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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 서연 Oct 11. 2023

놀라워라, 영국 발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이라는 필명으로 찰스 럿위지 도지슨이 지은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빅토리아 시대를 풍자한 동화이다. 책 속에 나오는 흰 토끼, 공작부인, 모자장수, 여왕, 트럼프 병사, 체셔 고양이 등은 모두 토끼굴로 떨어진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를 모험을 하면서 만나는 인물들이다. 루이스 캐럴은 주인공 앨리스를 통해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와 인간의 모순을 풍자하고 있다. 인간이 집단을 이루고 사는 사회에는 적용이 되는 부분들이 상당히 많아서 오늘날의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에도 적용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우리가 동화책인 줄 알았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어린이가 아닌 어른이 읽어야 할 책이다.

루이스 캐럴


가족들과 함께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앨리스는 재미있는 일을 찾기 시작한다. 마침 회중시계를 든 토끼가 앨리스 옆을 달려가는 것을 본 앨리스는 토끼를 따라가다가 그만 토끼굴에 떨어지고 만다. 이상한 나라에서 앨리스는 케이크를 주워 먹고 키가 커지기도 하고 갑자기 키가 작아지기도 하고 자신이 흘린 눈물로 눈물 웅덩이가 된 곳을 헤엄치기도 한다. 뭍으로 올라온 앨리스는 젖은 옷을 말리기 위해 동물들과 뛰기도 한다. 쥐가 앨리스에게 “길고 슬픈 이야기(tale)야”라고 말하자 앨리스는 쥐에게 “정말 꼬리(tail)가 굉장히 길구나. 그런데 꼬리가 왜 슬프다고 하니?”라고 하는 등 동화 내용에 언어적 유희도 상당히 많이 나온다. 거칠고 과격한 공작 부인을 만나기도 하고 버섯을 먹고 목이 길어지기도 하고 언제나 웃는 얼굴로 갑자기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체셔 고양이도 만난다. 삼월토끼와 도마우스(다람쥐와 비슷한 동물)와 모자 장수가 티타임을 가지고 있었지만 앨리스는 그렇게 마시고 싶은 차를 얻어 마시지 못하기도 하고 여왕의 정원에 들어가서 장미를 빨갛게 칠하고 있는 병사들을 만나기도 한다. 하트잭의 시중을 받으며 하트 왕과 함께 나타난 하트 여왕은 홍학으로 크로켓 경기를 하기도 하고 “저 놈의 목을 치라”는 말을 자주 한다. 가짜 거북이의 바닷속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하고 하트 여왕이 하트 잭이 파이를 훔쳤다고 연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재판에 대한 앨리스의 솔직한 발언에 하트 여왕은 불같이 화를 내면서 앨리스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다. 카드 병사들이 앨리스를 공격하는 순간 앨리스는 “누가 무서워할 줄 알아? 너희들은 카드 묶음에 불과해!”하고 말한다. 이때 카드들이 모두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언니가 앨리스를 깨운다. 앨리스는 얼굴에 묻은 나뭇잎을 떨어내며 잠에서 깨어난다.      


어릴 때부터 엄친아였던 루이스 캐럴은 수학에 큰 재능을 보여 옥스퍼드대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모교에서 수학을 가르쳤던 루이스 캐럴은 학과장의 가족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그 집안의 딸들에게 즉석에서 앨리스가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를 지어서 들려준다.(학과장의 둘째 딸 이름이 앨리스이다.) 이 이야기를 토대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지었고 출간 후 영국 사회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실존 인물이었던 앨리스. 가장 왼쪽에 있는 소녀가 앨리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출간되자마자 입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책이 날개돋힌 듯 팔려 품절 상태가 되었고 곧 외국어로도 번역이 되어 해외로 수출하기까지 했다. 영국의 풍속화가 조지 레슬리 던롭은 1871년에 출간된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엄마가 어린 딸에게 읽어주는 영국 가정의 모습을 그림으로 묘사하여 1879년에 발표했다. 화가가 그림으로 남길 만큼 영국 사회에서 이 소설이 얼마나 많은 인기를 끌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조지 레슬리 던롭, Alice in the Wonderland, 1879


이렇게 언어의 유희와 독특한 상상력으로 가득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도 인기가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이 책이 어린이용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수많은 학자들도 다양한 각도로 이 책을 연구해 숨은 의미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알고 보면 책 속에 숨은 의미가 많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가장 설득력이 있는 해석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빅토리아 시대를 풍자한 책이라는 점이다. 주인공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에서 이상한 캐릭터들을 만나면서 이상한 모험을 한다. 그런데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서 만난 캐릭터들이 당시 영국 사회에서 큰 이슈가 되었거나 모순 투성이인 인물들을 상징하고 있었다. 즉 루이스 캐럴은 어린 소녀 앨리스를 통해 당시 영국 문화와 사회, 인간의 모순을 풍자하고 비판하고 싶었던 것이다. 책 속에 나오는 모자 장수는 작가가 살았던 빅토리아 시대의 큰 사회적 문제 중의 하나로 수은 중독이 영국 사회의 큰 이슈였다.      


빅토리아 시대는 매우 엄격했던 시대로 가정 내의 예의범절을 중시하고 남녀가 유별했던 사회였다. 중산층 이상의 집안에서 태어난 여자들은 집안의 남자가 동행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혼자 외출하지 않는 것이 빅토리아 시대의 풍습이다. 이 시대를 배경으로 만든 BBC 드라마 <오만과 편견>이나 넷플릭스 드라마 <브리저튼>을 보면 빅토리아 시대의 풍습이 자세히 나와있어서 이해가 쉽다. 따라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출간됐던 당시 영국 사회는 여자아이들은 집안에서 지내면서 가정교사에게 시집을 잘 가기 위한 예의 범절과 교양 등을 학습했다. 집안에서 갇혀 지내던 여자아이들은 시집갈 나이가 되어서야 집안의 남자와 동행하여 남편감을 고르기 위해 무도회에 데뷔했다. 주인공 앨리스가 여자아이인데도 혼자 이상한 나라의 모험을 떠난다는 동화의 설정은 오늘날에는 별다를 게 없지만 당시 영국 사회에서는 매우 충격적인 설정이었던 것이다.     


작가는 또 책 속에서 공작부인, 하트 여왕, 카드 병사 등의 캐릭터들이 전개하는 이야기를 통해 당시의 영국 사회의 지배층을 은유적으로 풍자하고 있다. 성격이 거칠고 포악한 공작부인이 하트 여왕 앞에서는 유순해진다. 권력을 휘두르면서 뭐든지 마음대로 하는 하트 여왕은 툭 하면 신하들 목을 자르고 말도 안 되는 일을 시킨다. 그리고 하트 왕은 그저 유약할 뿐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인물들을 풍자했지만 오늘날에도 통한다고 생각한다. 원래 인간은 모순적인 존재이다.     


하지만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서 모험을 하는 이야기를 동화적으로 받아들인 예술 창작자들이 있다. 사실 루이스 캐럴의 상상력은 기이하면서도 매력적이다. 여기에 매력을 느낀 예술 창작자들은 이 소설을 토대로 풍자는 각색하고 동화적인 요소들을 부각시켜 애니메이션과 영화, 뮤지컬로 다양하게 만들었다.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영화 감독 팀 버튼이 독특한 소설에 영감을 받고 더 기이하게 만든 판타지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그렇다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발레로 보면 어떨까? 로열 발레단의 스태프들은 토끼를 따라 굴 속으로 떨어진 앨리스가 온갖 신기한 모험을 하면서 겪는 이상한 일들을 영화 같은 무대 장치와 스토리텔링과 결합한 음악, 연극의 판토마임, 캐릭터의 개성을 살린 발레 의상으로 영국의 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 감상할 수 있는 톡톡 튀고 기발한 발레 작품으로 만들었다. 2011년에 초연한 발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영국에서 인기가 많은 발레 작품으로 로열 발레단의 자부심과 <이상한 나라 앨리스>에 대한 영국인들이 사랑이 느껴진다.

앨리스와 흰 토끼


로열 발레단의 상임 안무가 크리스토퍼 휠든은 상상력이 정말 끝이 없다. 그가 기획하고 만든 로열 발레단의 창작 발레들은 기발한 아이디어로 가득찬 창의적인 작품들이다. 로열 발레단 예술감독은 영상 예술로만 가능할 것 같은 시각적인 효과를 무대 예술로 표현이 되도록 추진력있게 지휘했다.


로열 발레단에서 음악을 담당하고 있는 조 탈보트도 음색과 음향, 악기로 이야기 전개를 묘사하고 인물들의 심리나 행동을 표현하는 스토리텔링의 대가이다. 특히 마림바와 실로폰을 사용해 판타지 작품을 더욱 몽환적인 분위기로 만들었으며 각 캐릭터마다 악기와 리듬, 연주기법을 달리 해 인물의 특징과 개성을 뚜렷하게 표현했다. 엄마 또는 하트 여왕(1인 2역)이 등장할 때마다 현악기가 긴장감이 도는 리듬으로 뾰족뾰족하게 연주를 하고, 앨리스가 춤을 출 때에는 현악기와 하프가 살랑거리면서 연주를 한다. 극 중에서 서로에게 마음이 있는 앨리스와 잭이 파드 되를 출 때에는 둘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처럼 악기소리가 다채롭고 낭만적이다.     


각 캐릭터들을 맡은 무용수들의 춤은 전세계 어느 발레단보다도 경계가 불분명한 발레를 춘다. 모자 장수와 도마우스, 삼월토끼는 탭댄스를 추는가 하면 오리엔탈의 느낌이 나는 인도춤이 나오고 고슴도치와 카드병사, 홍학을 의인화한 캐릭터 댄스도 나오니 분명 고전 발레의 형식에서 가져온 ‘디베르티스망’인데도 연극과 뮤지컬, 다양한 댄스 스텝이 많이 혼합된 발레인 듯, 발레가 아닌 듯한 춤을 춘다. 고전발레의 디베르티스망이 아무리 캐릭터 댄스여도 발레의 기본을 다 지킨 반면 영국의 창작 발레에 나오는 디베르티스망은 형식을 차용하면서도 기본 틀을 깬 춤이라고 할 수 있다. 오직 이 작품에서 가장 발레처럼 추는 부분은 잭과 앨리스, 하트 잭과 앨리스의 파드 되이다.          

이 작품 중에서 가장 발레같은 춤을 추는 하트잭(또는 잭)과 앨리스의 '파드 되'


작곡가 스트라빈스키가 모리스 라벨의 음악을 가리켜 스위스의 시계 장인 같다고 했는데, 나는 영국 발레를 볼 때마다 스트라빈스키와 같은 생각을 한다. 거침없는 발상과 무한한 상상력, 뛰어난 스토리텔링 이면에는 아주 치밀하게 일하는 무대 스태프들과 의상 디자이너, 예술 감독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신체 예술로 표현하는 무용수들이 있다. 이러한 기발한 창작 발레를 추려면 영국의 무용수들은 상상력도 풍부해야 할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내가 본 로열 발레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영상물에서 가장 백미는 하트 여왕의 춤이었다. 그만큼 엄마&하트 여왕을 맡았던 발레리나 제나이다 야노프스키의 코믹이 섞인 살벌한 연기가 아주 강렬하고 임팩트 있었기 때문이다.

하트 여왕으로 나온 제나이다 야노프스키


다채로운 상상력과 풍자가 가득한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그러나 좀 더 동화적으로 해석해서 시각적인 무대 예술과 음악과 춤으로 스토리텔링한 로열 발레단의 발레 작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감상해 보는 것도 추천한다. 그만큼 기발하고 신나고 어메이징한 발레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트 여왕의 제나이다 야노프스키.

코믹 연기까지 잘하는 발레리나. 사실 반전이 있다.

분장을 세게 해서 그렇지 매우 아름다운 발레리나이다.

https://naver.me/xoYRA9em

https://naver.me/GJEXQ9ib

https://naver.me/xoYRA9Z7


이 작품 중에서 가장 발레 같은 하트잭과 앨리스의 파드 되.

폴드브라 움직임이 다채롭고, 복잡한 스텝이 특징이다.

https://naver.me/FNGQrp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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