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고구마의 목 막힘이 우유와 함께 부드러워지듯..
예전에 한 부서에 있을 때 이야기이다.
새롭게 만나는 상사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고
주변에서의 우려도 꽤 있었다. 그럼 뭐 어떤가.
소문 이전에 직접 그 사람을 겪어보고 알아가 보는 걸 선호해서 우선은 함께 일해보며 그분을 알아가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분은 MBTI와 각종 심리 등 본인 나름대로의
관심사와 학구열이 있음을 어필하셨고
팀원들에게 MBTI를 물어보며 업무분장이 시작되었다.
덧붙여 본인은 T성향이 강하니 주변에서 4가지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본인은 개의치 않는다를 덧붙이셨다...
그때부터 그분의 신박함에 대한 호기심과
위험의 레이더가 살짝 작동했다..
(T와 4가지는 무슨 상관일까..?)
그렇게 평소 업무를 할 때마다
그분은 팀원들의 반응을 살피며
"이 MBTI는 이런 반응일 수가 없는데?
또는 이렇게 업무처리를 안 할 텐데?" 등과 같이 모든 것을 본인의 시선에서 판단했다.
그러던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 어느 날, 팀에서 중간 정도 연차였던 내게 긴급하게 메신저를 보내셨고
그 내용은 팀원 중 한 명의 ㅇㅇ 합격을 축하하고 싶어 선물을 준비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요지는 평소 나의 미적 감각이 나쁘지 않은 것 같으니
나가서 그 팀원을 위한 선물을 사고 편지지를 준비하면 좋겠다였다.
당시 난 물리치료로 조금 보행이 어려웠고 여타 업무로 바쁘고 그 팀원은 휴가인데 대체 이게 뭐가 그리 급한 일일까에 대한 갑갑함이 올라왔다.
그래도 그냥 좋은 게 좋은 거고, 사실 좀 더 솔직한 마음은
이렇게 하면 나의 업무 평가 점수에도 반영해주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다녀왔다.
이렇게 그분에 대한 나의 갑갑함과
업무 평가에 대한 점수를 잘 받겠다는 마음의 상충이 시작되었다.
업무 평가 점수를 받는 당일,
갑자기 따로 대화가 하고 싶다고 하셨다.
내 나름대로 그동안 그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잘 맞췄다고 생각했기에 기대감을 가지고 티타임을 가지게 되었고 들려주는 말은 예상과 전혀 다른 말이었다.
본인도 여자지만 생물학적으로만 여자일 뿐 남자와 다를 바 없다고를 얘기하며 ㅇㅇㅇ대리는 여자니까 결혼도 언젠가 할 것이고 사실 승진이 그 정도로 중요하지는 않지 않냐,
그러나 팀원 중 남자직원은 결혼을 하면 한 가정의 가장이 될 것이고 그럼 아무래도 벌이가 달라야 하고... 뭐 이런 이야기를 꺼내며 그래도 이런 말을 직접 해주는 상사는
자기뿐일 거라고 이런 점을 고마워하면 좋겠다고 했다.
정말.. 최악의 순간이었다.
우선 화장실에서 울고 있던 나의 정신을 차리고
자리로 돌아와 그동안 나의 업무성과를 찬찬히 정리하며 팀장님께 재상담을 신청했다.
재상담에 대해 돌아오는 답변은 또 MBTI였다.
ㅇㅇㅇ 대리는 MBTI를 다시 검사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자기가 아는 그 MBTI는 보통은 이렇게 말을 하지 않는데 이해가 안 된다고 말이다. (자신의 심리 지식도 함께..)
이건 그 분과 나의 일화 중 몇 개만 이야기 한 거지만
그냥 난 좀 이런 틀에 박힌 나에 대한 평가와 예측하는 것에
많이 지쳐있었고 어차피 평가점수도 이렇게 나온 거 더 이상 비굴하거나 당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느껴 용기 내어 말씀드렸다.
"팀장님, 팀장님께서 많이 배우시고 좋은 조언을 해주시려는 마음 충분히 인지합니다. 그런데 저도 가끔 제 자신을 모를 때가 있는데 어째서 매번 MBTI로 저를 단정 지어 제 말과 행동을 해석하시나요. 누구나 컨디션에 따라 감성적일 수 있고 업무를 임할 땐 감성적인 사람도 충분히 이성적으로 할 수 있는데 조금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그 이후부터 팀에서 지옥은... 시작되었다.
괜히 말했나 후회가 들정도의 팀 내에서의 소외와 각종 폭언들이.. 부장님께 말씀드려 볼까 등 쉽지 않았다.
(물론 현실은 그냥 조용히 지나가길 기다렸다..)
몇 주 뒤, 인사이동 대상도 아닌 나는 뜬금없는 시기에 전혀 예상치 못한 부서로 이동하게 되었다.
(원래 있던 곳은 당시 인기 있는 부서였고 이동하게 된 곳은
이동이 뜨자마자 아시는 분들이 개인적인 연락으로 무슨 일 있는 거냐의 걱정을 하는 일은 많고 비인기 부서였고..)
근데 웬걸. 막상 그 부서를 간 이후 회사에서 인성으로 훌륭하다고 소문이 나신 많은 분들이 하나둘 오시기 시작하며 사람들의 예상과 다르게 난 웃음을 되찾고 다양한 업무에 대한 것들을 정말 많이 경험하고 배웠다.
더 반전은 부서 평가 시즌에
회사 내 상위권이라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회사라는 사회에선 최대한 무던한 게 좋다고 한다.
맞는 얘기인 것 같다. 그럼에도 정말 나 자신이 괴로워하며 버티는 것보단 나름대로의 솔직한 말을 정중히 해보는 것도 나쁜 경험은 아니다. 단, 회사는 책임이 따를 수 있음을 알고 신중하게 해야한다.
그러나 또 그게 다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고진감래"라는 사자성어처럼 고가 오면 달달한 감이 오듯 우리 개개인의 각자의 상황에서만 살펴보면,
그 주기와 정도는 다를지라도 우리 각자의 삶에는 이면의 변화가 반복적으로 늘 주어진다.
그러니! 스스로 양심의 어긋남이 없다면 마음 편하게 용기 내어 당당히 살아보자고 얘기하고 싶다.
그리고 하나 더! 난 그 때 이후 누가 어떤 부서 추천하는지 등 살아가면서 어떤 선택이 더 본인에게 유리할지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땐 조심스럽지만 이렇게 말해준다.
"내 경험에 빗대어 보면 어떤 상황을 계산한다고 맘대로 되는 건 없는 것 같아. 지금 주류로 보이는 곳도 영원히 주류가 아닐 수 있고 비주류인 곳도 막상 가보면 오히려 좋을 수도 있으니 네가 제일 마음가고 편한 걸 선택해~!"
ps, 휴가시즌인데 전 부모님과 계획없이 보내고 있습니다.
엄마와 목욕탕에서 세신을 받아 보고, 우리집 파견직원으로 집안일도 도와보고, 출퇴근 하시는 아빠에게 나름의 애교로 화이팅을 외치기도 합니다. 예전엔 휴가라 다들 어디갈 때 저도 어디 가야하는게 아닌가 했는데 마음 편안하게 맛나는거 먹고 그 동안 못해본 소소한 것들을 여유롭게 해보는 것이 그저 감사하고 즐겁습니다.
모두 건강과 안전 유의하시면서 편안한 시간되시고, 읽어주셔서 늘 감사합니다.