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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 서연 Sep 15. 2023

어쩌다 발레를 배우다...05

"커닝하시면 안돼요!" 무용실에 울려퍼진 선생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


장 조프루아, <교실, 공부하는 아이들>, 1889

                                  

어린이들의 모습을 ‘교훈이 담긴 어른의 시각으로 바라본 것이 아닌’, ‘꾸며낸 것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린 프랑스 출신의 화가 장 조프루아의 어린이 그림들을 정말 좋아한다. 19세기 말 프랑스의 교실에서 교실 책상에 앉아있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면 저마다의 개성과 특유의 생명력이 느껴져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교실 안을 걸어다니며 책을 들고 서서 읽는 아이, 공부에 집중은 안 하고 괜히 연필만 만지작거리는 아이, 자를 대고 연필로 선을 긋는 아이, 머리에 손을 대고 생각에 잠긴 아이, 얼굴에 손을 괴고 문제를 푸는 아이, 종이를 들고 문제롤 읽는 아이, 독서대에 올려놓은 책을 보면서 집중하는 모범생같은 아이, 선생님께 질문하는 착실한 아이...그리고 옆 친구가 문제 푸는 것을 대놓고 닝하는 아이.    


닝은 다 큰 어른도 한다. 특히 발린이였던 시절 안무를 잘 못 외우는 나 같은 취미 발레인은 무용시간마다 닝을 했다. 물론 원장님처럼 덜 깐깐하신 분이 수업을 진행하시면 조금 티나게 닝을 했다. 아니 원장님은 해당 수업시간에 잘 하는 회원분이 계시면 그 회원분을 보고 따라하도록 오히려 장려를 하셨다. 그래서 원장님이 진행하시는 수업시간에는 마음놓고 닝을 했다. 그러나 어쩌다 깐깐한 선생님이 수업을 진행하시는 날에는...     


예전에 발레학원에 정말 좋은 무용 선생님이 계셨다. 개인적으로 만나면 나보다 나이가 훨씬 어린데도 정말 인격적이고 생각이 깊어서 존경했던 발레 선생님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그 선생님과 커피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하는 것이 정말 즐거웠다.      


그러나 그렇게 좋은 발레 선생님이 무용실에 들어오시는 순간 언제나 눈빛이 달라지셨고 레슨이 시작되는 순간에는 인격이 180도로 바뀌셨다.(?) 선생님이 진행하시는 매트 스트레칭은 많은 동작을 하거나 가동성이 과한 동작이 아니었는데도 묘하게 고통스러웠다. 우리들을 스트레칭을 시키시는 선생님의 모습은 마치 교관이나 운동부 아이들 체력 단련 시키는 엄격한 체육 선생님 같았다. 돈 내고 고문받는 느낌이 딱! 이런 느낌이었다!     


선생님이 진행하시는 바동작은 더 고통스러웠다. 특히 바동작을 가르쳐 주실때에 거의 1:1 개인레슨을 받는 것처럼 꼼꼼하게 티칭을 해주셨는데, 수업 중에 회원 한 분을 콕! 집어 그 회원분이 했던 잘못된 자세나 동작을 바로잡아 바르게 발레 동작을 할 때까지 매섭게 반복을 시키시는 게 선생님의 주특기였다. 그래서 선생님이 회원 한 분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에는 언제나 다른 회원분들이 킥킥 웃었다. 당사자에게는 고통의 순간이었고 지켜보는 회원들에게는 재미있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고통의 순간은 선생님의 수업시간에는 모든 회원들에게 공평하게 기회가 돌아갔다. 다른 회원분이 고통의 순간을 겪으면 나도 킥킥거렸고, 내가 고통의 순간을 겪으면 다른 회원분들이 킥킥거렸다.

김홍도, <서당>, 18~19세기


이처럼 수업시간에는 언제나 깐깐한 선생님으로 인격이 바뀌셨기 때문에 닝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만큼 선생님의 카리스마와 포스가 장난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무를 잘 못 외우는 나는 눈동자를 아주 초미세하게 움직여 다른 회원분이 하는 동작을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선생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무용실에 울려퍼졌다. “서연님, 닝하시면 안되요. 안무 외우세요!” 나는 거의 티 안나게 눈동자를 움직였는데, 그걸 어떻게 보셨지? 아무튼 무용 선생님들의 눈썰미가 엄청 예리하시다.    


지금은 내 발레 수준에 맞는 클래스에서는 안무를 비교적 잘 외운다. 선생님이 안무를 알려주실 때에 나름대로 안무를 패턴화해서 쉽게 외우기 때문이다. 꾸준히 sns나 유튜브에서 발레 영상을 찾아서 보는 것도 도움이 되고 있다. 물론 가끔씩 안무가 헷갈릴 때도 있다. 그러나 취미 발레 몇 년차인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창작 발레를 하고는 한다. (결론은 나 혼자 다른 동작을 하고 있다는 얘기)


개인적으로 만나면 좋고, 수업시간에는 매우 깐깐하고 꼼꼼하게 티칭해주셨던 선생님은 오래전에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시면서 우리 발레학원을 그만 두셨다. 가끔씩 선생님이 보고 싶은 마음이 들곤 했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그립다. 선생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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