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양미 삼백석을 바치면 아버지가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청나라 뱃사람들에게 쌀 삼백석을 받고 자신은 바다의 제물이 된 심청이. 서양에는 없는, 부모를 위해 자식이 도리로서 헌신하는 동양의 ’효‘사상에 감동을 받은 미국인들이 있었다. 한국의 옛날 이야기에 감동을 받은 미국인들은 바로 유니버설 발레단의 초대 스태프들로 이들은 한국의 고전 ’심청‘을 주제로 한 발레 작품을 만들기로 한다.
이렇게 해서 유니버설 발레단의 초대 예술감독이던 에드리언 댈러스가 초연 안무를 만들었고 미국인 음악가 케빈 바버 픽카드가 작곡을 했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실비아 탈슨이 첫 의상 디자인을 담당했고 대본은 문화 예술 평론가 박용구가 썼으며 무대 예술은 한국인들이 맡았다. 이후 발레 심청은 유니버설 발레단의 예술 감독들의 손을 거치면서 계속 수정, 보완 등의 개정을 해나갔다. 최근에는 기존의 3막이었던 작품을 무대 전환 기술을 보완하여 안무, 연출은 그대로이면서 러닝타임을 줄여 2막 구성으로 작품을 업그레이드 했다.
1막부터 극적인 전개에 몰입도가 높다. 드라마 발레를 보는 것처럼 발레 무용수들의 발레 마임과 감정 연기신이 매우 섬세하다. 특히 한국적인 선율을 살린 음악이 정경 묘사와 함께 인물들의 난이도 높은 인생 스토리를 절절하게 표현해 서양의 발레로 표현하는 한국의 정서를 오묘하게 조화시켰다. 무엇보다도 심청의 감정연기와 춤은 그 경계가 모호할 정도로 뛰어난 연기력과 춤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공양미 3백석을 스님에게 시주한 심청이는 아버지와 헤어져 청나라 뱃사람들에게 끌려간다. 이때 보여주는 선원들의 박진감 넘치는 군무는 감상자의 눈을 사로잡을 정도로 매우 역동적이다. 남성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선원들의 군무는 정말 마초같아서 뱃사람이 아니라 해적인가 생각이 들 정도이다.
드디어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에 빠진 심청. 디지털 스크린으로 인당수에 빠진 심청의 모습을 투사하는 장면은 아름답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작품과 안무, 의상 등은 잘 만들었는데, 무대 예술이 아쉬운 발레 작품이다. 초연 당시에는 무대 배경을 어떻게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 개정 안무에는 무대 장치와 디지털 스크린의 조합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조화롭지 않았고 너무 평면적이어서 극적인 사실성이 떨어진다.
서양의 고전 발레 작품들 중에서 몇몇 작품들은 ’기분전환‘을 뜻하는 디베르티스망이 오히려 지루한 경우가 있는데, 발레 <심청>은 디베르티스망도 아름답고 재미있다. 진주, 인어, 물고기들이 추는 디베르티스망은 바다의 잔잔한 물결에 흔들리는 요정들의 살랑거리는 움직임을 신비롭게 표현했고, 목관악기와 현악기로 넘실거리는 바다와 다채롭고 화려한 용궁을 묘사한다.
2막에서 보여주는 심청과 왕의 ’달빛 파드 되‘는 정말 아름답다. 파드 되에서 심청이 보여주는 씨손느와 피쉬다이브, 아라베스크, 백 컴브레, 리프트 등의 발레 테크닉은 한복의 선의 아름다움과 달빛 아래의 낭만이 하나가 되어 깊어가는 서로의 사랑을 환상적으로 연출한다. 이어지는 궁중 무용과 탈춤은 그야말로 각각 토슈즈와 캐릭터 슈즈를 신은 한국 무용이다. 발레 무용수들이 표현하는 한국의 어깨춤과 발레와는 정반대로 표현하는 팔의 움직임과 발동작(디딤새)은 섬세하고 한국 고유의 춤선을 오롯이 느낄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