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종의 중독 현상을 보이기까지 했던 발레 사랑이 한 때 식은 적이 있었다. ‘언제까지 발레를 배워야 할까?’‘이젠 그만 배워도 되지 않을까?’ 이런 물음표들을 마음 속으로 끊임없이 생각하기 시작했을 무렵 코로나가 터져 발레 학원이 한 동안 문을 닫으면서 본격적으로 발태기가 찾아왔다.
발레 학원이 다시 문을 열기 시작한 후에도 발태기를 겪고 있었던 나는 거의 2년 동안 발레 수업을 받지 않았다. 그 동안에 열심히 발레를 배우면서 때로는 고통을 참아가며 노력하고 인내해서 만들었던 근육은 도저히 발레를 할 수 없을 만큼 다 풀어져 있었다. 앞으로는 발레를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진짜로 발레를 그만두려고 했다.
‘이제 그만 해야지'라고 마음 먹고 있었던 나는 “발레 공연을 네 번이나 해봤고, 클래식 튀튀를 입고 백조 군무도 춰 봤고, 머리에 꽃을 달고 로맨틱 튀튀도 입어봤으니 더 이상 여한이 없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결론은...나는 발레를 그만 두지 않았다.
2년만에 발레를 다시 시작한 나는 기초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래도 그 동안에 발레를 배워온 햇수와 무대에 오른 경험이 있어서인지 매우 오랜만에 발레 수업을 받았음에도 발레 코디네이션을 기억하고 있었다. 진짜 발레 초보이신 분들 사이에서 티 안내고 기초 수업을 받았던 내가 발레에 이제 막 입문하신 분들의 눈에는 초보로 안 보였었나보다. 한 동안 나를 지켜보시던 회원분들이 “초보가 아니신 거 같아요.” “발레 하신지 얼마나 되셨어요?”하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내가 발레를 잘 해서가 아니라 아마도 하체와 폴드브라에 따른 시선을 조화롭게 사용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초보가 아닌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약 2년간의 발태기에서 간신히 빠져나왔을 무렵에 수강했던 두두리노 특강
다시 제 2의 발레 인생을 시작한 나는 발레에 입문했을 때처럼 배우는 것에 중독 현상을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되는 대로, 컨디션이 따라주는 대로 발레 수업을 받는다. 발레 장비도 거의 사지 않고 있다. 그렇게 예쁜 발레복들을 좋아했던 나는 가장 애정하는 발레복과 가장 편한 검정색 레오타드만 번갈아가며 입고 발레를 배운다. 이제 발레를 일주일에 몇 번 배우는지, 얼마나 예쁜 레오타드를 갖고 있는지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발레에 대한 애정이 식은 것은 아니다. 제 2의 발레 인생을 시작하면서 예전처럼 발레 사랑이 다시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대신에 발레에 대한 사랑의 방식이 바뀌었다. 원래 연인과의 사랑도 처음에는 좋아죽겠다가 어느 정도 지나면 권태기가 찾아왔다가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사랑이 더욱 깊어지는 것처럼 발레 사랑도 그런 것 같다. 그러고보니 원래 발레는 가만히 있었다. 단지 내 마음이 왔다 갔다 했을 뿐이다.
안정기에 접어든 발레 사랑은 작품 감상으로 눈을 돌렸다. 매일 마시는 커피와 함께 곁들이는 쿠키처럼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보는 발레 영상들은 너무나도 향긋하고 달콤하다. 해외 유명 발레단과 무용수들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폭풍 팔로우를 했고, 덕분에 매일같이 올라오는 따끈따끈한 영상들과 사진들은 나를 설레이게 하고 있다.
발레에 입문했을 때에는 발레에 대한 존재를 숨기곤 했는데, 이제는 누군가가 '발레' 이야기를 하면 내 눈이 초롱초롱해지면서 발레에 대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다. '발레'라는 말만 들어도 내 마음은 콩닥콩닥해진다. '발레'라는 끈을 놓기엔 발레가 너무나 매력적이다. 차라리 '나는 발레 애호가'라는 것을 소문내고 대놓고 사랑을 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내 인생에 다채로운 색감으로 스며든 발레. 그렇게 발레와 나는 인생을 함께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