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프랑스 출신의 시인 앙드레 브르통은 “미(美)란 혁신적인 것이거나 혹은 아름답기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20세기부터 예술은 급격하게 다변화되기 시작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미술사조가 매너리즘에 빠지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미술사조가 등장했던 미술사는 19세기 후반부터 파격과 실험으로 똘똘 뭉친 미술가들에 의해 다양한 사조가 우후죽순 자라나기 시작했다. 음악 역시 스트라빈스키와 같은 전위예술가가 등장하는가 하면, 쇤베르크처럼 조성 음악의 기본을 지키는 클래식 음악의 형식을 깨고 무조음악, 12음계를 고안한 실험적인 음악을 발표함으로써 20세기의 클래식 음악은 더욱 다채로워졌다.
무용에서도 벨레 뤼스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세대를 이어가며 끝없는 혁신이 진행되고 있다. 전위적인 안무가들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춤’ 그 자체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실험적으로 다양하게 탄생한 무용 언어들은 이제 그 경계를 나누는 것이 무의미하다. 무용 언어들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무용을 위한 음악도 다양해졌다. 발레를 위한 음악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애초부터 음악을 위해 작곡했던 곡들을 무용 음악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 8월에 국립 발레단에서 공연했던 <트리플 빌>에 사용된 곡들도 클래식의 거장 쇼팽, 바흐, 베토벤의 음악들이다. 이 중에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우베 숄츠가 안무한 <교향곡 7번>은 ‘베토벤 교향곡 7번'이 애초부터 발레 음악이었나 싶을 정도로 음악과 무용이 하나가 되고 있다. 한편 네덜란드 국립 발레단의 안무가 토에르 반 샤이크 역시 베토벤 교향곡 7번의 전 악장을 사용해 디오니소스 축제와 같은 발레 작품을 만들었다. 이전의 혁신적인 교향곡이었던 3번 '영웅', 5번 '운명'에 비해서 전통적인 형식을 지키며 작곡한 베토벤 교향곡 7번의 분위기가 춤곡을 연상시킬만큼 매우 활기차고 리드미컬해서 창조적인 안무가들에 의해 무용 음악으로 재창조되었다. 베토벤이 교향곡의 형식을 지키면서 작곡한 7번 교향곡이 전위적인 안무가들에 의해 혁신적인 무용 음악이 된 것이다.
베토벤 교향곡 7번 전 악장을 네오클래식발레 작품으로 안무한 우베 숄츠는 악보를 그대로 무용 언어로 만들었다. 남녀 주역 무용수와 코르 드 발레(군무)로 구성되어 있는 이 작품은 '2인 1조'가 하나의 음표가 되어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베토벤 음악에서 반복되는 모티프는 무용수들이 도미노 동작으로 보여주거나 동작에 악센트를 주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1악장 Poco sostenuto – Vivace에서는 코르 드 발레가 연주하는 거대한 서주 속에서 플루트가 새로운 선율을 제시할 때마다 여자 주역 무용수가 등장을 한다. 활기찬 1악장이 끝나고 장송 행진곡 풍의 2악장에서는 응축된 에너지의 춤을 보여주고 있다. 매우 역동적인 스케르초 악장에서는 코르 드 발레의 에너지가 증폭된 춤과 남녀 주역 무용수의 이완된 춤이 번갈아가며 나오면서 춤의 느낌을 대비시키고 있다. 4악장은 기계 체조가 섞인 발레 동작들이 많이 나온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오케스트라 반주에 무용수들은 기계처럼 규칙적인 동작들을 보여준다. 피날레에서는 오케스트라의 힘찬 연주에 에너지가 넘치는 회전을 한 후 아라베스크 동작으로 음악의 끝을 맺는다.
클래식 발레 테크닉에 현대 무용을 섞은 우베 숄츠의 <교향곡 7번>은 발레의 기본을 지키면서도 자유로운 폴드브라와 등을 구부리는 등 틀을 깬 안무가 매우 즐겁고 경쾌한 작품이다. 여자 무용수들의 레오타드와 남자 무용수들의 유니타드와 같은 매우 단순한 의상들은 무용수들이 연주하는 음악에 더욱 몰입감을 높여주었다. 베토벤 음악이 이렇게 춤 추기가 쉬운 음악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베토벤 교향곡을 '보는 음악'으로 창조한 작품이다.
네덜란드 국립 발레단의 안무가 토에르 반 샤이크는 <베토벤 교향곡 7번>을 '디오니소스 축제'로 해석을 했다. 디오니소스 축제가 처음에는 여자들만 참여했다가 점차 남자들도 참여한 것처럼 발레 작품에서도 발레리나들이 먼저 등장을 하고 춤을 춘다. 디오니소스 축제에 참여한 발레리나들은 그리스 복식같은 무용 의상을 입고 나와 포도주 항아리를 형상화한 폴드브라로 춤을 추면서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신을 경배하는 재전을 벌인다. 점차 음악이 도취되면서 발레리노들도 술의 신을 찬양하며 발레리나들과 함께 춤을 춘다.
2악장 allegretto에서는 어두운 음색 속에 내재된 강한 에너지의 선율에 맞춰 은근히 역동적인 춤을 보여준다. 축제의 분위기가 최고로 도취되는 3악장에서는 발레리노들이 축제에 참여한 여인들을 유혹하듯이 춤을 춘다. 발레리노들의 유혹하는 듯한 춤이 끝나면 발레리나들이 나와서 활기찬 춤을 춘다. 마치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댄스 배틀을 하는 것처럼 축제에 참여한 남자와 여자들의 춤을 각각 번갈아가며 보여주는 것이 재미있다. 여자들만 참여했던 디오니소스 축제가 나중에는 남자들도 참여하게 되고 시간이 더 흘러서는 남성으로만 구성된 디시램브(노래 및 춤)가 술의 신을 찬양한 것처럼 4악장에서도 발레리노들이 먼저 등장해 에너지가 고조된 춤을 춘다.
앞서 소개한 우베 숄츠의 <교향곡 7번>은 특별한 스토리가 없이 '움직임’ 그 자체에 집중한 네오 클래식 발레이다. 반면에 테오르 반 샤이크의 <교향곡 7번>은 신을 경배하는 동작과 포도주 항아리를 들고 있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폴드브라 그리고 자유롭고 활기차게 춤을 추면서 축제를 즐겼을 고대 그리스인들을 묘사하는 것처럼 무용수들의 군무가 규칙에서 조금 자유롭기 때문에 큰 줄거리는 없어도 약간의 연극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축제의 무리에서 이탈한 여인을 보며 다른 여인이 “빨리 와!”하듯이 손짓을 하거나 축제에 끼지 못한 여인이 무리들을 보며 “나는?”하고 묻는 듯한 표정 연기가 나오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줄거리는 없는 추상적인 춤에 판토마임이 들어가 있는 작품이다.
추상적인 춤에 연극의 성격을 띤 무용 ‘탄츠테아터’. 탄츠테아터를 창시한 피나 바우슈의 작품 <봄의 제전>은 살아있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려는 집단의 광기와 제물이 된 사람의 공포가 원초적인 춤사위로 그려졌다. 반면 반 샤이크의 <교향곡 7번>은 디오니소스 축제에 참여한 사람들이 흥겨워하며 신을 찬미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춤은 무엇일까?” 20세기부터 지금까지 창조적인 안무가들이 끊임없이 고찰했던 질문들이다. 안무가들이 불러일으킨 혁신에 오늘날의 발레 무용수들은 다른 분야의 춤도 섭렵하고 있다. 음악을 위해 작곡되었던 음악을 사용해 현대무용과 결합한 발레 작품과 연극의 성격을 띤 추상적인 발레 작품을 감상하면서 나 역시 생각해본다. “오늘날의 안무가들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걸까?” 창조적인 안무가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춤은 움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