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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 서연 Oct 11. 2023

Like water for Chocolate

기술이 신비로운 색채로 빚어낸 리얼리티 드라마

올가미처럼 옥죄는 가문의 대물림 때문에 항상 억눌리면서 오직 요리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고, 몇 십년동안 이어지지 않은 사랑의 열병을 뜨겁게 앓기도 하는 등 녹록치 않은 삶을 사는 주인공 티타의 인생을 그린 멕시코의 소설 <Like water for chocolate>에 영감을 받아 드라마 발레로 만든 영국의 안무가가 있다. 바로 놀라운 창작 발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만든 로열 발레단의 안무가인 크리스토퍼 휠든이다.


거침없는 발상으로 추진하는 기획력과 끝없는 상상력으로 빚어내는 창의적인 안무. 예술감독과 함께 의논하고 조율하면서 마법처럼 멕시코 정경이 펼쳐지는 발레 음악을 만들어나간 작곡가와 오케스트라단. 첨단 기술로 무장한 무대 예술과 여러 이미지를 가지고 상상해서 만든 의상팀이 모여 협업을 하면 과연 어떤 드라마 발레가 만들어질까? 기술과 혁신이 문학 작품을 만나 신비로운 색채로 빚어낸 21세기 드라마 발레. 강렬하고도 마법같은 매혹을 발산하는 드라마 발레 작품에 빠져들었다.


1989년에 발간된 멕시코 소설로 작가 라우라 에스키벨은 이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33개의 언어와 전 세계적으로 450만부 이상 팔렸다고 하니 이 책이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실감이 난다. 1992년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흥행에 성공했다. 책 속에서는 주인공 티타와 페드로가 몇 십년이라는 시간 차이를 두고 서로 사랑의 열병을 앓았는데, 사람들은 출간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이 책과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다.

사랑의 밀어를 나누고 있는 티타(프란세스카 헤이워드)와 페드로(마르셀리노 삼베)


주인공 티타의 집안에서는 대대로 막내딸에게 대물림을 하는 전통이 있다. “막내딸은 결혼을 하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 막내딸 티타는 위압적인 마마 엘레나에게 눌리면서 자란다. 페드로와 뜨겁게 사랑했지만 대물림 때문에 결혼을 하지 못한다. 마마 엘레나는 다 알고서도 페드로가 티타의 언니인 로사우라와 결혼을 하게 한다. 그런 티타를 언제나 따스하게 감싸주는 존재는 요리사 나차이다.     


자신의 감정을 언제나 억누르며 살아온 티타는 요리를 통해 감정들을 전달한다. 페드로와 로사우라의 결혼식 날 티타가 만든 케이크를 먹고 그 날 하객들이 모두 구토를 하는가 하면 티타가 만든 요리를 먹고 둘째 언니가 관능에 눈을 떠 혁명군과 함께 집을 떠나버린다. 페드로와 로사우라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음에도 여전히 페드로와 티타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른다. 이를 눈치 챈 로사우라가 마마 엘레나에게 말해 로사우라 가족은 다른 지역으로 가버린다. 하지만 얼마 후 로사우라의 아들 로베르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티타가 처음으로 마마 엘레나에게 대든다. 마마 엘레나는 거칠게 티타를 대하면서 의사를 부른다. 의사 존 브라운은 티타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 정성껏 돌본다. 존에게 아들이 한 명 있으나 이미 부인과는 사별한 뒤였다. 티타는 그런 존에게 마음을 조금씩 열기 시작하고 결혼을 하기로 약속한다. 한편 마마 엘레나의 농장에 도둑이 들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들은 티타는 마마 엘레나에게 달려간다. 하지만 마마 엘레나는 티타의 간호를 거부하고 죽어간다.    

티타의 요리를 먹고 관능에 눈 뜬 둘째 헤르트루디스


마마 엘레나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티타는 마마 엘레나의 비밀을 알게 된다. 마마 엘레나에게도 한때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다는 것을. 이제 마마 엘레나의 비밀을 알게 되었고 마마 엘레나의 존재도 사라졌으니 티타와 페드로는 대놓고 사랑을 한다. 티타는 존이 아닌 페드로를 선택한다. 시간이 흘러 로사우로와 페드로의 딸 에스페란사와 의사 존 브라운의 알렉스가 사랑에 빠진다. 그러자 로사우라는 딸 에스페란사가 자신을 돌봐야 한다며 결혼을 반대한다. 갈등이 치달으며 서로 싸우다가 로사우라는 죽는다. 에스페란사와 엘렉스는 결혼을 한다. 그리고 그 날 티타와 페드로는 오랫동안 누르고 있었던 뜨거운 열정을 불태운다. 둘은 서로의 마음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지만 이내 둘의 몸에서 불꽃이 치솟으면서 활활 불타오른다.     


목장을 운영하고 있는 주인공의 어머니인 엘레나는 그야말로 냉혹한 인물이다. 특히 막내딸 티타에게 폭력을 휘두르면서 자신의 트라우마를 물려주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티타는 요리에 자신의 감정을 넣게 되고 그 요리를 먹는 사람들은 마법처럼 티타의 감정을 읽거나 때로는 욕망에 휩싸이기도 한다. 마마 엘레나로 인해 수십년에 걸친 두 사람의 좌절된 사랑 이야기. 방대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주인공 티타의 고난과 격정적이지만 금지되었던 사랑 이야기. 그렇다. 이 작품이 인기가 많았던 이유는 음식을 통해 감정과 욕망을 관능적으로 표현하는 독특한 소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음식을 통한 사랑과 욕망의 표현.   

티타와 페드로의 강렬한 파드 되



로열 발레단의 안무가인 크리스토퍼 휠든은 이 작품을 처음에 영화로 접했다고 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 발레 작품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니 정말 놀라운 창작력이다. 휠든은 발레 작품으로 만들기로 결정한 후에 문학 작품을 읽었다고 한다. 작가가 관능적으로 표현했을 짜릿한 감각들을 크리스토퍼 휠든은 무용수들의 발레 동작에 음식 맛을 가미하고 감정신을 넣었다.    

 

음악을 맡은 조지 탈보트는 멕시코 음악 전문가들에게 들은 여러 조언들을 참고해서 발레 음악을 만들었다. 이 음악을 지휘한 멕시코 출신의 지휘자 아론드라 데라 파라는 작곡 과정부터 참여했다. 작곡가와 지휘자, 여러 멕시코 음악 전문가들이 협업해서 만든 발레 음악은 소설 속 배경인 1910년대의 멕시코를 연상시키는 민속 선율들을 넣어 작품의 신비로움을 더해주었다. 동시에 음악으로 스토리텔링을 하면서 인물들의 감정을 표현하는 등 무용수들이 멋진 안무와 음악에 자신이 맡은 캐릭터들을 잘 녹여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오카리나와 마림바, 하프, 기타, 삼나무 플루트 등의 여러 악기들을 사용해 작품의 몽환적이고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했으며 오랜 세월의 흐름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개인의 긴 시간과 공간을 표현하는 무대 장치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마법처럼 정면 전환이 빨랐다. 작품 속에서는 추상적인 느낌이었을 분위기와 색채가 로열 발레단의 조명팀에 의해 따스하면서도 다채롭고 신비롭고 관능적인 구체적인 분위기로 창조되었다. 역시 로열 발레단은 작품 속의 이미지를 현실로 이루어주는 발레단인가 보다. 이런 작품을 발레로 만들 생각을 다 하다니. 참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대단하다.      


무엇보다도 티타 역을 맡았던 발레리나 프란세스카 헤이워드의 재발견이 크다. 그 동안에는 헤이워드가 출연한 영화 <캣츠>와 로열 발레단에서 짧은 영상으로 올린 것만 봐와서 이렇게나 연기를 잘 하는지는 이 작품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프란세스카 헤이워드는 그야말로 타고난 연기자이다. 티타의 고된 인생과 드라마틱한 감정 변화와 관능적인 욕망들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춤과 연기로 보여주었다. 특히 티타와 페드로가 춘 파드 되는 때로는 은밀하게 나누는 사랑의 밀어이자 금지된 사랑으로 더 관능적이고 뜨거웠다.     

 

여러 느낌을 주는 멕시코 음악과 함께 어우러진 무용수들의 춤과 연기, 잠자고 있는 정열을 깨워주는 듯한 디베르티스망, 강렬하고도 신비스러운 느낌을 자아내는 조명, 무대의 매우 빠른 장면 전환을 보고 있으면 온 신경 세포가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정말 몰입감 최고의 어른용 발레 작품이다.     


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으면 이렇게 비주얼이 훌륭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제작과정과 무용수들의 연습 과정이 무척 고되고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헐리우드에서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일을 잘 시키는 감독이라고 하던데, 발레단 중에서는 로얄 발레단이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키가 157cm인 발레리나 프란세스카 헤이워드의 그 자그마한 체구에 엄청난 양의 근육으로 뒤덮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모두 고생했고, 수고했다는 칭찬밖에 안 나온다.      


한가지 더 이 작품을 그저 음식을 통한 감정의 표현과 욕망. 수십년에 걸친 티타와 페드로의 억눌렸던 사랑의 열병과 불꽃같은 사랑 이야기에만 집중해서 보는 것은 뭔가가 아쉽다. 발레 작품을 다 감상하고 나서도 두고두고 생각이 나는 장면이 있어서였다. 마마 엘레나가 집안의 대물림 때문에 큰 딸 로사우라를 페드로와 결혼시키기로 결정하는 장면에서 티타의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좌절된 표정과 절망 그리고 그런 딸의 모습을 바라보는 마마 엘레나의 냉혹한 얼굴이었다. 작품에서 마마 엘레나 역을 맡았던 로얄 발레단의 발레리나 라우라 모레라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왜 네 삶이 더 쉬울 거라고 생각해?” 라우라 모레라의 인터뷰 내용을 보고 솔직히 소름 돋았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에서 매우 다양한 형태로 일어나는 일이다. 단지 언어의 연금술사같은 작가의 마법같은 문체에 작품이 전반적으로 환상적인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결론은 신비로운 색채와 언어의 마술로 인간이 사는 이야기를 말한 것이다.

혼령이 되어서도 나타나 티타와 페드로를 떼어놓으려고 했던 마마 엘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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