한 번 주지 못했던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검은 상복만을 입으며 거의 경호원들과 시녀들도 대동하지 않은 채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여행을 한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그녀의 여행에 대한 결과는 결국 스위스 무정부주의자에 의한 암살이었다.          

황후 엘리자베트


유럽 제일의 가문으로 몇 백년에 걸쳐 거대한 제국을 이루며 유럽을 호령했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비극. 예술 창작자들은 이렇게 매력적인 소재를 놓칠 수가 없었는지 20세기 초반부터 지금까지 영화, 드라마, 뮤지컬로 수없이 만들다. 세기의 요정 오드리 헵번도 남편 멜 페러와 함께 NBC TV 드라마 <마이얼링, 1957>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황후 엘리자베트>아름다운 외모로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아 황후가 되었지만 순탄치 않은 왕실 생활을 그린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시시의 이야기나 루돌프 황태자의 비극적인 사랑은 작품으로 만들어질 때마다 큰 인기를 끈다. 그만큼 시시의 아름다운 외모에 가려진 비극적인 일련의 사건들과 최후, 루돌프 황태자의 자살로 얼룩진 왕실의 비극과 충격적인 실화에 궁금해하고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에 매력을 느꼈던 영국의 한 안무가가 있었다. 바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가장 비극적으로 그린 비극의 대가 케네스 맥밀란이다.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역사적 소재를 영화나 드라마도 아니고  발레 작품으로 만들 생각을 다 하셨는지...이 작품을 만든 케네스 맥밀란은 어떤 분이실까.

영국의 안무가이자 드라마 발레의 대가 케네스 맥밀란.인상부터가 범상치 않게 생기셨다.


존 크랑코의 권유를 받고 안무가의 길에 들어선 맥밀란은 유난히 어둡고 암울하면서 에로틱한 장면들은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작품들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오네긴>, <카멜리아 레이디>, <안나 카레니나> 등의 드라마 발레를 몇 편 봐왔지만 케네스 맥밀란의 드라마 발레는 그 동안에 내가 봐왔던 드라마 발레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발레 작품이었다. 아무리 격정적인 드라마 발레라도 발레 무용수들의 춤선과 동작에서 아름다움을 살리는데, 맥밀란은 발레가 아름답고 예쁘기를 원하지 않았던 듯 하다.      


맥밀란은 고증을 통해 루돌프 황태자의 비극과 광기, 그리고 죽음에 초점을 맞췄다. 황태자의 극심한 여성 편력과 해골과 총기를 소중히 하면서 죽음에 집착하는 모습, 스테파니 공주와의 행복하지 않은 결혼 생활, 스테파니 공주를 대하는 황태자의 가학적인 행동들, 마약에 탐닉하면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병들어가는 모습, 연인 마리 베체라와의 노골적인 에로틱 등 맥밀란은 작품이 되도록 본능적이고, 가급적 노골적이고, 광기가 서려있기까지 한 발레 작품으로 만들었다.     


발레 작품에도 등급이 있다. <호두까기 인형>, <잠자는 숲속의 미녀>처럼 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 감상할 수 있는 발레 작품들이 있는가 하면 <오네긴>이나 <카멜리아 레이디>부터는 관람 연령이 높아진다. 특히나 <마이얼링>처럼 노골적인 에로틱과 마약에 탐닉하는 모습과 동반 자살을 하는 등 인간으로서 가장 어두운 내면과 죽음과 광기를 그린 작품은 10대 청소년들이 받아들이기에 너무 버겁다. 서양에서는 이 작품을 12세 이상 관람으로 등급을 정했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는 19세 이상 어른용 발레 작품이다. 성인들 중에서도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마이얼링>

배경 및 소재 : 1889년 1월 30일에 합스부르크 왕가의 사냥터인 ’마이얼링‘에서 황태자 루돌프와 그의 연인 마리 베제라가 동반 자살한 충격적인 실화

안무 : 케네스 맥밀란

음악 : 프란츠 리스트

초절기교 12번(눈보라), 메피스토 왈츠, 파우스트 교향곡, 순례의 해 등

편곡 : 존 란치베리

초연 : 1978년

등장 인물 : 루돌프 황태자(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황태자로 부모와의 사이가 원만하지 못하고 여성 편력이 심하며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한다. 광기가 서릴 정도로 해골과 총기를 애지중지하면서 죽음에 집착한다),

마리 베제라(황태자의 마지막 애인으로 당돌한 매력으로 루돌프 황태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라리쉬 백작 부인(루돌프의 이전 애인으로 마리 베제라를 황태자에게 소개시킨다)

황후 엘리자베트(황태자의 어머니. 시어머니에게서 루돌프의 양육권을 빼앗긴 후 루돌프에게 무관심하다. 남편인 프란츠 황제와도 애정이 없다.)

스테파니 공주 : 벨기에의 공주로 루돌프 황태자와 정략 결혼을 한다. 결혼 생활도 불행했지만 이 비극적인 사건이 터진 후의 공주의 삶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프롤로그

이미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진 후 마리의 시신을 몰래 매장을 한다.

    

1

루돌프 황태자와 스테파니의 결혼식이 열린다. 그러나 품행이 단정치 못한 황태자의 모습에 황제와 황후는 냉랭하다. 황태자가 어머니를 찾아가 자신을 이해해달라고 애걸하지만 황후는 아들을 냉정하게 대한다. 방으로 돌아온 황태자는 결혼 초야부터 스테파니 공주에게 해골을 보여주고 총기로 위협하는 등 가학적인 행동을 한다.

루들프 황태자와 스테파니 공주의 결혼식
황태자와 스테파니 공주의 ’침실 파드 되‘이다. 결혼 초야부터 황태자는 스테파니 공주에게 가학적인 행동을 한다.


2

황태자의 행동은 더욱 방만해져간다. 그런 황태자를 정부 세력은 스파이를 심어 감시한다. 라리쉬 백작부인은 황태자에게 마리를 소개시킨다. 황태자는 마리를 자신의 방으로 불러들인다. 마리는 해골은 물론 총도 무서워하지 않는 등 당돌한 매력으로 황태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때 황태자와 마리가 추는 파드 되는 노골적인 에로틱을 묘사한 춤이다.

퇴폐적인 장소에 들락거리는 황태자정부 관계자가 스파이를 심어 황태자의 행동을 감시한다.
도발적인 매력으로 황태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마리와 루돌프의 파드 되.

매우 힘든 리프트인데 리프트가 아닌 것처럼 위에서 아래로 타고 내려오는 듯한 리프트가 꽤 나온다. <스파르타쿠스> 못지 않게 <마이얼링>에 나오는 리프트도 곡예단 수준이다.



3

황제와 귀족들의 사냥터에서 루돌프가 쏜 총으로 사람 한 명이 죽으면서 황제와 루돌프의 사이는 더욱 멀어진다. 좌절에 빠진 루돌프를 라리쉬 백작 부인이 찾아와 위로해 준다. 이를 본 황후는 라리쉬 백작부인이 아들에게 안 좋은 물을 들이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백작부인을 위협하면서 공격한다. 이에 백작부인이 소스라치게 놀라 위압감을 느끼면서 뒷걸음질 치는 장면이 압권이다. 루돌프는 마리를 별장으로 불러들인다. 루돌프는 마리와 격정적인 사랑을 나눈 후 마리를 총으로 쏘고 자신에게도 총을 쏘면서 자살로 생을 마친다.

황태자 루돌프와 마리의 마지막 파드 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사랑 하나에 매달리는 두 사람.


케네스 맥밀란이 이 작품의 음악으로 리스트의 곡들을 사용함으로써 드라마틱한 소재의 내용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었다. 유약한 황태자의 정신적인 고통과 황태자비와의 가학적인 2인무, 해골에 집착하는 모습,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바닥을 뒹구는 모습, 연인 마리와 격정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파드되 등 드라마의 비극적인 내용을 리스트의 음악이 더욱 극단적으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황태자와 스테파니 공주의 '침실 파드 되'

https://naver.me/xiwvNK99


황태자와 마리의 격정적인 파드 되

https://naver.me/G6fDO8lv


스타니슬라프스키 발레단이 제작한 <마이얼링>

https://naver.me/IDoBtqWP

전막 공연 <마이얼링> 영상물은 스타니슬라프 발레단에서 제작한 것이다. 영상 속 발레리노는 한때 로열발레단 수석 무용수로 천재 발레리노라고 불리웠던 세르게이 폴루닌이다. 폴루닌의 어린 시절의 가정 환경이 많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받았던 마음의 상처들이 켜켜이 쌓여 결국엔 누적되었던 게 터지면서 일탈과 방황으로 이어졌다. 신체의 아름다움과 품위를 지켜야 하는 발레 무용수로서는 좀처럼 하지 않는 문신을 새기는가 하면 매번 폭탄 발언을 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결국 로열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자리를 박차고 나왔고 그 이후에도 폴루닌의 폭주는 계속 이어졌다. 스타니슬라프스키의 예술감독이 과거 폴루닌과의 인연으로 인해 방황하고 있는 폴루닌을 불러들여 <마이얼링>에서 황태자 역을 맡겼다. 그래서일까. 루돌프 황태자의 복잡한 정신세계와 죽음에 대한 집착과 광기를 너무나도 잘 표현했다.     


이 작품을 만든 안무가 케네스 맥밀란은 행정일까지 해야하는 로열 발레단의 예술감독의 짐을 버거워했다고 한다. <마이얼링>을 만들면서 루돌프 황태자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 왕관의 무게를 자신과 동일시했다고 한다. 맥밀란은 발레에서의 표현의 수위를 높였고, 드라마 발레의 또다른 지평을 높힌 공헌으로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1992년 10월 29일에도 코벤트가든에서 맥밀란의 <마이얼링>이 공연되고 있었다. 그 날 맥밀란은 무대 뒤에서 자신의 작품이 공연되는 것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공연이 끝난 후 예술 감독이 관객들에게 발표를 했다. 공연을 지켜보고 있던 맥밀란이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타계를 했다고. 그 날 공연을 관람했던 관객들은 공연이 끝나자마자 조문객이 되었다.     


역사와 문학, 인간의 내밀한 심리에 파고들었던 안무가 케네스 맥밀란. 맥밀란이 창조한 작품 속에서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는지 생각해본다. 부모와의 불안정 애착, 끝없는 방황, 애정없는 결혼, 비극적인 사랑은 유럽의 왕가에서만 일어났던 일이 아니다. 인간이 사는 세상에는 언제나 이러한 비극이 있다. 그것을 극복하고 사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어느 정도는 개인의 역량에 달려 있는 것 같다.     


이 작품을 감상하고 나서 스테파니 공주의 그 이후 인생이 궁금하여 검색을 해 본 적이 있다. 마이얼링 사건 이후 프란츠 황제가 며느리가 가엾어서 하급 귀족과 결혼을 하려고 하는 며느리의 재혼을 허락해줬다고 한다. 하지만 친정 아버지인 벨기에 국왕은 노발대발 격노했고, 결국엔 친정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죽을 때까지 불행의 연속이었던 공주의 삶이 참 가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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